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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家 탑골공원]“피죤으로 머리 감아도 되나요?” 78년엔 이런 질문도

1978년 출시한 국내 1호 섬유유연제
7년 동안 1톤 트럭 1200대 분량 샘플 증정
남성 모델로는 손지창·김수현·영탁 출연

 
 
배우 김수미가 출연한 피죤 광고 화면. [사진 피죤]


“그땐 그랬지.” 생활과 밀접한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추억 속 옛 이야기를 끄집어냅니다. 중장년층에겐 '추억 소환', 1020세대에겐 '옛 것이지만 새로운' 콘텐트를 선보입니다. 1990년대 영상과 사진을 온라인상에서 공유하며 인기를 끌던 ‘온라인 탑골공원’의 유통가 확장판이죠. 당대 스타의 광고 사진에서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들춰보겠습니다.
 
지금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생활용품이 과거에는 낯선 물품으로 여겨지던 것이 있다. 올해로 43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1호 섬유유연제, ‘피죤’ 이야기다. 1978년 세탁기 보급이 일반적이지 않던 시대에 섬유유연제 피죤이 처음 출시됐다. 당시 해외에서는 섬유유연제가 사용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빨랫비누만이 옷 세탁에 사용됐다. 그만큼 피죤은 국내 소비자에게 생소한 제품이었고, 이 때문에 당대 재미난 해프닝도 여럿 있다.  
 
출시 당시 피죤이 소비자에게 가장 문의받았던 질문 중 하나는 “피죤으로 머리 감아도 되나요?”였다. ‘의류의 정전기를 없애 준다’는 내용의 TV 광고를 내보냈는데, 이를 본 소비자들이 ‘머리카락 정전기가 심한데 피죤으로 감으면 머리카락 정전기도 없애주냐’는 등의 문의를 해왔다. 이 소비자 문의 후 피죤 연구실 한쪽에서는 옷감 대신 가발이 등장하기도 했다. 피죤 연구원들이 소비자 문의에 답하기 위해 직접 피죤으로 머리를 감아보고, 각종 가발로 모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피죤으로 머리카락을 감아도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었다.  
 
피죤 출시 당시 흑백 TV광고 모습. [사진 피죤]
 

7년간 샘플 증정하며 제품 홍보  

또 섬유유연제 쓰임을 몰라, 피죤을 선물 받아도 그냥 버리거나 세탁 세제인줄 알고 빨래를 하는 사람 등이 대다수였다. 이에 피죤은 제품 샘플을 제작해 무료로 나눠주기 시작했다. 피죤은 1978년부터 84년까지 7년 동안 1톤 트럭 1200대 분량의 샘플을 나눠주며 제품을 알렸다. 요즘엔 제품 샘플을 나눠주는 ‘체험 마케팅’이 대중화됐지만, 70년대 후반에는 이 같은 제품 나눔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피죤 직원들은 당시 중·고교 가사교사와 대학 의류학과 교수들을 쫓아다녔다. 당시로선 금남의 구역이던 이화여대와 숙명여대 등 여자 대학 교정도 숱하게 찾아다녔다. 계 모임은 물론 성당·교회·반상회 등 주부들이 있는 곳 중심으로 돌아다니며 제품을 홍보했다.  
 
1978년 피죤 출시 당시 제품 모습. [사진 피죤]
 
샘플을 증정하고 나니 전국에서 사용법을 묻는 전화가 빗발쳤다. ‘이게 왜 필요한가’부터 ‘어떻게 사용하느냐’ ‘다른 제품과 섞어서 사용하니 문제가 생겼다’는 식의 불만 사항도 들어왔다. 또 겨울이 돼서 기온이 영하 18도 이하로 떨어지자, 얼어버린다는 제품 문제점을 알리는 소비자 반응도 있었다. 피죤은 이 같은 소비자 불만을 정리하며, 추운 겨울에도 제품이 얼지 않게 하는 등 제품 기술력을 키웠고 서비스 차원으로는 소비자를 위한 ‘3시간 애프터서비스팀’을 운영했다. 이 팀은 ‘전국 어디든 3시간 이내에 달려가 문제를 해결’하는 팀으로 출시 초기 당시 소비자층을 넓히는 데 한몫했다.  
 

김수미·박순애·신애라도 “빨래엔 피죤~”

배우 박순애, 신애라와 배우 김민정 아역 시절 출연한 피죤 광고. [사진 피죤]
 
생소한 제품인 만큼 피죤은 광고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1983년부터 TV와 라디오, 신문을 중심으로 “빨래엔 피죤~”이라는 광고 카피를 알렸다. 광고는 대부분 모델이 행복한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으로 연출해, 제품과 함께 부드럽고 따뜻한 섬유를 연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모델로는 당대 스타였던 김수미·신애라·이미연·박순애·김정은·수애·박주미·김혜수·진희경 등 여성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모델은 해마다 바뀌었지만 광고 로고송인 “빨래엔 피죤~”은 항상 동일하게 불렸다. 피죤 관계자는 “TV 광고마다 계속 같은 로고송을 삽입해서 ‘피죤’하면 저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지도록 하자는 취지였다”며 “우리의 의도는 적중했다”고 말했다. 
 
피죤 남성 광고 모델로 배우 김수현과 가수 영탁이 발탁됐다. [사진 피죤]
 
또 대부분이 여성 배우가 모델이었지만, 피죤에도 남성 모델이 있었다. 피죤의 첫 번째 남성 모델로는 2005년 배우 손창민이 출연했고, 2012년에 배우 김수현, 2021년에는 가수 영탁이 모델로 나왔다.  
 
78년 출시부터 현재까지 광고 카피 “빨래엔 피죤~”은 동일하게 쓰지만 제품과 제품 포장재는 과거 것보다 진화하고 있다. 최근엔 친환경 재생 PET포장재를 도입하고, 실외건조가 아닌 실내건조를 해도 세탁물에서 냄새가 나지 않고 잘 마를 수 있는 실내 건조용 섬유유연제를 내놓으며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피죤은 2020년에 매출 1000억원대를 넘어섰다.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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