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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 구독 유목민’ 기자의 스포티파이 체험기

출시 초기 혹평 듣던 글로벌 1위 사업자 스포티파이
신통한 개인 큐레이션 기능, 한국서 얼마나 먹힐까
178개 국가 3억5600만명의 가입자 데이터가 무기

 
 
스포티파이는 지난해 R&D에 조 단위의 돈을 투자했다.[사진 스포티파이]
기자는 여러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을 옮겨 쓰는 ‘구독 유목민’이다. 멜론, 바이브, 지니, 벅스 소리바다, 플로, 카카오뮤직, 유튜브뮤직 등 대부분의 스트리밍 서비스에 계정을 개설했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엠넷, 밀크뮤직 등도 썼다.  
 
이렇듯 다양한 서비스에 자취를 남긴 이유는 간단하다. 가입 초기에 주어지는 무료 혜택이나 큰 폭의 할인율만 누리고 구독을 취소했다. 체험 마케팅을 통해 오랫동안 유료 가입자로 눌러앉게 하고 싶어 했을 서비스의 노림수는 빗나간 것이다. 특히 서비스마다 “당신의 취향을 이해한다”며 여러 곡을 추천해주지만, 그 기능에 만족하기 어려웠다. ‘좋아요’를 누른 음악과 비슷한 장르를 보여주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듣던 2000년대 힙합·R&B 음악을 주로 선호하는 ‘개인 취향’에 알맞은 음원이 많지 않은 탓도 있었다.  
 
어찌 됐든 월 1만원 안팎의 요금을 낼 만한 매력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초기 마케팅 혜택이 끝날 때마다 구독을 해지했던 이유다. 
 
이들 서비스 입장에서 기자는 ‘체리피커’였다. 이벤트로 주는 실속만 챙기고, 정작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는 얄미운 고객이다. 물론 가입하고 혜택만 누리다 해지하는 걸 반복하는 유목민 생활엔 한계가 있다. 계정은 한번 만들면 끝인 데다, 복귀 유저를 노리는 특별이벤트가 매번 벌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동안은 광고를 봐야 하는 번거로움을 참고, 유튜브로 음원 듣기를 대체했다.  
 
지난 7월 초 스포티파이에 가입한 목적 역시 ‘첫 달 무료’다. 이미 “소문난 잔치에 볼 게 없다”는 미디어의 혹평을 주의 깊게 봤다. 출시 초기 미흡한 음원 확보와 비싼 요금제를 두고 여러 구설에 휘말렸다. 실적이 돋보이지 않았다는 각종 통계 데이터도 나왔다. 
 
실제로 스포티파이의 국내 상륙 성공 가능성을 둘러싼 전망은 불투명했다. 멜론, 지니 같은 기존 서비스의 지배력이 굳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찌 됐든 처음 한 달은 무료이니, ‘속는 셈 치고’ 써보기로 했다. 앱을 다운받고 가입을 하자마자 ‘취향 수집’을 하는 건 여느 스트리밍 플랫폼과 다를 게 없었다.  
 
선호하는 아티스트를 고르라는 건데, 커먼(Common)을 선택하자 제이딜라(J Dillia), 데 라 소울(De La Soul), 더 루츠(The Roots) 등 2000년대 유행하던 힙합 아티스트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여기까진 뻔했다. 비슷한 시대에 함께 활동했던 뮤지션이었다.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도 능히 할 수 있는 기능이다. 
 
스포티파이의 큐레이션 기능에 흥미를 느낀 건 시간이 조금 지나서였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사진을 하나씩 누르다 보니 이내 요즘 아티스트의 이름이 드러났다. ‘트웬티88(Twenty88)’,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 등 취향을 관통하는 최신 뮤지션이었다. 소울 밴드인 ‘디 인터넷(The Internet)’도 장르의 결이 다르다는 난관을 딛고 추천 리스트에 올랐다.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면서도 일정한 흐름을 갖춘 다양한 아티스트를 한눈에 볼 수 있어 흡족했다.  
 
무료 체험이 끝나가는 데도 구독을 해지하고 다시 유목민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월 1만900원(스포티파이 프리미엄 개인 서비스)은 월 8000~9000원 안팎의 요금제를 갖춘 국내 플랫폼보단 무거웠지만 지갑을 열 만한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취향 분석을 토대로 그날그날 추천 음악을 엮는 ‘데일리 믹스’, 취향과 연령까지 분석해 학창 시절 유행하던 히트곡을 들려주는 ‘타임캡슐’ 등의 기능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능은 단순해 보이면서도 취향에 들어맞는 곡을 알맞게 추천해 설득력이 있었다.
 

R&D 비용 매년 증가…1분기에 7500억원 투자

특히 스포티파이가 세르지오 멘데스의 ‘타임레스(TIMELESS)’ 앨범을 권유했을 땐 꽤 놀랐다. 성인이 된 직후 한창 빠져서 듣던 앨범이었는데, 그 뒤론 잊고 지냈기 때문이다. 브라질 음악의 거장이자 보사노바의 제왕으로 불리는 그가 팝 음악 일색인 기자의 플레이리스트에 등장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 앨범이 미국의 유명 팝 아티스트와 협업해 만든 결과물이기 때문이었으리라. 비슷한 장르만 기계적으로 추천하는 다른 플랫폼보다 추천 기능이 훨씬 고도화했다는 걸 느꼈다.
 
물론 이는 기자 개인 경험의 단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스포티파이 알고리즘의 수준은 숫자로 증명된다. 스포티파이의 연구·개발(R&D) 비용은 수년째 증가하고 있는데, 가장 최근인 1분기에만 5억4800만 유로(약 7500억원)를 쏟았다. 지난해 1분기(4억7200만 유로)와 견주면 16.1%나 증가한 수치다. 연간으로 따지면 조 단위 투자가 이뤄지는 셈이다.
 
남다른 취향 분석 기능도 단순히 ‘좋아요’를 누른 몇몇 노래로 인공지능(AI)이 결정짓는 구조가 아니다. 고도화한 알고리즘과 더불어 음악 전문가 집단(에디토리얼팀)이 일일이 AI 추천을 보완하고 있다. 회사 측은 이를 ‘알고토리얼(알고리즘+에디토리얼)’이라고 명명했다. 전 세계 178개 국가 3억5600만명의 가입자의 데이터가 축적·분석된 결과이기도 하다. 
 
써보면 다르다던 스포티파이는 진짜 써보니 달랐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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