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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인사이트] 거짓말 또 거짓말…‘양치기 소년’된 신세계

‘울산판 센텀시티’ 기대했지만 오피스텔 개발로 변경
8년째 울산 부지 놓고 갈팡질팡…불안한 수익 모델
주민들 인근 점포 자영업자 피해 커, 울산 중구도 난감
신세계 경영이념 ‘고객, 불만, 기회’…신뢰 다시 찾아야

 
 
울산시 중구 울산혁신도시 전경 [중앙포토]
 
벌써 8년째. 신세계가 말을 번복하고 있다. 2013년에 백화점을 짓겠다며 사들인 울산혁신도시 부지를 두고서다. 신세계는 당시 이 땅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매입하면서 울산시로부터 1200%에 달하는 용적률 등 각종 혜택을 받았다.  
 
‘울산판 센텀시티’가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던 탓일까. 신세계의 계속된 '희망 고문'을 철썩같이 믿어오던 주민들의 배신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주민뿐 아니라 백화점 호재만 보고 형성된 인근 상권의 반발도 거세다. 울산 주민들 사이에선 이제 ‘오피스텔 카드’까지 나온 이상 더 이상의 희망 고문을 접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백화점? 쇼핑몰? 호텔?…8년간 변경 또 변경   

울산 혁신도시 신세계 부지 오피스텔 개발 계획 반대 협조문. [사진 울산혁신지구 발전연합회]

 

처음 약속은 백화점이다. 신세계는 부지 매입 이듬해인 2014년 신세계 센텀시티형 복합쇼핑몰(2015년 착공, 2018년 완공)을 짓겠다고 밝혔다. 2년 동안 별다른 진척이 없자 2016년 울산중구와 업무협약을 맺고 2017년 착공을 한번 더 약속했다. 당시 이 자리에 참석한 대표이사와 임원들은 “신세계가 백화점을 짓겠다고 했다가 철회한 적이 없다”면서 계획 이행을 못 박았다.  
 
하지만 역시 지켜지지 못했다. 이후로도 수년간 울산 부지 개발은 삽 한번 뜨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신세계 측에서 사업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울산중구 주민을 중심으로 여론이 들끓자 한동안 묵묵부답이던 신세계는 지난해 10월 변경된 계획안을 내놨다.  
 
스타필드형 복합쇼핑몰(2023년 착공, 2025년 완공)이다. 상업시설, 레지던스, 별마당도서관 등이 포함된 쇼핑몰. 그때까지만 해도 주민들 사이에선 한번만 더 믿어보자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지난 6월말 1440실의 오피스텔 계획안이 나오면서 8개월 만에 없던 일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 사이 50층 레지던스호텔이 유력하게 검토됐다는 말도 나온다. 7~10층의 상업시설과 주민편의시설 위로 레지던스호텔이 들어설 계획이었으나 신세계 측에서 코로나19로 호텔업황이 어렵고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아 진행이 어렵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탈 울산’ 행렬 가속에 ‘현대 파워’도 신경  

물론 신세계가 울산을 놓고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울산은 지리적 특성상 사업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 지역이다. 부산·경남에 묻혀 도시 경쟁력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조선업·중공업을 기반으로 과거 산업도시 축으로 성장하긴 했지만 경기침체로 근로자들이 울산을 떠나는 ‘탈 울산’ 행렬이 수년간 지속돼오고 있다. 
 
2015년 120만명에 이르던 울산시 인구는 최근 113만명대로 주저앉았다. 주변 상가와 오피스텔 등의 공실률도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울산혁신도시 부지를 두고도 말이 많았다. 우정동 혁신도시는 도심 근처가 아닌 구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애초에 ‘혁신’을 붙일만한 땅이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이곳은 한때 울산의 중심지였지만 남구 신시가지로 상권이 넘어간 뒤 상권이 완전 침체됐다. 대중교통 수단도 부족했고 접근성도 취약해 단점이 많은 지역으로 꼽혔다.  
 
또 다른 특징은 '현대 파워'다. 현대백화점이 울산점과 울산동구점 두 곳에 진출해 있다. 울산지역 내 백화점 실적은 2016년 조선업 불황 시작과 함께 꾸준히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지만 현대백화점은 유일하게 명맥유지를 하고 있다는 평가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현대 계열의 복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울산 동구에 위치한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15개 점포 중 가장 낮은 매출을 기록했다. 파워가 있어도 장사하긴 쉽지 않은 곳이라는 게 어느 정도 증명된 셈이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백화점이나 복합쇼핑몰 설립은 신세계가 투자 대비 수익을 거둬들이기엔 매우 불안한 모델이었던 게 사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울산은 대중교통이 불편해 대부분 자차로 동부산까지 가서 쇼핑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신세계가 들어온다면 그냥 장사 안 되는 동네 백화점이 될 게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신적‧재산적 피해 늘어…“약속 이행하라”   

울산시 중구 울산혁신도시 내 빌딩마다 거의 분양과 임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중앙포토]

 

울산 주민들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약속 이행이다. 시세보다 저렴하게 땅을 매입하면서 백화점을 짓겠다고 한 지 벌써 8년이다. 이 과정에서 신세계는 각종 이득도 챙겼다. 백화점이 아니라면 상황에 맞춰 적절한 형태의 상업시설을 조속히 지어달라는 게 주민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신세계가 착공을 미루면서 정신적‧재산적 피해를 보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신세계 백화점 입점 소식을 듣고 이곳에 이사 온 주민들과 인근에 점포를 연 자영업자들이 대표적이다. 당시 신세계는 울산혁신도시 계획 단계부터 대형 마트 등과 같은 주민편의시설을 조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공터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주변 상가가 입점하거나 공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신세계백화점이 한 것은 ‘사업 검토’뿐이다.  
 
울산 중구청 역시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신세계가 표류하면서 하루가 멀다하고 관련 주민의 민원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별다른 대책은 없다. 이번 역시 오피스텔을 기반으로한 복합상업시설 계획 발표에 대해 중구청장은 “주민 합의 없는 개발에 투쟁을 불사하겠다”면서 “오는 9월 30일까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입장을 밝혀달라”는 독촉만 반복할 뿐이다.  
 
신세계그룹의 경영이념은 ‘고객, 불만, 기회’다. 고객의 불만을 인지하고 대응하며 변화와 성장의 기회를 찾겠다는 것. 그런데 울산에서 벌이는 행태는 이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자신들의 미래 고객이 될 울산 중구 주민들의 목소리(시민 편익)는 듣지 않고 오로지 사업성(수익)을 이유로 8년째 착공을 미루고만 있다. 이게 과연 신세계의 경영이념에 맞는 지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울산 내부에선 말 바꾸기만 하는 신세계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외부 일각에선 백화점 입점으로 ‘집값’, ‘땅값’ 상승을 노리려는 이해집단과 장사꾼 근성의 기업이라는 프레임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기도 한다. 정답이 무엇이든 신세계는 이제 약속을 지켜야 할 때다. 더 이상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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