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제빵왕과 대통령, 그리고 혁신 [EDITOR’S LETTER]

[이코노미스트 권오용 기자] SPC그룹은 국내 최고이자 최대 제빵 전문기업입니다. 1945년 창업자 故 허창성 명예회장이 황해도 웅진에 문을 연 ‘상미당’(賞美堂)이라는 작은 빵집에서 시작해 1959년 서울 용산에 ‘삼립제과공사’를 설립하면서 기업 형태를 갖췄습니다.
지금은 ▲삼립식품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등 다수의 브랜드를 갖추고 전국 6500여개 매장에서 하루 770만여개의 빵을 생산하고 있는데요, 이 정도 규모의 제빵 회사는 국내에서 SPC그룹이 유일합니다. SPC그룹은 지난 2004년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현재 11개국에서 65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기도 한데요, K-베이커리 인기를 타고 글로벌 영토를 꾸준히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SPC그룹이 국내를 넘어 글로벌 ‘제빵왕’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만, 내부에서는 노동자의 산재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K-제빵왕’의 자부심을 무색하게 합니다. 실제로 2022~2025년 사이 SPC 계열 공장에서의 산재 사망자는 기계 끼임 등의 사고사 3명, 과로로 인한 질병 사망자 3명 등 총 6명이나 됩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산재 사고가 있었는데요, 최근 5년간 발생한 산재 신청 건수가 약 1000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SPC그룹은 대형 산재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소비자들의 공분을 샀고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조사 및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고 방지 대책도 내놓았지만 산재 사고가 사라지지 않고 관행적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생산 현장의 구조적 위험성 ▲장시간 노동 ▲안전관리 미흡 ▲야근 및 교대근무 환경 등 빵 생산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내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한 관계자는 “빵 생산 공정 전체가 자동화돼 있지 않아 중간중간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일도 있는데, 여기서 사고가 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문제점과 해법은 다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이뤄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SPC그룹이 생산직 야근을 8시간 이내로 제한하기로 전격 결정하고 오는 10월 1일부터 전면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회사 측은 “8시간 초과 야근 폐지를 위해 인력 확충, 생산 품목과 생산량 조정, 라인 재편 등 전반적인 생산 구조를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반가운 소식인 것은 분명합니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 공장을 방문해 가혹한 업무환경 문제를 질타하자마자 이 같은 결정을 했다는 것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서나 볼뻔한 모습이 연출된 것인데요, SPC그룹이 산재 사고를 꼭 해결하겠다고 생각했다면 대통령이 얘기하기 전에 얼마든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착한 제빵왕’으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을 겁니다.
지금처럼 국내외가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을 때 기업이 생존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고들 합니다. 그 혁신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내부에 직면한 문제를 구성원과 함께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해결한다면 그것이 바로 혁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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