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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성지(聖地)에 진동하는 화약 냄새

5월의 피바람 부는 예루살렘
50년 이어진 갈등, ‘권능의 날’ 불 붙어 ‘예루살렘의 날’ 터졌다

 
 
이스라엘 경찰이 신전산 구역에서 팔레스타인인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거룩한 종교 성지에 화약 냄새가 진동한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 등 유일신을 따르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다시 갈등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예루살렘은 종교 성지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 모두 헌법상 수도로 선언한 정치적인 갈등 지역이기도 하다.
 
2021년 5월 예루살렘은 갈등과 분쟁, 그리고 유혈극의 발화점이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로켓탄을 이스라엘로 쏘고 이스라엘이 전투기를 출동시켜 인구 밀집 지역인 가자지구를 공습하는 피투성이 힘겨루기가 이곳에서 불붙었다.
 
왜 성스러운 지역에서 이런 일이 시작됐을까? 중동에 강하다는 AFP통신과 카타르에 본부를 두고 아랍어·영어 등 다국어로 송출하는 글로벌 방송인 알자지라, 독일의 DW, 프랑스의 프랑스24 등 비교적 중립적인 국제채널을 중심으로 그간의 상황과 배경을 짚어본다.
 

‘성전산’서 벌어진 폭력사태

 
사태의 시작은 토지를 둘러싼 송사였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북쪽으로 2㎞ 떨어진 ‘셰이크 자라’ 지역의 유대인 정착민들이 이 지역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을 퇴거시켜달라고 재판을 걸면서 시작됐다.
 
이곳은 이른바 ‘동예루살렘’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뒤 점령한 지역 중 자국에 편입한 곳이다. 그 뒤 유대인들이 이 지역의 팔레스타인인을 퇴거시키고 유대인 지역으로 만들려고 50년 이상 시도해왔다.유대인들은 다양한 수법을 동원했다. 일부 유대인은 토지와 건물을 점거한 뒤 퇴거를 거부하고 버텼다. 과거 오스만튀르크가 이 지역을 지배하던 시절의 문서를 입수해 유대인이 살던 토지임을 증명하고 팔레스타인인을 밀어내기도 했다. 유럽 등에 살던 유대인이 유대국가 건설을 위해 이곳으로 귀환하기 전에도 이 지역에는 적지 않은 유대인들이 거주했던 역사적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이스라엘 법원이 이런 재판에서 유대인의 손을 들어주며 분쟁에 불씨가 붙었다. 셰이크 자라 지역의 토지를 둘러싸고 제기한 소송에서 이스라엘 법원은 지난 1월 유대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을 계기로 ‘셰이크 자라’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또 다른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불만이 폭발했다. 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서 폭력 사태가 계속됐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대법원에 항소했지만 심리가 미뤄지면서 다시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러다 5월 7일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충돌했다. 팔레스타인 무슬림(이슬람 신자)들은 이날 예루살렘 성전산에 위치한 알아크사 모스크에 모여 단식월인 라마단 종료 전 마지막 금요 기도회를 열려고 했다. 라마단은 신앙고백·기도·기부·성지순례와 함께 ‘이슬람의 다섯 기둥’으로 불리는 종교적 의무다. 낮 시간 동안 단식하며 신앙을 다진다. 라마단 등 이슬람 종교 행사는 태음력인 이슬람력을 바탕으로 한다. 서양 달력인 그리고리우스력을 기준으로 하면 매년 바뀔 수밖에 없다. 올해의 경우 대략 4월 12일 저녁부터 5월 12일 아침까지이다.
 
이슬람은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주류 종교다. 2018년 미국 매체 알모니터의 추정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출신의 약 79%가 무슬림, 20%는 기독교 신자, 1%는 드루즈다. 기독교 신자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외국으로 떠나는 비율이 높아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무슬림이 알아크사 모스크에 모여 기도회를 열려던 날짜다. 이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이슬람 수니파에선 라마단이 시작된 지 27번째 날인 이날을 ‘라일라트 알카드르(권능의 밤)’라고 부른다. 신앙심 깊은 무슬림은 이날을 기도가 가장 잘 받아들여지는 날로 여긴다.
 
장소도 중요하다. 알아크사 사원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하늘로 승천해 믿음의 성인들을 만났다는 자리에 건설한 거룩한 사원이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의 17장 1절은 “알라는 그의 종을 데리고 밤에 성스러운 예배당으로부터 우리가 정결하게 한 멀리 떨어진 예배당에까지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조짐을 눈으로 경배하도록 하여 주셨도다”라고 기록한다. 이슬람에서는 이를 ‘알이스라 왈미라지’라고 부르는데 서구에서는 통상 ‘밤의 여행’으로 번역한다. 메카에 살던 무함마드가 천마 부라크를 타고 순식간에 ‘가장 먼 모스크(아랍어로 알마스지드 아크사)’로 여행한 것을 가리킨다. 무함마드는 이곳에서 다른 예언자들을 만나 기도를 인도했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여기서 말한 ‘가장 먼 모스크’를 실제 세계의 예루살렘 성전산의 한 지점으로 여겨 서기 705년에 이곳에 같은 이름의 알아크사 사원을 지었다. 무슬림들은 이를 실제 세계와 영적 세계를 동시에 아우르는 내용으로 여긴다
 
이슬람 세계에서 이렇게 중요한 날에 그토록 거룩한 성지인 알아크사 앞에서 기도회를 열려던 팔레스타인 무슬림은 이스라엘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앞서 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선 폭력 사태가 계속 빚어졌기 때문에 ‘예방차원’이라며 기도회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을 해산하려고 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고무탄을 쏘는 이스라엘 경찰을 향해 돌과 병, 그리고 폭죽을 던지며 저항했다. 팔레스타인인이 220여 명의 부상했다. 다음 날인 8일엔 철야 대치 끝에 121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부상했고 이스라엘 경찰관 17명도 다쳤다.
 
충돌이 심화한 것은 알아크사 사원이 있는 성전산은 고대 유대교 성전이 있던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솔로몬 대왕이 세운 제1 성전이 기원전 957~기원전 586년에, 페르시아의 군주 키루스(구약성서엔 고레스로 표기)가 건설을 승인한 제2 성전이 기원전 516년~기원 70년 성전산에 있었다고 믿는다.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 마지막으로 무너지고 남은 서쪽 벽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기를 기원할 때 목적지로 상정했던 곳이다.
 
성전산은 넓지 않다. 언덕 위에 서쪽이 488m, 동쪽이 470m, 북쪽이 315m, 남쪽이 288m인 마름모꼴의 평지가 펼쳐져 있는 게 전부다. 유대교와 이슬람 모두에게 양보하기 어려운 역사적·종교적 성지인 셈이다.
 

2개 정파 분열된 팔레스타인… 온건파 파타, 강경파 하마스

 
2002년 마드리드 회의 이후 평화중재 작업을 계속해 온 ‘중동 콰르텟(사중주단)’인 미국·러시아·유럽연합(EU)·유엔은 이날 모두 폭력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교황도 폭력 중단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런 호소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요일인 9일 저녁에는 동예루살렘의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다시 대치했다. 이스라엘은 금요일과 토요일을 쉬고 일요일에 한 주가 시작된다. 시위는 월요일 아침에도 계속돼 395명이 부상하고 이 중 200명은 입원했다. 5월10일이 되자 사태는 극도로 심각해졌다. 이날이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의 날’로 부르는 국경일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1967년 6월 6일 ‘6일전쟁’ 당시 예루살렘 점령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스라엘은 태음력과 태양력이 섞인 유대력(히브리력)을 쇠기 때문에 올해는 5월 9~10일이다. 이스라엘 당국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유대인의 행진을 중단시켰다. 이날은 이스라엘의 유대인에겐 자랑스러운 날이지만, 팔레스타인에겐 분노를 유발하는 날이다. 양측의 분쟁의 기원은 1947년의 유엔 분할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엔 임시위원회가 채택하고 유엔총회가 통과한 결의안 181호는 팔레스타인을 유대 지구, 팔레스타인 지구, 그리고 유엔이 관리하는 예루살렘으로 분할했다. 이를 바탕으로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아랍 국가들이 공격해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 독립전쟁으로 불리는 1차 중동전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독립을 확고히 했다. 아랍권의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지구인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이집트는 가자지구를 각각 점령했다. 이들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울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아랍은 이스라엘을 타도한 뒤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울 생각을 했겠지만 유대인은 만만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보안군이 동부 예루살렘의 셰이크 자라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의 시위자를 체포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전쟁 뒤 이스라엘은 유대인 지역 전체와 서예루살렘을 확보했다. 사실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유대교와 이슬람 모두의 성지란 점을 감안해 이를 보호하기 위해 이 도시에서 전투를 벌이지 않기로 비밀협약을 맺었다. 대신 도시를 이스라엘이 지배하는 서쪽과 요르단이 통치하는 동쪽으로 나눴다.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는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이 다수인 동예루살렘을 요르단이 통치하게 됐다. 지리상으로나, 인구상으로 합리적인 타협안이었다.
 
그러나 동·서 예루살렘 분할은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군사적인 타협안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1967년 6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그리고 가자지구를 모두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지로 관리했지만, 예루살렘을 하나로 통합했다. 예루살렘은 주변 지역을 합쳐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6개 ‘구역(지방행정구역)’의 하나가 됐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과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영토이자 수도’로 본다.
 
팔레스타인도 예루살렘을 수도로 보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명분까지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점령된 팔레스타인은 1987~1993년 제1차 티파타(봉기)를 통해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1993년 미국 등이 개입한 오슬로 합의를 통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자치정부를 세울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서안지구에 쿠드스(예루살렘의 아랍어) 주를 세웠다. 이 주는 과거 동예루살렘으로 불리던 옛 요르단령 예루살렘을 포함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행정구역과 겹친다. 자치정부는 이를 감안해 이 주를 J1과 J2로 나눴다. 이스라엘이 실효 지배를 하는 지역이 J1이고 나머지 지역은 J2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현실적으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라인는 2개의 지역과 이 지역을 사실상 통치하는 파타와 하마스라는 2개의 정파로 분열됐다는 사실도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 파타와 하마스는 서로 사뭇 다르며 서로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승리’라는 뜻의 파타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이끌던 야세르 아라파트가 1957년 설립한 정당이다. 대이스라엘 정책에서 온건파이며,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합의한 ‘2국가체제’를 지지한다. ‘2국가 체제’는 이스라엘과 장래 들어설 팔레스타인 국가가 평화롭게 안전하게 공존하는 방안을 가리킨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한 나라를 구성하는 ‘1국가 체제’나, 이스라엘과 서안지구, 가자지구가 각각 병립하는 ‘3국가 체제’와 대립하는 개념이다. 파타는 정치적으로 중도좌파로 분류되며, 세속주의와 온건 민족주의를 지향한다.
 
‘이슬람 저항운동’의 아랍어 머릿글자를 딴 하마스는 1987년 이슬람주의자 아흐마드 야신이 무슬림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를 바탕으로 설립한 정파다. 이념과 정책에서 파타와 극과 극이다. 대이스라엘 정책에서 강경파다. 이스라엘을 타도하고 전체 팔레스타인 지역을 ‘해방’하는 게 목표다. 따라서 ‘2국가체제’를 거부한다. 철저한 반유대주의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무장투쟁을 주도한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한 자선사업으로 민심을 얻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한 생각만 동일하다. 아랍어로 알쿠드스로 부르는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수도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갈등은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폭격 시작한 하마스, 이스라엘도 보복 나서

 
하마스는 5월 10일 이스라엘이 성전산에서 보안 병력을 철수하지 않으면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 뒤 이스라엘로 150발 이상의 로켓을 발사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전투기를 동원해 보복에 나섰다. 하마스가 지배하는 가자지구에 130회에 이르는 폭격을 가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목표물을 공습한 후 연기가 치솟는 모습 [REUTERS=연합뉴스]
 
가자지구에는 거제도(379㎢)와 비슷한 365㎢의 좁은 땅에 대부분 난민인 200만의 팔레스타인인이 거주한다. 이곳을 폭격하면 민간인에 대한 부수적 피해는 불가피하다. 이스라엘은 ‘군사 목표물’을 겨냥했다고 발표했지만, 하마스는 여성과 어린이 사망자를 강조한다.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을 대공방어체계인 아이언 돔으로 잘 방어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역 매체인 중동뉴스는 하마스의 로켓 발사가 이제 시작이라고 지적한다. 하마스가 한 발에 600달러 정도의 비용이 드는 로켓탄을 15만발정도 비축해 앞으로 다량·장기 공격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루 1000발 정도를 발사한다면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도 제대로 방어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이스라엘 방산업체인 라파엘과 IAI가 개발한 아이언 돔은 4~70㎞ 거리에서 발사돼 단거리 로켓과 포탄을 차단한다. 주·야간 전천후로 가동하는 이 시스템은 탐지거리 4~350㎞의 레이더와 사거리 4~70㎞의 타미르 미사일, 분당 1200개의 목표물을 처리하는 컴퓨터 시스템으로 이뤄졌다. 발사대가 대당 5000만 달러 이상, 요격 미사일은 기당 2만~5만 달러로 알려졌다. 700만원짜리 미사일을 6000만원짜리 미사일로 막는 형국이다. 이스라엘군이 날아오는 로켓의 궤도를 보고 인구 밀집지역으로 오는 것만 골라 요격하고 빈터로 가는 것은 그냥 두는 이유다
 
중동에는 전쟁의 불씨가 여전히 잠복해 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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