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론’ 불 지핀 이재용, 내부 쇄신 후 '의미 있는 M&A' 나서나
연공서열 타파하는 인사제도 개편안…40대 CEO 발탁 가능성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 새 조직 신설 여부에 신중론도 제기
“3년 내 의미 있는 M&A” 반도체 아닌 바이오·AI로 선회?
‘뉴 삼성’의 기치를 내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0박11일 동안의 미국 출장에서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위기론’을 언급한 터라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장 가시적인 변화는 내달 초로 예상되는 임원 인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에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29일, 연공서열을 타파하는 인사제도 혁신안을 발표했다. 파격 승진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내부 쇄신 이후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의 수감 이후 사실상 M&A를 중단한 상태였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지난 2분기에 "3년 안에 유의미한 M&A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나이 상관없이 인재 과감히 중용” 40대 CEO 나오나
삼성전자는 지난 29일 임원 인사에 앞서 인사제도 혁신안을 발표했다. 혁신안에는 부사장과 전무 등 임원 직급을 통합하고 직급별 체류 기간을 없애는 내용이 담겼다. 사내 ‘존댓말 사용’ 원칙도 발표했다.
사실상 업무 역량과 능력에 따라 직급을 뛰어넘는 조기 승진이 가능한 토대가 만들어진 셈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연공서열을 타파하고 나이와 상관없이 인재를 과감히 중용해 젊은 경영진을 조기에 육성할 수 있는 삼성형패스스트랙(Fast-Track)을 구현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내년부터 새 제도에 따른 평가를 거쳐 인사 고과가 매겨지는 평직원과 달리, 임원급은 새 제도가 이번 정기 임원인사부터 곧바로 적용된다. 이에 40대 CEO는 물론 30대 임원과 같은 파격 승진 인사가 발표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삼성그룹 안팎에 흘러나오고 있다. 아울러 임원 인사를 앞두고 발표한 인사제도 개편안인 만큼, 이번 정기 인사에서 적지 않은 폭의 쇄신이 이뤄질 것이라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인사 이후 이어질 조직개편에도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된다. 앞서 삼성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지속가능경영 체제를 위한 컨설팅을 의뢰했는데 최근 컨설팅 결과가 이재용 부회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초미의 관심사는 그룹 전반의 업무를 조율하는 컨트롤타워 조직 신설 여부다. 삼성은 2017년 국정농단 사태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해체했다. 이후 삼성전자(사업지원TF)·삼성생명(금융경쟁력제고TF)·삼성물산(EPC, 설계·조달·시공 경쟁력강화TF)에서 각각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왔으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컨트롤타워 신설이 자칫 미전실의 부활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내부적으로 신중론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9조 하만 인수 이후 5년 만에 대형 M&A 초읽기?
지난 7월 한진만 삼성전자 부사장은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지난 1월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3년 이내에 의미 있는 규모의 M&A 실현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오늘날과 같이 급격하게 사업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는 미래 성장을 위한 돌파구를 찾기 위해 핵심역량을 보유한 기업에 대한 전략적 M&A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부사장은 이 자리에서 M&A의 사업영역과 규모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고도 말했다. 인공지능(AI)·5세대이동통신(5G)·전장 등 새로운 성장동력이라고 판단된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삼성은 지난 8월 ‘코로나19 이후 미래 준비 계획’을 발표하면서 향후 3년간 24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법무부의 가석방으로 풀려난 지 11일 만이었다. 공교롭게도 ‘3년’이라는 시기가 겹친다. 삼성 내부에서 향후 3년을 그룹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시기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2016년 9월 삼성전자의 대표적 빅딜로 꼽히는 미국의 전장·음향기기 전문기업 하만 인수는 이 부회장의 작품으로 꼽힌다. 인수 금액만 약 9조4000억원으로 삼성은 물론 국내 기업 M&A 중에서도 역대 최대 규모다. 하지만 이후 조 단위 규모의 대형 M&A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듬해 2월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전략적 M&A를 위한 의사결정이 중단된 영향이 컸다.
‘실탄’은 충분하다. 삼성전자의 3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한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은 117조7524억원에 달한다. 최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로 확정한 파운드리 공장 건설에 필요한 20조원을 제하더라도 100조원 가까운 풍부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다.
관심사는 어떤 영역, 어떤 회사를 M&A하느냐다. 앞서 삼성은 3년간 240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바이오 ▶차세대 통신 ▶AI·로봇 등 미래 신기술 4개 분야에 투자 영역을 한정했다.
반도체 인수 협상 성공해도 반독점 심사 남아…바이오로 선회하나
협상은 올해에도 진행됐지만, NXP가 인수금액으로 680억 달러(약 80조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몸값이 치솟으면서 인수금액을 올린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가 NXP 인수 계획을 사실상 철회했다고 전해졌다. 이외에도 업계에서는 거론되는 차량용 반도체 M&A 대상 기업은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일본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독일 인피니온테크놀로지스 등이다.
인수 협상에 성공한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최근 반도체 업계의 반도체 업계의 대규모 인수합병(M&A)에 각국 정부의 반독점심사 기구들이 결합 승인을 미루거나 심층 조사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시장 지배력이 한 국가에 쏠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탓이다. 실제로 2018년 NPX를 인수하려고 했던 퀄컴은 중국 반독점심사 기구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이 결합승인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으로 M&A 후보군의 몸값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반도체가 아닌 바이오, AI 등 다른 영역의 M&A를 먼저 시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이번 북미 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 버라이즌, 아마존, 모더나 등 미국 주요 IT·바이오 기업 경영진과 연쇄 회동한 것도 M&A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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