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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수도권 집중’ 여전한데… 지방行 수요 높다는 중진공

보고서에서 ‘중소·벤처기업 55% 지방行 고려’
현실은 벤처 59.3%, 벤처캐피탈 91.3%가 수도권에 집중
정부 지원금 노리고 지역에 사무실만 여는 경우도

 
 
벤처기업들이 집결해 있는 경기도 판교 테크노밸리 전경. [중앙포토]
“구직자들이 연봉만 절반 받는 한이 있어도 수도권 기업에 취직하길 원하더라. 급한 대로 베트남 개발자를 채용해 쓰고 있지만, 비대면 작업만 가능해서 사업 확장이 예상보다 느린 상황이다.” 
 
대전 지역에서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을 창업한 A 씨의 토로다. 그는 최근 본사를 대전에서 서울로 이전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 대전에선 관련 개발직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다.  
 
지방에서 기업을 운영 중인 경영진이라면 한 번쯤 A 씨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이 흥미로운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역혁신성장 동력 발굴 중소 설문결과 분석 및 정책 시사점’이다. 수도권 중소·벤처기업의 절반 이상(55%)이 지방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는 게 골자다. A 씨의 고민과 아예 딴판인 셈이다.  
 

돈과 인력 수도권에 모여 있는 상황 해결해야 

 
어찌 된 영문일까. 
 
먼저 중진공의 보고서를 자세히 살펴보자. 이 기관은 수도권 중소·벤처기업 1024개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응답 기업 55%가 ‘지방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이미 이전한 기업을 제외한 ‘잠재수요’도 35.2%에 달했다. 중진공은 잠재수요로 ‘이전을 고려했지만 시행하지 않음’(25.0%), ‘가까운 시일 내 이전 계획이 있음’(10.2%)이라고 응답한 기업들을 꼽았다. 보고서는 “이 잠재수요를 타깃으로 지원을 집중할 경우 균형발전을 노려봄 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고서 내용대로라면 지역 균형 발전은 금세 이뤄질 듯 보인다. 지방소멸지역이 확산하는 가장 큰 이유가 지역경제 침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해 성장기반으로 자리 잡는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중진공 역시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발표한 보도자료에 다음과 같은 제목을 붙였다. “지역경제 활성화·균형발전, 중소벤처기업에 답 있다.” 김학도 중진공 이사장은 “청년 창업기업의 지역이전 지원 등을 추진해 지역균형 뉴딜에 앞장설 것”이란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런데 정작 현장의 중소·벤처기업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데이터 관련 협회 관계자는 중진공 연구 결과를 두고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사람과 돈이 모두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 왜 지방으로 내려가겠느냐”란 비판이다.   
 
가령 중소·벤처기업들의 돈줄 역할을 하는 벤처캐피탈(VC)의 대부분이 수도권에 몰려있다. 지난해 5월 기준으로 국내 VC의 91.3%가 수도권에 있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기부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다. 비수도권에 본사를 둔 VC는 13개로, 전체 149개의 8.7%에 불과했다.  
 
벤처기업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VC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아직 수익이 없거나 대출받을 담보가 없는 기업에 자금원이 돼주기 때문이다. 대신 VC는 해당 기업의 주식을 취득하고, 이후 기업가치가 높아졌을 때 주식을 되판다.  
 
투자사가 수도권에 몰리니 돈도 수도권에 쏠린다. 지난해 상반기 537개 벤처기업이 9285억원 투자를 받았는데, 이중 서울 소재 기업이 283개였다. 이들 기업으로 향한 투자금액도 4918억원으로 절반이 넘었다. 인천·경기를 포함한 수도권 전체로 보면 6874억원으로 전체의 74%에 달한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중기부 국정감사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내용이다.
 
벤처기업이 돈줄을 따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2019년 기준 전국 벤처기업 3만7008곳 가운데 수도권의 비중은 59.3%(2만1952개)에 달했다. 비수도권 지역에 있는 벤처기업도 정부 발주나 자금지원에서 지역 가점을 노리고 사무실을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벤처업계 관계자가 “이런 가점을 노리고 지방에 사업자등록만 해놓는 업체가 있다”며 “최소한의 행정인력만 사무실에 두는 사실상의 페이퍼 컴퍼니인 셈”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이전 희망 지역도 충청권·동남권에만 집중

 
중진공의 보고서에도 이런 한계가 잘 드러난다. 중진공은 설문 결과를 바탕으로 균형발전 가능성 거론했지만, 실제로 ‘지역 균형’인지는 의문이다. 이전 희망 지역이 수도권과 가까운 충청 지역(57.9%)이나 중후장대 산업이 잘 갖춰진 부산·울산·경남 지역(27.3%)에 쏠려있기 때문이다. 강원(8.8%), 대구(7.4%) 등 나머지 지역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관계자는 “지역별로 상황이 다른 것은 맞다”며 “비인기지역은 인프라 조성에 집중하는 등 정책을 달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지역 균형발전이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다. 막대한 인센티브를 준다면 기업들도 움직일 의향이 있다. 
 
강원도의 ‘넥스트 유니콘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다. 중진공을 비롯해 강원랜드와 한국광해관리공단 등이 협업해 청년 창업기업을 강원도 폐광지역으로 이전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9년부터 매년 3개사씩, 7년간 총 21개사를 선발할 계획이다. 지난해까지 반도체 장비업체 ‘제우기술’, 유전자 진단시약 제조업체 ‘진스랩’ 등 6개사를 선발했다.
 
선정 업체의 기술력뿐 아니라 경쟁률도 주목할 만하다. 2019년 첫 공모 당시 수도권 73개, 충청권 23개, 경상권 17개 등 전국 125개 기업이 지원했다. 경쟁률로 치면 41.6대 1이다. 지난해 두 번째 공모에서도 2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물론 이 역시 한계점이 뚜렷하다. 이 프로젝트가 순항하는 건 강원랜드가 매년 30억원에 가까운 돈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런 인센티브 없인 균형발전도 어렵다는 얘기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지방 이전이 늘어날 거란 설문조사의 부푼 기대와 달리 벤처·중소기업계의 현실은 냉엄하다”면서 “막대한 투자 없인 벤처창업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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