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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강조해도 모자란 ‘외환보유액의 중요성’ [조원경의 알고 싶은 것들의 결말㉝]

국방비처럼 모자랄 경우 그보다 훨씬 큰 비용 지불하게 될 수도

 
 
9월 1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2.3원 내린 달러당 1157.2원에 마감하며 나흘 연속 하락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연합뉴스]
 
크든 작든 장사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부도의 공포’일 것이다. 애플은 웬만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훨씬 넘는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고인이 된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가 겪은 트라우마 때문이다. 파산 직전에 내몰렸던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현금을 조달해 위기를 모면했다.  
  
아련한 기억이지만, 한때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고작 몇 백억 달러에 불과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39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국가부도 위기였다. 이후 고통스러운 IMF 구제금융을 받고 위기를 극복한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위기는 또 한 번 찾아왔다. 2008년 당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2600억 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이 2000억 달러 선까지 급속히 줄자 시장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시장 불안은 미국과 통화스왑 체결 소식에야 비로소 진정됐다. 두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외환보유액이 우리 경제의 생명줄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국가 경제에 있어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처럼 무역의존도가 높고, 금융시장이 개방된 나라는 더욱 그렇다. 외환보유액은 ‘외화 비상금’이다. 믿을만한 자산이 있는 사람에게 선뜻 돈을 빌려주듯이, 국제금융시장의 외국인 투자자들도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나라에 우선 자금을 투자한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나라는 환투기나 급격한 자금유출 위험이 줄어들고 자연히 위기발생 가능성이 낮아진다. 반대로 외환보유액이 부족하면 작은 충격에도 시장이 흔들리고 위기가 쉽게 전염된다. S&P, 무디스 등 신용평가사들이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외환보유액을 꼼꼼히 살피는 것도 이 때문이다.  
 
9월 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8월말 외환보유액’을 보면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전월말 대비 52억5000만 달러 증가한 4639억3000만 달러를 나타냈다. 역대 최대 규모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Special Drawing Rights) 일반배분으로 외환보유액이 증가했으며, 미 국채 등 외화자산을 굴려서 얻은 운용수익도 늘었다. 특별인출권은 국제통화기금 가맹국이 국제 수지 악화 때 담보 없이 필요한 만큼의 외화를 인출할 수 있는 권리 또는 통화이다. IMF는 미국 워싱턴 D.C 현지시간으로 8월 23일 약 6500억 달러 규모의 특별인출권(SDR) 일반배분을 실시했다. 우리나라는 1.80% 정도인 82억SDR(116억9000만 달러)을 배분받아, 외환보유액이 증가했다.  
 
IMF의 이번 특별인출권 배분은 역사상 5번째 이뤄진 것이다. 과거 두 차례 석유 파동과 글로벌 금융위기 등 세계 경제가 어려울 때 배분을 시행했다. IMF 이사회 및 190개 전체 회원국은 투표를 통해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글로벌 유동성 지원을 위한 특별인출권 배분을 확정했다. IMF는 선진국이 보유한 특별인출권을 활용한 취약 국가 지원을 논의 중이며, 추후 이사회와 세계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구체화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도 IMF 등과 협의를 통해 저소득국 지원에 동참할 방침이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 규모를 계산하기 위해 매달 말일 유로화·파운드화·엔화 등 다른 외화 자산을 미 달러화로 환산한다. 외환보유액은 국채, 정부기관채, 회사채, 자산유동화증권 등을 포함한 유가증권, 예치금,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우리나라가 IMF 회원국으로서 낸 출자금 중 되찾을 수 있는 금액인 IMF포지션, 금 등으로 이루어진다.  
 

외환보유액 증가와 서학개미의 역할

 
2021년 7월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순위는 세계 8위를 기록했다. 국가별 순위는 1위 중국(3조2359억 달러), 2위 일본(1조3865억 달러), 3위 스위스(1조862억 달러), 4위 인도(6201억 달러), 5위 러시아(6010억 달러), 6위 대만(5431억 달러), 7위 홍콩(4948억 달러)의 순이다. 8위 우리나라(4587억 달러),  9위 사우디아라비아(4414억 달러), 10위 싱가포르(4077억 달러)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증가는 수출호조에 따라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흑자가 누적된 영향에 기인한 바 크다. 세밀하게 내역을 따져 보자. 2020년 일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1600억 달러(약 180조원)의 경상수지 흑자를 거뒀다. 이 가운데 물건을 사고팔아서 번 상품수지(무역수지) 흑자는 300억 달러에 불과했다. 무려 2000억 달러의 흑자가 소득수지에서 나왔다. 나라 밖에서 벌어들인 이자와 배당이 대부분이다. 과거 수출로 번 외화로 주식·채권 등 해외 자산을 잔뜩 사둔 덕분이다. 왕년의 ‘수출 강국’에서 ‘투자 강국’으로 변모한 일본의 오늘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올 1분기 소득수지 흑자가 상품수지 흑자의 30%에 육박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같은 물건을 다른 나라와 사고팔아 100원을 남길 때 해외에서 이자·배당 등으로도 30원 정도를 번다는 얘기다. 소득수지가 흑자로 돌아선 지는 불과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중에는 ‘서학개미’를 중심으로 한 해외 주식 투자 붐으로 배당소득이 늘어난 영향이 컸다.
 
원래 본원소득수지에는 이자·배당뿐 아니라 외국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인건비도 포함된다. 1분기 인건비 수지는 1억1000만 달러 적자였다. 우리나라 근로자가 해외에서 번 돈보다 외국인 근로자가 우리나라에서 번 돈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선 달랐다. 이자·배당 등 투자소득수지 흑자가 58억6000만 달러에 달했다. 같은 기간 상품수지 흑자가 196억3000만 달러였는데, 그 30%에 해당하는 규모다. 5월의 본원소득수지는 배당소득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 5억5000만 달러 수준에 불과했지만, 올해에는 54억9000만 달러를 기록하면서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가장 큰 폭의 오름세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해외투자법인들이 국내 본사로 1회성 거액의 배당금을 송금한 데 따른 것이다. 무엇보다도 외환보유액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자는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을 문제로 거론한다. 외환보유액은 그 특성상 유동성이 높고 금리가 낮은 안전자산에 투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은 국방비와도 같아서 자칫 모자랄 경우 그보다 훨씬 큰 비용을 지불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환율의 결정요인은?

환율(exchange rate)이란 외국 통화 한 단위를 받기 위해 자국 통화를 몇 단위 지불해야 하는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자국 통화와 외국 통화간의 교환비율을 의미하며 두 나라 통화의 상대적 가치를 말한다. 환율은 외환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각국의 물가수준, 생산성 등 경제여건의 변화는 장기적으로 통화의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원론적으로는 환율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나 경상수지 흑자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맞다.
 
그러나 실제 환율의 향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둘을 든다면, 우선 미 달러 가치의 향방과 미국 신용가산 금리(안전자산선호 심리)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 대외 건전성이 우수한 국가이나 미국 신용가산금리가 상승하는 등 미국 기업의 부도 위험이 고조될 때에는 원화가 환율 상승 압력을 받는 위험자산으로 분류된다. 안전자산으로서 달러의 매력은 미국 실질 금리가 좌우하며, 이는 기준 금리 인상 기대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 실질 금리는 장단기 금리차가 축소되는 등 경기 둔화 징후가 나타날 때에는, 후행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보다 한국의 금리가 낮았던 2005~2006년에 달러‧원 환율이 하락한 것을 보면 변동환율제하에서 어느 정도의 대내외 금리차가 환율의 방향을 결정하는 절대적 요소는 아니나, 상당 수준의 금리차는 자금 이탈 가능성도 결정한다고 볼 수 있겠다. 2006년을 제외하고 외국인의 주식 순매수는 환율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즉 환율 하락(원화절상)과 외국인 주식 순매수 간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외국인은 한국 기업의 실적 개선에 순매수를 하고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의 실적 개선에 가장 큰 변수는 수출인 것으로 분석된다.  
 

향후 환율의 변수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11일(현지시간) CBS방송 시사프로그램 '60분'과 인터뷰하고 있다. [CBS 캡처]
 
원·달러 환율은 미 연준이 조기 금리인상을 시사한 6월 중순부터 점진적으로 상승했다. 7월에 들어서는 코로나19 재확산 공포가 확산되면서 1150원을 넘어섰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예정보다 1년 앞당긴 2023년에 두 차례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달러화 강세를 부채질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발(發) 코로나 재확산으로 투자자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높아지면서 달러화가 추가 강세를 보였다. 미국의 조기 테이퍼링 가능성, 밝지 않은 반도체 전망, 세계 하위권인 우리나라의 코로나 백신 접종률은 외국인 이탈을 가속화시키는 3대 악재로 꼽혔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와 반도체 업황에 대한 우려로 외국인들이주식을 순매도했고 경기 개선이 정점을 찍었다는 피크아웃 논란도 원화가치 하락에 영향을 줬다.  
 
이런 흐름은 연준이 지난달 27~28일(현지시각) 개최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테이퍼링 일정을 구체화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한풀 꺾였다. FOMC를 둘러싼 시장 불안감이 해소되고 미국 2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기대에 못 미친 결과 등에 힘입어 투자자의 위험자산 회피심리가 완화되면서 달러화가 강세 기조가 누그러졌고,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도 하락 압력을 받으면서 다시 1140원대로 떨어졌다.  
 
외국인들은 주식을 파는 것과는 반대로 한국 채권은 사들이고 있다.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채권 중 약 67%가 해외 중앙은행과 국부펀드 자금이다. 이들은 중장기 투자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한국 채권을 팔고 떠날 가능성은 낮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잭슨홀 연설 이후 위험선호 심리가 재개됐고 달러‧원 환율이 하락한 데다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TSMC의 가격 인상 소식과 8월 D램 고정가격 수준 유지 등이 투자심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됐다. 어느 한 방향성 재료가 노출되기까지 환율은 레인지 안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외환의 수급이 중요해진 타이밍이다. 수출업체 이월 네고 물량, 유럽중앙은행(ECB)의 매파적인 스탠스, 미국 고용지표 등이 수급을 좌우할 것 같다.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울산 경제부시장이다. 대한민국 OECD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국제금융심의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필드 메뉴얼] [한 권으로 읽는 디지털 혁명 4.0]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나를 사랑하는 시간들] 등이 있다.  

조원경 울산 경제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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