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지역별 차등 적용’ 최재형 아닌 김동연 먼저 꺼냈다
2018년 김동연 부총리 “내부 검토 중”…여당 반발에 수면 아래로
최저임금위 TF “지역 낙인효과와 지역별 노동력 수급 왜곡 우려”
차등 지급하는 일본, 지역에 따라 시급 2000원 이상 차이나기도
소상공인연합회 “도입 필요성 동감하나 관련 연구 아직 미흡해”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을 비판하며 ‘지역별 차등 적용’을 꺼내 들고 나왔다. 하지만 최 전 원장의 발언을 두고 여당에서는 지역 차별을 조장하고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최 전 원장은 지난달 31일 캠프 메시지를 통해 “일자리를 빼앗는 최저임금 인상은 범죄와 다름없다”며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역설적으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를 양산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면 기업유치와 지역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배진한 충남대 명예교수 발언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의 일자리, 경제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비수도권 청년들 지역 떠나라고 등 떠미는 말” 비판
최 전 원장의 해명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날 선 비판에 나섰다. 2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강병원 최고위원은 “최 전 원장이 대안이라고 내놓은 지역별 최저임금 차별도 어이가 없다”며 “최 전 원장의 주장대로라면 어느 지역 국민을 차별하겠나. 비수도권 국민은 수도권보다 싼값으로 취급받는 것이 과연 헌법정신에 맞는 합당한 일인가”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대선 주자인 박용진 의원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어느 지역, 어느 국민에게 ‘서울보다 싼값에 임금을 책정받아야 마땅하다’ 하실 건가”라며 “지역이 발전하지도 못 했는데 인건비마저 헐값 취급받으면 서울 집중을 더 부채질할 것”이라고 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도 SNS에서 “비수도권 지역 청년들에게 지역을 떠나라고 등 떠밀겠다는 말”이라고 힐난했다.
최 전 원장의 발언이 뭇매를 맞고 있는 가운데 ‘지역별 차등 적용’ 발언은 이미 지난 2018년 당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10월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선 당시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 대한 질문을 받고 “최저임금을 지역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방안을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가 함께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힌 것이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폭으로 일정한 범위를 주고 지방(지방자치단체)에 결정권을 주는 것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살펴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경제 수장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김동연 당시 발언에 고용부 “내부 검토 특별히 없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고용노동부(고용부)는 특별한 내부 검토는 없었다는 반응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 통화에서 “지역별 혹은 업종별 차등 적용 등 하나의 사안만 따로 검토한 적은 없다”며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던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과정을 (당시 김 부총리가) 언급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최저임금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권고안으로 여러 논의가 이뤄진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별 차등 적용만 집중적으로 검토한다는 것은 부적절하고 현실적으로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7년 9월부터 12월까지 노·사·공익위원이 추천한 전문가 18명으로 최저임금 제도개선 TF를 구성한 바 있다. 당시 TF는 최저임금 산입 범위, 결정 구조, 차등 적용 등 제도개선 사항에 대한 집중 논의를 거쳐 권고안을 제시했다.
당시 권고안에 따르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어렵다는 결론이 났다. 특히 지역별 차등 적용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일일생활권이고, 지역별 구분에 따라 노동력이 이동돼 지역 낙인효과가 우려되며, 지역별 노동력 수급을 왜곡하고 국민통합과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할 수 있어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해외서도 흔치 않은 지역별 차등 적용
지역별 차등 적용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최저임금법 제4조에는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과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 이 경우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해 정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경영계가 ‘업종별 차등 적용’을 주장하는 근거다. 하지만 지역별과 관련해서는 관련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최저임금은 시행 첫해인 1988년 2개 업종 그룹으로 구분해 적용한 이후로는 업종별·지역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한 적이 없다.
세계적으로도 지역별 차등화는 일반적이지 않다. 최저임금위에 따르면 선진국 중에서 지역별 차등을 두는 곳은 일본과 미국 정도다. 일본에선 중앙최저임금심의회가 기준을 제시하면 47개 지방자치단체별(지자체) 심의회가 최저임금을 정한다. 47개 지자체는 임금 지급 능력을 기준으로 A~D까지 4가지 등급으로 임금을 적용한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A등급인 도쿄 인근 가나가와 현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1012엔(약 1만619원)이다. D등급인 아키타 현, 오이타 현은 792엔(약 8310원)이 적용된다.
미국의 최저임금은 연방법·주법·카운티(County)조례에 따라 세세하게 분류한다. 지난해 1월 기준 연방정부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7.2달러(한화 약 8283원)다. 하지만 워싱턴DC의 최저임금은 이의 두 배에 달하는 14.0달러(1만6100원)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소상공인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지역별 차등 지급과 관련,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 통화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의 고통과 취약계층의 일자리 감소와 관련해 정치권에서 관심을 갖는 목소리가 커진다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도입 필요성에는 동감하나 업종별 차등 지급 관련 조사가 미흡한 상황이라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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