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기에 ‘비상 경영’…불안한 재계
[글로벌 경영 위기, 우리 기업 대응은①]
원자재 값 안정되자 고물가‧고금리‧고환율 3중고 ‘비명’
경기 침체, 투자 위축, 고용 감소 이어지는 악순환 우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 침체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해부터 폭등한 원자재 가격이 다소 안정되자마자,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중고를 맞닥뜨린 형국이다. 이에 고공 실적에도 비상 경영을 선포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 사이에선 사상 최대 실적에도 축포를 터뜨리지 못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경기 침체 우려가 기업의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고용 감소로 귀결되는 악순환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포스코, 최대 매출에 비상 경영…석유화학업계, 최대 실적 ‘함구’
공교롭게도 분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액을 공시한 이날,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그룹 내 사장단과 임원이 참석하는 ‘그룹 경영 회의’를 주재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 영향 본격화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사상 최대 매출액을 알린 날 비상 경영 체제를 선언한 것이다.
포스코그룹은 그룹 내 사장단과 전 임원이 참석하는 그룹 경영 회의를 매분기 개최하고 경영 실적과 전망, 위기 대응책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경영전략팀 중심의 ‘전사 통합 위기 대응팀’도 가동한다.
최정우 회장은 그룹 경영 회의에서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요 위축, 비용 상승, 공급망 위기 등 복합적인 경제 충격을 선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그룹 차원의 비상 경영에 돌입한다”며 “각 사별 주요 경영 요소들을 면밀히 체크하고, 특히 현금 중심 경영을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분기 말 기준 유동자산(1년 이내에 환금할 수 있는 자산)만 50조원을 넘는 포스코홀딩스의 수장이 재무 건전성을 강조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 상황이란 얘기다.
실제 포스코그룹은 당시 그룹 경영 회의에서 구매‧생산‧판매 등 각 부문의 구조 개선을 통한 원가 혁신을 비롯해 투자 계획 조정 등재무 건전성 확보에 전사적 역량을 결집하기로 했다. 또 안전‧환경 분야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절감하고, 금융 시장 불안 가능성에 대비한 안정적 시재 확보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한 투자 외에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비용 절감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석유화학업계에선 사상 최대 실적을 언급하지 않는 묘한 상황도 연출됐다.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등은 정유 사업 호황에 힘입어 올해 2분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사상 최대’라고 발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2분기 실적에 대해 ‘실적 개선’이란 표현을 썼다.
이에 대해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감행해야 하는 시점에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마저 겹치면서, 최대 실적을 마냥 즐길 상황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정유 호황의 부정적 여론을 감안해 최대 실적 언급을 피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경기 전망 어둡다”…‘투자 보릿고개’ 돌입하나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8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약 2년 만에 90선 아래로 추락했다. 전경련이 지난달 11~15일에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BSI를 조사한 결과, 8월 BSI 전망치가 86.9에 그친 것으로 집계된 것이다.
BSI는 기업이 인식하는 경기 전망에 관한 지수로, 기준점인 100 이하면 응답 기업 중에 경기가 부정적이라고 내다본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전경련에 따르면 BSI가 90 밑으로 하락한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0년 10월 이후 1년 10개월 만이다.
한국의 수출 성장마저 둔화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이 친환경 등 일부 사업을 제외한 다수 사업에 관한 투자 규모를 축소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7월 한국의 무역수지는 46억7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해, 지난 4월(25억1000만 달러 적자) 이후 4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의 누적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150억2500만 달러에 달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56년 이후 66년 만에 최대치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 가운데 하나인 중국과의 무역수지 역시 30년 만에 3개월 연속 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에선 “정부가 나서서 경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창훈 기자 hun8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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