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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갤러리] 무한 반복의 붓질로 찾아낸 숭고함

'염력'·'라이프' 시리즈 및 설치 작품 '라이프' 시리즈 전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전시장 곳곳에 배어 있어

 
 
백미옥의 ‘염력(Psychokinesis) II’, acrylic on canvas, 306 x 155cm [사진 키미아트]
한참 전 런던 출장길에 잠시 짬을 내 들린 미술관에서 마크 로스코(Mark Rothko·1903~1970)의 작품을 여럿 본 적이 있다. 미술관 내부를 순식간에 교회나 성당처럼 변신시킨 아우라의 육중함에 놀랐다. 그림 한 점이 사람의 마음을 이다지도 흔들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처음 얻었던 자리로 기억한다. 색을 대하는 작가의 진중함이 주는 신뢰, 작가의 무한 반복 붓질에 경외감과 영성(靈性)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화가 백미옥의 그림이 주는 느낌도 이 같은 맥락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쉬지 않고 탐색해온 작가는 캔버스에 여러 겹의 색칠로 바탕을 꾸미고, 세필로 점을 찍어 모든 화면을 덮는다. 그만큼 그의 화면은 치밀하고, 집요하다. 우리의 운명이 그런 것처럼.
 
풍광 좋은 서울 평창동 언덕배기에 위치한 갤러리 키미아트에서 내년 1월 22일까지 '백미옥의 Life Ⅲ : Eternal Love' 전시회가 열린다. 작가의 족적을 지금 한눈에 느껴볼 수 있는 자리다. 회화 작품인 ‘염력’ 시리즈와 ‘라이프’ 시리즈, 그리고 설치 작품인 ‘라이프’ 시리즈까지 고루 볼 수 있다. 특히 지난 5월 어머니를 여의고 깨달은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그리고 상실과 애도의 표현이 전시장 곳곳에 배어있다. 평론가 로버트 모건이 “외부의 침입으로 혼돈에 빠진 몸과 정신이 잠시 쉬어가는 일종의 시각적 휴식”이라고 평한 바로 그 작품들이다.
 
큐레이터 수전 솔린스는 전시 서문을 통해 “어머니의 영면을 겪으며 작가는 시간적 영원성(eternity)과 공간의 무한함(infinity)을 통해 예술이 가진 역할에 대해 자기 성찰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대답은 “삶과 죽음이 양분된 것이 아니며 이미 자신 안에 공존해 있음을 직관적으로 깨닫고, ‘지금’을 온전히 바라보며 인생의 고단함 속에서 환희의 기다림을 소명하는 일”일 터다.
 
특히 그의 ‘염력’ 시리즈가 눈길을 끈다. 염력(念力)이란 생각의 힘만으로 사물을 움직이거나 변형시키거나 그 성분을 변질시키는 일종의 주술행위를 말한다. 그는 무엇을 움직이고 싶었을까. 당연하게도 그것은 보는 이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작품으로 서로 소통하는 ‘공감’이고, 마음을 울컥하게 해주는 ‘감동’이었을 것이다. 미술평론가 고충환의 말을 빌리자면, “작가의 그림에 적용된 염력이란 일종의 자기 내면의 무의식의 지층을, 무의식적으로 구축된 감수성을 끄집어내는 행위의 한 형태”다.
 
1층 전시장 한 켠에 적힌 몇 마디 문장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미 넘어선 작가의 아포리즘(aphorism)이다. “그대 영혼의 아궁이에 촛불을 당겨라/ 시간이 영원 속으로 녹아드는 삶의 융융한 희열을 맛볼 수 있으리니/ 슬픈 미학의 아우라지 되어 과거를 회귀하며 힘들어하는 숨가쁨,/ 켜켜이 쌓아진 오늘과 내일의 초점 위에 방황하며 슬퍼하는 심상의 시간들…/ 오늘도 시작되는 내 긴 여정의 삶은 어디까지일까.”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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