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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신라 vs 김기병 회장…‘동화면세점’ 폭탄 돌리기의 끝은?

4년째 소송 중…1‧2심 뒤집힌 판결, 대법원 운명은?
“황금알인 줄 알았는데 거위”…면세점 담보로 투자 발목
면세에 발 빼는 김 회장…오픈한 ‘제주 드림타워’에 사활

 
 
‘국내 최초 시내면세점’ 타이틀을 갖고 있는 동화면세점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전락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 광화문사거리에 있는 동화면세점. 1973년 생긴 ‘국내 최초 시내면세점’ 타이틀을 갖고 있는 이곳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전락했다. 호텔신라가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과 4년째 벌이는 소송전이 그 배경이다. 특이하게도 동화면세점을 서로 갖지 않겠다며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소송이다.  
 
더 큰 문제는 동화면세점이 처한 사정이다. 시내면세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성 우려와 함께 매력도가 떨어져 ‘계륵’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법원 1심과 2심 판단 역시 정반대로 엇갈리면서 상황은 더 알 수 없게 흘러가고 있다. 동화면세점 폭탄은 누구에게서 터질까.  
 

용산역 개발사업 실패…갈등의 시작  


업계에 따르면 동화면세점 지분 매각과 관련 호텔신라와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 간 소송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 결과에 따라 호텔신라는 애물단지 동화면세점을 떠안아 ‘매각이냐 철수냐’ 기로에 서게 되고, 김 회장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면세점을 어떻게든 운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김 회장은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막내 여동생인 신정희 동화면세점 대표의 남편이다.
 
국내 최초의 면세점 동화면세점 [중앙포토]
호텔신라와 김 회장의 소송전 발단은 2013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롯데관광의 용산역 개발사업이 실패를 겪으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롯데관광은 호텔신라에 김 회장의 동화면세점 지분 19.9%를 600억원에 매각했다. 
 
이때 3년 후 호텔신라가 해당 지분을 매도할 수 있는 풋옵션(매도청구권) 계약을 체결했다. 김 회장이 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위약책임으로 잔여 지분 30.2%를 추가로 귀속시키는 조건도 달았다. 이 조건을 제시한 것은 호텔신라다. 
 
당시 업계에선 이를 두고 호텔신라가 동화면세점을 손에 넣기 위한 포석으로 봤다. 동화면세점은 루이비통과 샤넬, 에르메스 등 ‘3대 명품’을 모두 유치했을 뿐 아니라 광화문 요지에 위치해 있어 경쟁력이 높았다. 
 
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신세계란 분석이다. 김 회장이 내놓은 동화면세점 지분을 신세계그룹에서 인수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치자 호텔신라가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거액을 내놓는 배경이 됐다는 해석이다.  
 
문제는 그해 관세법이 개정되면서다. 면세점 운영 특허가 대기업과 중견‧중소로 구분됐고, 다수의 업체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장벽이 낮아졌다. 호텔신라가 견제구를 날렸던 신세계그룹도 신세계 자회사로 신세계디에프를 설립하고 면세점 개점에 박차를 가했다. 
 
더욱이 대기업집단에 속한 호텔신라는 중견‧중소 특허를 가진 동화면세점을 운영할 수도 없는 상황. 호텔신라 입장에선 더이상 동화면세점 지분을 들고 있을 이유가 없던 셈이다. 
 
갈등이 본격화 된 건 2016년, 호텔신라의 풋옵션을 김 회장이 거부하면서다. 호텔신라는 지분 인수 3년 뒤인 2016년 6월이 되자 풋옵션을 행사해 김 회장 측에 주식을 재매입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채무불이행을 선언, 동화면세점 경영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변제를 대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담보였던 동화면세점 지분 30.2%도 내놓겠다고 맞섰다.  
 
호텔신라는 결국 법정행을 택했다. 2017년 김 회장을 상대로 주식매매대금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선 원고(호텔신라) 일부 승소 판결이 났지만 2심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1심 재판부는 원고가 매매대금을 받지 못하고 그보다 가치가 떨어진 대상 주식과 잔여 주식을 보유하는 것은 대상 주식의 매도 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잔여주식 무상 귀속 위약별 규정을 호텔신라가 만들었으므로 경영권 취득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호텔신라가 신세계를 견제하는 동시에 위치 좋고 경쟁력 있는 동화면세점이 탐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운영도 할 수 없게 되고 동화면세점 사정도 갈수록 안 좋아지자 발을 빼는 것이고, 김 회장도 이 기회에 골칫덩이 동화면세점을 어떻게든 털어버리자는 강한 의지가 담긴 싸움”이라고 말했다.  
 

무리한 지분투자?…호텔신라의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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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신라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김 회장이 풋옵션을 받아들여 지분을 다시 사는 것이다. ‘현금으로 빌려 갔으니 현금으로 갚으라’는 게 호텔신라 측 주장이다. 김 회장이 보유한 롯데관광개발 주식 등을 볼 때 변제 여력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 회장은 상장사인 롯데관광개발 최대주주로, 총 주식의 58.31%를 보유 중이다.  
 
만약 호텔신라가 김 회장 측의 동화면세점 지분 30.2%까지 떠안으면 동화면세점 지분율이 50.1%로 오르면서 최대주주가 된다. 동화면세점이 호텔신라 자회사로 편입되는 셈. 하지만 대기업의 중소중견 면세점 경영이 금지된 만큼 곧바로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법인은 살아 있어도 운영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사업권을 포기하거나 철수해야한다”면서 “하지만 시내면세점 경쟁이 치열하고 코로나19 펜데믹까지 겹쳐있는 이 시국에 판다고 해서 시내면세점 운영권을 살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말했다.  
 
실제 동화면세점은 5년째 적자 늪에 빠져있다. 매출은 2016년 3459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해마다 줄어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2203억원까지 떨어진 상태다. 2015년 15억원 흑자를 낸 이후  2016년부터 적자전환해 지난해엔 21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5년간 누적된 적자만 850억원에 달한다. 업계에선 사실상 동화면세점 M&A는 불가능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호텔신라의 자충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만큼 동화면세점에 대한 투자 결정이 섣불렀다는 지적이다. 당시 호텔신라의 실적도 좋지 않았다. 무리한 욕심으로 나선 무리한 지분투자가 결국 독약이 돼 돌아왔다는 분석이다.  
 

수익성‧상징성도 물음표…존속자체 어려워  

김 회장이 패소할 경우 ‘1호 시내면세점’이라는 명맥 유지는 가능해진다. 김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롯데관광개발 지분 일부를 정리해 호텔신라로부터 동화면세점 지분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운영한다고 해도 가시밭길이다. 동화면세점이 처한 영업상황은 최악에 가깝다. 루이비통과 구찌 등 명품 매장이 잇따라 철수했고 수익성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유일한 중소‧중견기업 면세점이라는 타이틀 외엔 상징성이 전무하다.  
 
서울 동화면세점 모습. [사진 뉴시스]
김 회장 스스로 운영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화면세점은 최근 한국면세점협회 정회원 신분에서 준회원 신분으로 변경을 요청하는 등 면세사업에서 힘을 빼고 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기존 엔타스와 SM면세점 등이 모두 문 닫고 사라지면서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가는 중소중견기업 면세점”이라면서도 “명맥은 유지할 수 있겠으나 영업력이 떨어져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존이 어려워 보인다”고 관측했다.
 
이 관계자는 “김 회장 입장에선 동화면세점을 포기하더라도 어떻게든 리조트와 카지노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게 목표일 것”이라며 “동화면세점은 호텔신라, 김 회장 어느 쪽이 승소하더라도 존속 자체가 어려운 계륵이 됐다”고 덧붙였다.
 
롯데관광개발 관계자는 “당시 계약 자체가 호텔신라 측에 훨씬 유리했고, 그만큼 절박했던 자구 노력안 중 하나였다”면서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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