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대家 오너의 엇갈린 희비…車웃고·建울고·船침묵
연초 범현대가 오너들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호실적에 미소 지었고,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잇따라 발생한 건설 현장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17일 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대표는 자율운항과 친환경 에너지·선박 사업을 앞세운 청사진을 그렸지만, 수년간 공들여왔던 현대중공업(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합병 무산의 쓴잔을 들었다.
현대차그룹, HDC그룹, 현대중공업그룹은 통상 '범현대'그룹의 일부로 해석된다. ‘현대’ 창업자인 故 정주영 명예회장 손자와 조카(2·3세대)들이 그룹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구 명예회장을 거쳐 정의선 회장이 물려받았다. 정기선 대표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맏아들이다. 정몽준 이사장은 현대중공업지주의 최대 주주면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여섯째 아들이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故 정세영 HDC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정몽규 회장은 1986년부터 1998년까지 현대자동차 회장을 지낸 바 있다. 그러나 현대차의 경영권이 정몽구 회장에게 넘어가면서 부친인 고 정세영 명예회장과 함께 1999년 3월 HDC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실적 호조, 미래차·로봇 사업 확장…정의선의 현대차그룹 ‘맑음’
신윤철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제네시스 라인업 판매 확대를 중심으로 제품군 다양화 추세가 이어지며 자동차 부문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소폭 개선되는 흐름을 보일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역대 최대 판매 기록을 세웠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는 미국 시장에 148만9118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이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6년(141만5655대) 판매량을 뛰어넘는 수치다. 현대차는 전년 대비 19% 증가한 73만8081대를,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는 203% 증가한 4만9621대를 판매했다. 기아 역시 19.7% 늘어난 70만1416대를 판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의선 회장과 현대차그룹은 미래 산업에도 집중 투자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2’의 개막 하루 전인 4일(현지 시간) 현대차 언론 설명회에서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봇 ‘스폿’과 함께 등장해 로봇 사업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자동차를 넘어 로봇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가겠다는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 밖에 전기차를 비롯해 도심항공모빌리티(UAM)를 강조하며 이동 경험의 영역 확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로보틱스 사업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언제 기술이 구현될지 당장은 알 수 없다”면서도 “도전에는 한계가 없고, 우리는 우리의 한계에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부실 사고·신뢰도 추락, 정몽규 회장 사퇴…HDC그룹 ‘암흑’
정몽규 회장의 사퇴는 지난 11일 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던 광주 서구 화정동 화정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 붕괴 사고가 트리거로 작용했다. 현대산업개발이 짓던 아파트의 23∼38층 외벽 등이 무너진 사고로 1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됐다. 부실 공사로 벌어진 사고라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회사와 정몽규 회장에게 비판이 집중됐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6월에도 광주 학동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를 동반한 안전사고를 일으켰다.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이 일로 정몽규 회장은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7개월 만에 사고가 재발한 것이다.
‘부실(공사)기업’이라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현대산업개발이 담당하는 아파트 수주 사업장에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조합원들이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신뢰를 거두면서 계약 파기 요구가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아파트 건설‧재개발 수주 입찰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과 함께 최악의 경우 건설 시장 퇴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정몽규 회장은 17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 사고 피해자 가족과 국민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또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도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는 “현대산업개발은 1976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건설로 시작해 아이파크 브랜드를 통해 국민 신뢰로 성장했으나 최근 광주에서 2건의 사고로 너무나 큰 실망을 드렸다”며 “안전은 물론 회사의 신뢰가 땅에 떨어져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산업개발의 건설 사업은 지속하겠다는 방침이다. 정 회장은 “안전점검에 문제가 있다고 나오면 계약 해지는 물론 완전 철거와 재시공까지 고려하겠다”면서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좋은 아파트를 만들겠다”고 전했다. 또 안전 문제를 우려하는 국민을 의식해 “안전품질보증을 대폭 강화하고 현대산업개발의 모든 골조 등 구조안전보증 기간을 10년에서 30년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경영권 역시 완전히 손에서 놓지는 않을 것이란 해석이다. 정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아니다”라며 “대주주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기술력 최고, 현대重-대우조선 합병 무산 타격…정기선號 과제
지난해 현대중공업지주 대표로 취임한 정기선 사장은 ‘CES 2022’를 통해 글로벌 무대에 데뷔하며 ‘선박 자율운항’을 통한 기술개발‧혁신을 강조하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조선업계 최초로 CES에 참가한 정 대표는 “우리가 갈고 닦은 기술과 미래 비전을 보여주고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력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세계 최고의 조선사로서 자율운항은 우리가 이끌어나가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며 “우리는 작은 선박에도 (자율운항 기술)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조선·해양과 에너지, 기계 등 그룹의 3대 핵심사업을 이끌어나갈 혁신기술로 ▶자율운항 기술 ▶액화수소 운반 및 추진시스템 기술 ▶지능형 로보틱스 및 솔루션 기술 등을 꼽았다.
하지만 3년간 끌어오던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이 무산되면서 현대중공업(한국조선해양)을 세계 최대 ‘메가 조선사’로 만들려는 계획에는 실패했다. 지난 13일 유럽연합(EU)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합병(M&A)에 반대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을 문제로 삼았다.
지난해 두 조선사의 LNG 운반선 시장 수주 점유율은 약 60%에 달한다. EU는 합병한 회사가 LNG 선박 가격을 인상할 경우 유럽 선사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어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해 국가별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을 살펴 보면 한국은 48만CGT(7척, 31%)로 중국 80만CGT(32척, 52%)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LNG운반선 시장 점유율만으로 독점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문제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런 결정이 비합리적이라며 대응해나갈 의지를 밝혔다. 현대중공업그룹은 14일 “EU 공정위원회 결정은 비합리적이고 유감스럽다”며 “향후 최종 결정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EU 법원을 통한 시정요구 등 가능한 대응 방안을 종합적으로 마련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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