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투자나선 LG화학, '신약' 개발로 바이오 시장 정조준
글로벌 혁신 신약 3대 신성장동력으로 꼽아…1조원 투자 계획 밝혀
통풍 치료제 개발 위해 미국 보스톤연구법인 오픈, 내년 초 임상 3상 돌입
LG화학이 신약개발에 1조원을 투자하는 통 큰 결정을 내렸다.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빅파마와 어깨를 견주겠다는 포석이다. 지난 14일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글로벌 혁신 신약을 3대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꼽으면서 1조원 투자 계획을 밝혔다.
언뜻 LG화학의 투자 발표는 새로울 게 없어 보인다. 재계에서 바이오를 신성장동력으로 낙점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따져보면 LG화학처럼 신약 개발에 ‘올인’을 선언한 기업은 많지 않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인고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삼성이나 SK그룹은 의약품 위탁생산(CMO) 사업으로 먼저 사업을 궤도에 올린 뒤, 신약 개발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LG화학이 그간 바이오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투자 계획은 흥미롭다. 안정적인 사업 확장을 꾀하는 대신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신약 개발에 매달리는 험로를 택했기 때문이다.
물론 LG화학이 아무런 노하우도 없이 신의 확률로 꼽히는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국내 대기업 중에선 제약사업에 가장 먼저 발을 들였다. 1981년 LG는 민간기업 최초로 유전공학 연구소를 신설했다. 지금으로 치면 신약 연구소를 만들어서 40여 년간 한 우물 파고 있는 것이다. 이후 1990년엔 국내 최초 유전공학 의약품이자 선천성 면역결핍증 치료제인 '인터맥스감마'를 개발해 출시했다. 1991년에는 4세대 항생제(팩티브) 기술을 GSK에 이전하며 국내 첫 기술수출 성과를 올렸다.
LG 바이오 사업의 성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3년에 팩티브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국내 최초 신약이 됐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2012년 국내 최초 당뇨병 신약 제미글로도 탄생시켰다.
하지만 회사의 운명은 잠시 엇갈렸었다. LG생명과학은 지난 2002년 8월 LG그룹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분사됐다. 이는 지난 2003년 신약 팩티브가 국내 최초 FDA 승인을 받은 자신감이기도 했다. 이 팩티브에 대한 성과를 바탕으로 분사했기 때문이다.
이후 LG화학 생명과학본부는 지난 2017년 1월 LG화학이 LG생명과학을 다시 흡수합병하면서 재탄생했다. 바이오 사업 재도약에 나선 것이다.
LG화학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합병되기 바로 전엔 매출 규모가 5000억원 수준이었는데, 이 수준에서 자체적으로 R&D 투자나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에는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시 LG화학에 다시 흡수, 사업본부체제에서 중장기적으로 투자를 좀 더 공격적으로 하기 위해 합병을 선택하게 됐다.”
실제 LG생명과학은 지난 2005년부터 꾸준히 매출액 대비 R&D(연구개발) 비용 비율이 줄어든 때가 있었다. 막 분사한 LG생명과학의 매출액 대비 R&D 비용 비율은 29.4%였지만 2006년부터 하락하면서 2009년부터는 10%대로 대폭 줄었었다.
그러던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는 바이오 사업을 이끌 주요 역할을 하며 회사 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 매출은 LG화학 전체 매출의 2.2%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 6610억원은 웬만한 중견 제약회사 전체 매출과 맞먹는 수준이다. R&D 투자 역시 늘고 있다. R&D 비중은 생명과학본부 매출(6610억원) 대비 26%를 상회하며 국내 톱 제약·바이오 기업의 투자 수준을 유지 중이다. 지난 2016년 912억원이던 R&D 비용은 지난해 174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번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에 1조원을 투자하는 것은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 생명과학본부 전체 R&D에 들어가는 비용이 아닌, 신약 파이프라인에만 5년간 1조원 이상 투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케 할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도 준비돼 있다. 그동안 회사는 신약 파이프라인을 2019년 34개에서 2021년 현재 45개로 확대하고 R&D 투자를 늘리고 있다. 특히 생명과학사업본부가 강점을 갖고 있는 당뇨, 대사, 항암, 면역 4개 전략 질환군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임상 개발 단계에 진입한 신약 파이프라인도 2021년 11개에서 2025년 17개로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LG화학 바이오 사업이 정조준한 타깃은 글로벌 시장이다. 이를 위해 국내가 아닌 미국이나 유럽 같은 해외개발 중심으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가장 앞선 단계의 신약 과제는 통풍 치료제다. 미국 임상 2상의 결과 유효성 및 안정성 측면에서 기존 치료제들과 차별화된 신약 개발이 가능성이 확인됐다. 성공할 경우, 남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회사 차원에서 팩티브 이후 미국 FDA 승인을 받은 2번째 신약이 탄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신학철 부회장은 “(통풍 치료제 개발을 위해)미국의 보스톤연구법인을 오픈했고, 이 보스톤연구법인을 중심으로 내년 초에는 미국 임상 3상에 본격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며 “2027년 이후에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허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부회장은 이어 “희귀 비만 치료제라든가,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치료제 이런 것들은 미국의 임상 1단계에 있다”며 “LG 화학은 신약을 지속적으로 출시할 수 있는 안정적인 파이프라인 기반을 갖춰서 자체 개발과 동시에 전방위적인 오픈 이노베이션을 계속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LG화학이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신약개발에 1조원이라는 통 큰 결단을 내린 이유는 명확하다. 막대한 비용과 드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성공 시 부가가치가 굉장히 큰 사업이기 때문이다. LG그룹 차원에서도 LG화학 생명과학 본부가 바이오사업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존재나 다름없다. 글로벌 혁신 신약개발에 성공하면 바이오산업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어서다.
LG화학에 따르면 주목되는 통풍 치료제의 글로벌 시장은 현재기준 3~4조원에서 오는 2027년에는 5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시장은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 허가를 받게 된다면 2027년 기준 5조원 이상 시장 진출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다.
LG화학 관계자는 “혁신 신약 개발은 성공확률이 낮지만 성공했을 시 얻게 되는 부가가치가 굉장히 큰 사업이다 보니 공격적인 투자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승훈 기자 lee.seung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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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LG화학의 투자 발표는 새로울 게 없어 보인다. 재계에서 바이오를 신성장동력으로 낙점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따져보면 LG화학처럼 신약 개발에 ‘올인’을 선언한 기업은 많지 않다. 천문학적인 비용과 인고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삼성이나 SK그룹은 의약품 위탁생산(CMO) 사업으로 먼저 사업을 궤도에 올린 뒤, 신약 개발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LG화학이 그간 바이오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투자 계획은 흥미롭다. 안정적인 사업 확장을 꾀하는 대신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신약 개발에 매달리는 험로를 택했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 중 제약 사업에 가장 먼저 도전
LG 바이오 사업의 성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3년에 팩티브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국내 최초 신약이 됐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2012년 국내 최초 당뇨병 신약 제미글로도 탄생시켰다.
하지만 회사의 운명은 잠시 엇갈렸었다. LG생명과학은 지난 2002년 8월 LG그룹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분사됐다. 이는 지난 2003년 신약 팩티브가 국내 최초 FDA 승인을 받은 자신감이기도 했다. 이 팩티브에 대한 성과를 바탕으로 분사했기 때문이다.
이후 LG화학 생명과학본부는 지난 2017년 1월 LG화학이 LG생명과학을 다시 흡수합병하면서 재탄생했다. 바이오 사업 재도약에 나선 것이다.
LG화학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합병되기 바로 전엔 매출 규모가 5000억원 수준이었는데, 이 수준에서 자체적으로 R&D 투자나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에는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시 LG화학에 다시 흡수, 사업본부체제에서 중장기적으로 투자를 좀 더 공격적으로 하기 위해 합병을 선택하게 됐다.”
실제 LG생명과학은 지난 2005년부터 꾸준히 매출액 대비 R&D(연구개발) 비용 비율이 줄어든 때가 있었다. 막 분사한 LG생명과학의 매출액 대비 R&D 비용 비율은 29.4%였지만 2006년부터 하락하면서 2009년부터는 10%대로 대폭 줄었었다.
그러던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는 바이오 사업을 이끌 주요 역할을 하며 회사 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LG화학 생명과학사업본부 매출은 LG화학 전체 매출의 2.2%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 6610억원은 웬만한 중견 제약회사 전체 매출과 맞먹는 수준이다. R&D 투자 역시 늘고 있다. R&D 비중은 생명과학본부 매출(6610억원) 대비 26%를 상회하며 국내 톱 제약·바이오 기업의 투자 수준을 유지 중이다. 지난 2016년 912억원이던 R&D 비용은 지난해 174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번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에 1조원을 투자하는 것은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 생명과학본부 전체 R&D에 들어가는 비용이 아닌, 신약 파이프라인에만 5년간 1조원 이상 투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케 할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도 준비돼 있다. 그동안 회사는 신약 파이프라인을 2019년 34개에서 2021년 현재 45개로 확대하고 R&D 투자를 늘리고 있다. 특히 생명과학사업본부가 강점을 갖고 있는 당뇨, 대사, 항암, 면역 4개 전략 질환군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임상 개발 단계에 진입한 신약 파이프라인도 2021년 11개에서 2025년 17개로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LG화학 바이오 사업이 정조준한 타깃은 글로벌 시장이다. 이를 위해 국내가 아닌 미국이나 유럽 같은 해외개발 중심으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가장 앞선 단계의 신약 과제는 통풍 치료제다. 미국 임상 2상의 결과 유효성 및 안정성 측면에서 기존 치료제들과 차별화된 신약 개발이 가능성이 확인됐다. 성공할 경우, 남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회사 차원에서 팩티브 이후 미국 FDA 승인을 받은 2번째 신약이 탄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통풍 치료제 신약 개발부터 시작
신 부회장은 이어 “희귀 비만 치료제라든가,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치료제 이런 것들은 미국의 임상 1단계에 있다”며 “LG 화학은 신약을 지속적으로 출시할 수 있는 안정적인 파이프라인 기반을 갖춰서 자체 개발과 동시에 전방위적인 오픈 이노베이션을 계속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LG화학이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신약개발에 1조원이라는 통 큰 결단을 내린 이유는 명확하다. 막대한 비용과 드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성공 시 부가가치가 굉장히 큰 사업이기 때문이다. LG그룹 차원에서도 LG화학 생명과학 본부가 바이오사업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존재나 다름없다. 글로벌 혁신 신약개발에 성공하면 바이오산업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어서다.
LG화학에 따르면 주목되는 통풍 치료제의 글로벌 시장은 현재기준 3~4조원에서 오는 2027년에는 5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시장은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 허가를 받게 된다면 2027년 기준 5조원 이상 시장 진출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된다.
LG화학 관계자는 “혁신 신약 개발은 성공확률이 낮지만 성공했을 시 얻게 되는 부가가치가 굉장히 큰 사업이다 보니 공격적인 투자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승훈 기자 lee.seung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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