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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호가든 모먼트’에 빠진 벨기에 남자

알렉산더 람브레트 부사장, 오비맥주 새 마케팅 수장
한국에서 처음 선보인 ‘호가든 보타닉’, 정식 라인으로 확대

맥주 첫 잔이 주는 기쁨은 하나의 문장처럼 모두 기록된다. 맥주를 들이키면, 숨소리가 나고, 혀가 달싹댄다. 그리고 침묵은 이 즉각적인 행복이라는 문장에 구두점을 찍는다. 무한을 향해서 열리는, 믿을 수 없는 기쁨의 느낌…. 필립 들레름, [첫맥주 한모금] 중에서  
 
알렉산더 람브레트 오비맥주 마케팅 부문 부사장. [사진 김현동 기자]
 
잘 만들어진 맥주 브랜드를 알리는 게 그의 일이다. 단순히 마시고 취하는 맥주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니즈를 고려한 맛과 브랜드 철학이 가미된 파트너적인 요소까지 담아 냈달까. 국내 맥주업계 1위 오비맥주를 이끄는 새 마케팅 수장, 벨기에 국적의 알렉산더 람브레트 부사장 얘기다. 오비맥주 글로벌 본사인 AB인베브에서 지난 15년간 마케팅 성장을 주도해 온 그는 호주·뉴질랜드·미국·중국·유럽 등 주요국을 거쳐 지난 1월, 한국 오비맥주와 첫 인연을 맺었다.  
 
맥주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그를 지난 5월 13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아셈타워에서 만났다. 직책은 마케팅 부사장이지만 그가 하는 일은 폭넓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 전략부터 브랜드 카테고리 재정비, 혁신 제품 기획은 물론 소비자들의 문화적 트렌드 파악까지 총괄하며 맥주에 대한 열정을 쏟고 있다.  
 

호가닉 보타닉, 맥주의 틀을 깨다  

 
그가 최근 주력하는 제품은 지난 4월 호가든이 내놓은 신제품인 ‘호가든 보타닉’이다. 한국에 부임한 후 첫 라인업된 신제품이기도 하지만 의미도 남다르다. 보타닉은 호가든 한국팀과 글로벌팀 전문가들이 기획부터 레시피 개발까지 모두 한국에서 진행한 제품이다. 신제품을 최초로 선보인 곳 역시 한국이다.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제가 마케팅을 사랑하는 이유죠. 그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은 정말 흥미로운 시장입니다.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 뿐 아니라 소비자들 역시 다이나믹하고 빠른 변화를 즐기죠. 신제품 보타닉은 그런 한국 소비자들이 어떤 맛과 향·콘셉트를 선호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탄생했습니다. 저도주와 매치되는 맛과 원료를 탐색했고, 레몬그라스와 시트러스제스트를 통해 그 답을 찾았죠.”  
 
알렉산더 람브레트 오비맥주 마케팅 부문 부사장이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사진 김현동 기자]
 
람브레트 부사장은 그만큼 한국 소비자들이 호가든 브랜드에게 주요한 고객이자 테스트베드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에서 호가든의 선전은 눈에 띈다. 2002년 첫 출시된 후 매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2012년엔 처음으로 연간 판매량 100만 상자를 돌파했다. 흔한 라거 계열의 맥주에서 향과 맛이 독특한 밀맥주로 20∼30대 젊은 층 공략에 성공한 것. 현재까지도 호가든은 국내 수입맥주 1인당 소비량과 판매량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호가든은 깊은 풍미와 부드러운 목넘김은 물론 향긋하고, 은은한 아로마가 풍성한 제품입니다. 보리·홉·물만을 사용하는 독일의 ‘맥주 순수령’과 달리 허브·과일 등을 사용해 다양한 맛을 개발하는 벨기에인들의 창의성으로 탄생한 맥주가 바로 호가든이죠. 이 향과 풍미의 균형이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AB인베브는 일찌감치 한국이 지닌 시장 가치를 깨달은 뒤 호가든의 다양한 변화를 주도하도록 했다. 호가든 유자, 호가든 체리, 호가든 레몬, 호가든 그린 그레이프(2020년) 등 매년 깜짝 선물처럼 내놓은 한정판 제품들을 한국 시장에서 개발해왔다. 보타닉은 지금까지 출시된 한정판 제품과 달리 정식 라인이 확대되는 데 의의가 있다. 지속적으로 맛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 소비층은 평소 호가든을 즐겼던 소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기존 호가든의 알코올 도수인 4.9도보다 더 낮은 2.5도의 알코올 도수로 더 많은 소비자들이 더 편하게 호가든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한마디로 일상 속 여유로움. 예를 들면 친구들과 함께 모인 토요일 브런치나 피크닉, 혹은 거실 쇼파에서나 집 앞에 산책을 나갔을 때 등 언제 어디서나 부담 없이 마시기 좋다는 말이다. 맥주 애호가인 람브레트 부사장은 이를 ‘호가든 모먼트’라고 표현했다.  
 
“지난 토요일 한강에서 조깅을 하고 집에 들어와 시원하게 샤워를 한 뒤, 이제 여유로움을 느껴보자 하면서 호가든 보타닉을 꺼내 마셨죠. 그때가 말 그대로 ‘호가든 모먼트’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느끼고자 하는 어떤 순간에든 낮이든 밤이든 호가든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가든은 이제 갓 출시 한 달을 넘겼다. 시장에서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맥주라는 카테고리 내에서 그 누구도 글로벌하게 시도하지 않았던 최초의 시도라는 점도 그렇지만 소비자들은 ▲2.5도의 저도주 ▲세련된 보타닉만의 패키징 ▲향긋한 허브향 맥주라는 점을 긍정적 평가 요소로 꼽았다. 특히 마실 때 입안가득 퍼지는 시트러스 향은 텁텁한 맥주를 싫어하던 여성들의 입맛을 자극하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까다로운 품질… 한국서 인정받다  

 
그 강력한 브랜드파워는 품질에서 나온다고 람브레트 부사장은 말한다. 호가든이 새로운 제품 탄생단계부터 가장 신경 쓴 부분이기도 하고 타 브랜드와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호가든은 수입 1세대 맥주이지만 오비맥주가 벨기에 호가든 본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지난 2008년부터 대부분의 물량이 오비맥주 광주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수입맥주의 국내 생산을 두고 일부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람브레트 부사장은 소비자들에게 가장 신선한 맥주를 제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강조한다. 호가든 같은 저도수 맥주는 신선도가 생명이다. 2개월이나 걸려 벨기에에서 선박편으로 수입되는 것보다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이 더욱 신선하다는 설명이다.  
 
호가든 보타닉 제품. [사진 오비맥주]
 
그만큼 생산권한을 얻는 것 자체가 까다롭기도 하다. 호가든은 제조 과정에서 오렌지 껍질이나 고수 같은 재료가 들어가는 등 공정이 까다로워 본사에서 해외공장에서 생산하도록 쉽게 허가권을 내주지 않는다. 생산을 시작한 뒤에도 글로벌 브루마스터들이 파견돼 세부적인 품질 관리를 끊임없이 받는다.  
 
이 엄격한 기준을 가장 먼저 통과한 곳이 한국. 현재는 러시아·중국·베트남·인도 등의 국가에서도 생산 권한이 부여돼 호가든이 만들어지고 있다. 각 브루어리에서 생산된 모든 제품 샘플은 매달 정기적으로 본사가 있는 벨기에 루벤으로 전달돼 숙련된 테이스트 패널들의 평가를 받는다.  
 
“호가든 브랜드는 각 국가에서 생산되는 패치별로 평가를 받고, 어떤 패치가 됐건 일관성이 있게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양조방식에 첨단기술을 접목한 프로세스와 브루마스터들의 조화 덕분에 모든 패치 샘플에서 완벽한 퀄리티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이죠.”  
 
특히 한국에서 제조되는 호가든은 이 품평회에서도 인정받는 우수한 맛과 품질을 자랑하고 있다. 무엇보다 벨기에인인 람브레트 부사장에게 ‘본토 호가든’과 같은 품질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 
 
품질 다음으론 혁신.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또 다른 새로운 맛과 향에 대한 소비자 니즈와 다양한 영역에서의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연구 개발 역시 부지런히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최근 소비자 트렌드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죠. 이러한 변화 여정에서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파트너로 남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트렌드를 파악하고, 거기에 걸맞는 제품을 내놓는 게 중요합니다.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도 독특한 경험을 주기 위해 혁신적인 협업을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더 많은 소비자들이 품질이 검증된 호가든을 맛보고, 나아가 AB인베브의 훌륭한 맥주 브랜드를 알게 하기 위함이죠.”
 

맥주는 내 운명… ‘로직’과 ‘매직’의 조합 

 
그가 AB인베브와 인연을 맺게 된 데는 세 가지 운명이 작용했다고 말한다. 그가 벨기에인이라는 것, 맥주 애호가라는 점, 그리고 AB인베브의 대표 맥주 브랜드인 ‘스텔라 아르투아’를 제조하는 브루어리 근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점이다.  
 
“제 인생에 있어 어린시절 추억과 소중한 순간에는 모두 맥주가 함께했어요. 성인으로 인정 받던 18살이 그랬고, 가장 행복했던 결혼식도 마찬가지죠. 사람이 모여있을 때 즐거운 요소를 더하는데엔 맥주만큼 적합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소비자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맥주가 하는 것이죠. 맥주회사와 저의 인연은 어떻게 보면 그만큼 자연스럽고 당연했던 겁니다.”
 
지금의 AB인베브가 벨기에를 넘어 더 많은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기까지 람브레트 부사장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남들과 다른 길, 다른 생각,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그의 마케팅적 시도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다는 것. 가장 중점으로 둔 건 소비자 경험이다. 새로운 액체, 맛으로써 맥주 뿐 아니라 문화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가 중국에 재직중이던 2014년 버드와이저를 필두로 EDM(일레트로닉 댄스 뮤직) 문화를 첫 도입했던 것과, 지난해 3월 코로나19로 락다운 직전에 빠진 인도에서 버드엑스(버드와이저의 글로벌 일렉트로닉 뮤직 플랫폼)를 통해 2주간 200만명에게 라이브 스트리밍을 선보인 것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제품이 아닌 파트너로, 소비자들에게 잊지 못한 경험을 선사하는 것. 이는 람브레트 부사장의 꿈이자 소명의식이 됐다. 세계 시장에서 다양한 맥주 브랜드를 알리며 역사성을 띠는 일을 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결국 주류도 문화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가 동아시아의 거점이 되는 한국 오비맥주에 부임된 것도 그러한 상징성을 띠고 있다. 
 
알렉산더 람브레트 오비맥주 마케팅 부문 부사장이 호가든 보타닉 제품을 전용잔에 따르고 있다. [사진 김현동 기자]
 
새롭게 둥지를 튼 오비맥주에서 그는 마케팅 최고 수장으로 브랜드 총괄 역할을 담당한다. 카스와 오비·한맥 등 오비맥주의 대표 국내 브랜드 뿐 아니라 버드와이저·호가든·스텔라 아르투아 등 글로벌 브랜드를 아우른다. 첫 성과를 나타낼 호가든 보타닉을 시작으로 전 브랜드에서 그의 역할은 점점 커질 전망이다.   
 
“여러 브랜드가 가진 포트폴리오 장점을 가지고 각각 소비자 니즈에 맞는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에요. 바로 ‘로직(logic)’과 ‘매직(magic)’이죠. 로직은 일종의 제품 고유의 특성이고 매직은 감성입니다. 예를 들면 카스의 새로운 캠페인을 통해 상쾌함을 느끼고 싶을 때 어울리는 맥주로 ‘카스’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죠. 로직과 매직이 연결되면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새로움과 다름을 추구하는 한국 소비자를 자극하며 한발 앞서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브랜드 철학을 얹는 것. 람브레트 부사장은 지난 15년 간 이어온 그 절묘한 결합에 대한 고민을 한국에서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다.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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