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정리됐는데"…KCGI·반도건설과 협력한 산업은행 속내는?
‘경영권 변동’ 명시에 한진그룹 긴장감 고조
“분쟁 재점화 가능성 희박”…일부선 “KCGI, 승복 선언”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산은)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성공적 통합을 위해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KCGI·반도건설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산은과 KCGI 측의 협력에도 한진칼 주가가 잠잠한 만큼, 시장에선 이 협력이 경영권 분쟁의 재점화 불씨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해석이 많다.
전문가들도 “산은이 양대 항공사 통합 완수를 위해 주요 주주인 KCGI 측이 유발할 수 있는 여러 위험 요인을 차단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산은이 MOU에 ‘경영권 변동 시’ 등 다소 수위 있는 표현을 포함시키면서까지 한진그룹 측과 거리를 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요한 한진칼 주가…“경영권 분쟁 재점화 가능성 희박”
산은 측은 “양대 항공사 통합 추진이 항공 운송 산업 발전을 위한 방안임에 공감하고, 통합 추진의 진행 경과 공유 및 건설적인 의견 개진 등을 통해 주주 간 상호 이해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동 방안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KCGI가 일으킨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을 거둬내고 한진칼 주요 주주라는 점에 집중하면, 산은과 KCGI 측이 양대 항공사 통합을 위해 협력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진그룹 경영권 관련 대목이다. 산은은 KCGI 측과 이번 MOU를 통해 한진칼의 경영 관련 중대한 변동사항 발생할 경우 불필요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등 경영 안정을 위해 적극 협조한다고 밝혔다.
특히 양대 항공사 통합을 위해 현재 계열주(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에 부과된 책임과 의무가 향후 경영권 변동 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도록 한다는 데에 뜻을 같이했다고 언급했다.
산은이 ‘경영권 변동’까지 언급하면서 KCGI 측과 협력한다고 밝혔지만, 현재로선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 재점화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는 “국책은행인 산은이 사모펀드(KCGI)와 협력해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경영학)는 “산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을 완료하는 것”이라며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KCGI 측이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일종의 달래기용 협력이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시장에서도 산은과 KCGI의 협력이 경영권 분쟁 재점화로 번질 가능성은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일단 한진칼 주가가 잠잠하다. 산은은 9일 장 마감 이후 KCGI 측과의 협력을 알렸는데, 10일과 11일 한진칼 주가는 소폭 하락했다.
종가 기준으로 10일 한진칼 주가는 전일보다 0.68% 떨어졌으며, 11일에도 전일보다 1.88% 하락했다. 이후 주가가 1% 내외로 상승하긴 했으나, 눈에 띄는 주가 흐름은 없었다. 경영권 분쟁 때 한진칼 주가가 급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장은 산은과 KCGI 측의 협력을 경영권 분쟁 재점화 불씨로 해석하지 않은 셈이다. 이번 협력을 사실상 KCGI의 승복 선언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대선 앞두고 조원태에 경고성 메시지 보낸 산은, 왜?
산은은 한진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참여로 지분 10.5%(8월 9일 기준)를 확보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산은이 조원태 회장 측과 KCG 측 중에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경영권도 움직이는 구조다.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한진그룹에 직간접적인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산은과 한진칼이 양대 항공사 통합을 위해 체결한 8000억원 규모의 투자계약에 포함된 7개 의무 조항도 있다. 이 조항은 산은 지명 사외이사 3인 및 감사위원회 위원 등의 선임을 포함해 주요 경영 사항에 대한 사전협의권 및 동의권 등 한진그룹을 관리·감독하는 수단이다. 투자합의서 중요 조항 위반 시 5000억원의 위약벌과 손해배상 책임도 부담해야 한다. “산은이 한진그룹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수단은 충분히 많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KCGI 측이 양대 항공사 통합에 대한 위험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2월 KCGI 측이 한진칼을 상대로 제기한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이 양대 항공사 통합을 위한 한진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추진과 신주 발행이 부당하지 않다고 판단하면서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도 진화됐다. 이후 지난 4월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3자 연합(KCGI·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해체되면서, 사실상 경영권 분쟁은 종료됐다.
충분한 관리·감독 수단, 경영권 분쟁 종료 등을 감안하면, 산은이 이 시점에 KCGI와 협력하는 이유가 불명확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일부선 “특혜 시비 차단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캐스팅보트를 쥔 산은이 관리·감독 등을 이유로 KCGI와 손잡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무리가 있어 보인다”며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양대 항공사 통합 과정에서 불거진 재벌 특혜 시비를 다시 한 번 차단하기 위함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산은은 지난해 11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을 발표하면서, 한진칼 지분 10% 이상을 확보하는 방안을 밝혔다. 이를 두고 조원태 회장 경영권 방어라는 비판이 많았다. 조원태 회장 측과 KCGI 측의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한진칼 지분을 확보하면서, 조 회장 측 경영권을 방어하는 조건으로 한진그룹에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경제개혁연대 측은 논평을 내고 “이번 인수합병이 한진 총수일가의 그룹 지배권을 안정시키고 향후 항공 산업 재편으로 인한 독점적 지위까지 추가적으로 보장해주는 ‘재벌 특혜’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산은이 KCGI 측과 협력해 한진그룹과 거리를 둔 것을 두고 “재벌 특혜 시비를 모면하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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