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주도에 꽂힌 尹, 과학기술계는 “대통령수석 사수”
과학기술수석 빠진 직제안에 업계 잇단 반발
“민관합동 기조는 공감, 위원회는 권한 없어”
새 정부 과학기술 리더십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각 부처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할만한 자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 숙원이었던 부총리직도, 수석비서관직도 현재로선 도입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두 직책은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후보 시절 약속한 내용이다. 부총리는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부처별 예산·정책을 조율하고, 수석비서관은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정책을 기획한다. 안 위원장이 당선인과 공동정부를 꾸리기로 하면서 새 직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과학기술부총리는 당장 실현되기 어려웠다. 직책을 새로 만들려면 정부조직법을 바꿔야 하는데, 인수위가 법 개정을 정부 출범 이후로 미뤘기 때문이다. 새 정부 출범 한 달 뒤에 치러지는 6·1 지방선거가 부담이었다. 정부조직 개편안을 내도 여소야대 국회에서 당장 통과시키기엔 어렵다. 당선인은 지난 10일 정부조직 개편을 언급하지 않고 장관 후보자만 발표했다.
그런데 최근엔 과학기술수석비서관도 실현이 어려워 보인다. 인수위는 당초 지난 24일 대통령실 조직 체계 개편을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미리 알려진 개편안엔 이 분과 수석비서관직이 없었다. 정책실을 없애고 2실(비서·안보),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대통령실 규모를 줄인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수석비서관 급 돼야 컨트롤타워로 기능”
25일엔 정보·방송·통신(ICT) 산업계에서 같은 입장을 냈다. 한국소프트웨어(SW)산업협회 등 17개 단체는 이날 “당선인의 국정 비전인 ‘디지털 패권 국가’를 이루자면 종합적인 전략을 수립·실행할 수 있는 정부조직과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과학기술수석비서관 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당선인은 대통령 직속으로 꾸릴 민관합동위원회에서 과학기술·교육 같은 주요 정책 의제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차관급 인사가 정책 의제별 위원회를 이끌도록 하겠단 방안이 나온다. 또 위원의 절반을 민간 전문가로 채우고, 이들에게 의사결정권도 부여하게 된다. 당선인이 후보 시절 공약한 민관과학기술위원회도 의제별 위원회의 하나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인수위 관계자는 “민관합동위의 권한과 인선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과학기술위의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이 민간 참여 확대에 방점을 찍는 덴 이유가 없지 않다. 당선인은 현 정부가 정치적 판단으로 무리하게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다고 본다. 실제 감사원은 정부에서 월성원전을 조기 폐쇄하기 위해 경제성 평가 과정에 부당하게 관여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이를 사례로 들며 “국정의 주요 의사결정에서 정치와 과학을 분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직속은 허울, 결정권은 각 부처에
대통령 관심이 줄자 각 부처 장관 발길도 뜸해졌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엔 기획재정부·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 장관이 정부위원으로 참여한다. 이우일 과총 회장은 “집권 초엔 장관이 직접 회의에 오다가 나중엔 차관, 마지막엔 실장을 보내더라”고 말했다.
부처 장관을 지휘하지 못하면 위원회는 아무런 힘이 없다. 현행법 체계상 예산을 요구·편성하고, 집행하는 권한은 부처에만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에서 관계부처 장관과 예산·정책을 조정할 수 있는 부총리나 수석보좌관을 건의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조영훈 한국SW산업협회 정책실장은 “부처를 컨트롤 못 하면 민간위원끼리 알아서 얘기하란 말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윤지웅 경희대 교수(정책학)는 “정부조직 개편 등 조치로 공공에 집중된 권한을 어떻게 민간과 나눌 건지를 먼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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