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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학자의 인생…댄 애리얼리의 숨겨진 스토리 [조지선 심리학 공간]

전신 3도 화상 사고 후, 3년간 병원생활
투병생활 경험으로 ‘심리학’에 입문

 

도서 [부의 감각]과 [상식 밖의 경제학] 등 베스트셀러를 작성한 댄 애리얼리. [중앙포토]
대중은 학자의 연구를 통해 영감을 받지만 때로는 논문보다 연구자의 인생이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끔찍한 사고를 겪은 후, 기적 같은 삶을 일궈낸 댄 애리얼리(Dan Ariely)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미국 듀크대에서 행동경제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세계적인 행동경제학자 몇 명을 꼽은 명단에 그가 빠져 있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정도로 엄청난 업적을 쌓은 스타 연구자다. 우리에게는 도서 [부의 감각]과 [상식 밖의 경제학] 등 베스트셀러 저서를 쓴 학자로 알려져 있다.  
 
1991년 텔아비브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7년 만에 학위 3개(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인지심리학 석사·박사, 듀크대 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한눈 팔지 않고 학업에 매진한 수재라고 해도 벅찬 속도다. 그런데 다음 사실을 알게 되면 그의 학위와 면면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알게 된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세 살 되던 해 이스라엘 출신 부모를 따라 고국으로 돌아갔고 라마트하샤론에서 자랐다. 끔찍한 비극은 고등 3학년 시절에 시작됐다. 청소년 운동 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애리얼리는 야간에 행해지던 전통 의식을 위해 ‘불로 쓴 글귀(fire inscription)’를 준비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한 매체에서 그가 직접 밝힌 당시 사고 상황은 이렇다. “몇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화약을 만들었어요. 그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아직도 몰라요. 화약 가루를 섞은 다음, 스푼으로 조금 떴는데 갑자기 꽝하고 폭발해 버렸어요. 그 순간 엄청난 빛이 터졌고 뒤로 확 물러났죠. 방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고 온몸에 불이 붙었어요”
 
그는 전신 3도 화상을 입었다. 70%가 넘는 피부 부위가 불에 탔지만 거짓말처럼 살아났고 지옥 같은 3년의 병원 생활이 시작됐다. 2009년 테드(TED) 강연에서 그는 입원 시절 겪었던 고통에 관해 이야기했다. 가장 큰 괴로움은 상처 부위에서 거즈를 한 시간에 걸쳐서 떼어내는 과정이었다. 그는 제발 천천히 붕대를 제거해달라고 애원했는데 간호사들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얘야, 그렇게 하면 두 시간 내내 아플 거야. 이렇게 과감하게 떼어내야 네가 고생을 덜 할 수 있어. 우리가 일을 얼마나 오래 해왔는지 알고 있지?”
 
두 시간에 걸쳐 거즈를 살살 제거하는 것과 재빠르게 거즈를 떼어내서 한 시간에 처치를 끝내는 것. 어느 방법이 환자를 위한 것일까. 연구자가 된 후, 애리얼리는 실험을 통해 간호사들이 틀렸고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환자를 위해 애쓰는 마음씨 좋은 전문가들이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틀렸다.  
 
통증 감각에 중요한 것은 지속기간(duration)이 아니라 강도(intensity)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고통이 가장 심한 얼굴 부위부터 시작해서 그래도 견딜 만한 다리 부위로 처치를 끝내는 것이 통증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길고 긴 처치 과정을 거치며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개선 요소가 있을 때, 중간 처치를 잠시 중단하고 쉬는 시간을 줄 때, 환자들이 덜 괴로워한다는 것도 몰랐다.
 
투병 생활의 경험은 그를 심리학으로 이끌었다.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치료 과정을 겪는 환자들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싶었어요. 경험이 많은 간호사들도 환자들을 돌볼 때 종종 잘못된 판단을 한다면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고통 경험을 연구하는 것에서 범위를 넓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저지르는 실수가 어떤 패턴을 가졌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 주제들을 담은 책이 [상식 밖의 경제학]이다. 원전의 제목은 [predictably irrational]. 사람은 누구나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때가 많은데 그 비합리성에 예측 가능한 패턴이 있다는 의미다.  
 

고통스러운 삶에서 나온 심리학 전략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 테드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댄 애리얼리. [사진 화면 캡처]
이런 배경을 알고 그의 논문을 읽거나 강연을 들으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방심한 상태에서 애리얼리의 메시지를 듣다가 몇 차례 울컥한 경험이 있는데, 다음에 소개할 사례도 만만치 않다. ‘하기 싫은 일을 미루지 않는 방법: 자신에게 상 주기’, 평범해 보이는 이 주제에도 그의 경험이 얹히면 휴먼 다큐멘터리가 된다. 정말 끔찍하게 하기 싫었던 일을 미루지 않기 위해 애리얼리는 ‘유혹 묶기 전략(temptation bundling)’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긴 치료 과정 중,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감염된 혈액을 수혈받은 그가 C형 간염에 걸린 것이다. 인터페론(interferon)이라는 치료약을 사용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약을 주사한 후 1시간 이내에 고열과 구토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애리얼리는 1년 6개월 동안 1주일에 세 번씩 인터페론을 자신의 허벅지에 직접 주사했다. 필수 준비물은 토사물을 쏟아낼 양동이와 고열로 덜덜 떨리는 몸을 감싸기 위한 담요였다.  
 
18개월의 치료 과정이 끝난 후, 애리얼리의 주치의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이렇게 성실하게 약을 주사한 사람은 당신이 유일합니다.” 많은 사람이 중요한 일을 미룬다는 얘기다. 미래를 위해서는 이 투약 행위를 지속해야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어떻게 해서든 그 고통을 피하고 싶다. 그는 어떻게 이 고통스러운 행위를 미루지 않고 해낼 수 있었을까?
 
“제가 자기통제력이 남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라서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저도 일을 제법 미룹니다. 단지, 그 당시에 제가 사용했던 한 가지 트릭이 제대로 먹혔던 것뿐이에요. 저는 영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월·수·금 투약 시간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지요. 이 결정이 아주 주효했어요. 투약 날 아침이면 저는 비디오 가게로 달려갔어요. 영화를 두세 개 빌려서 온종일 메고 다니는 가방에 넣어서 다녔죠. 이 영화들이 얼마나 재미있을지 내내 기대하면서요. 집으로 돌아와서, 주사를 놓은 후에 영화를 바로 보기 시작했어요. 제가 해야만 하는 일, ‘투약’과 좋아하는 일, ‘영화 감상’ 사이의 연결을 만든 것이죠. 여러분도 이 트릭을 사용할 수 있어요”
 
지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연구 업적이 워낙 대단한 것이어서 그가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지만 화상으로 인한 고통은 현재 진행형인 듯하다. 사고 후 25년이 지난 시점에,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다. “글을 한 두 페이지 쓰고 나면 통증이 찾아와요. 하루에 쓸 수 있는 글의 분량과 다음 날 견뎌내야 하는 고통의 크기를 매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이런 이유로 이메일 자동 응답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작성해 놓기도 했다. “보내주신 메일에 제가 답장을 못 할가능성이 커요. 그런데 속상해하시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제 손이 잘 움직이지 않아서 그래요”
 
그의 인생을 알고 글을 읽으면 세계적인 연구자의 학문적 수월성이 아닌, 끝을 모르는 고통 앞에서 지적 호기심을 잃지 않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주말에 그의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미지근해져 버린 내 마음속에 작은 열정의 불꽃이 다시 피어오를지도 모른다. 
 
 
*필자는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심리과학이노베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이다.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을,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학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아메리카 온라인(AOL)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Netscape)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못난 게 아니라, 조금 서툰 겁니다] 저자이자 유튜브 ‘한입심리학’ 채널 운영자다.

 

조지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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