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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핍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김광석 경제 읽어주는 남자]

고물가·저성장 부담 커져 난국 눈앞
유망기술 육성, 기술교류 활성 필요

 
 
비와 안개로 자욱한 도심 아파트 단지 전경. [연합뉴스]
맞는 옷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옷을 선택해야 한다. 고기를 양껏 2인분 먹고 싶지만, 1인분으로 만족해야 하는 상황에 비유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것을 ‘정하기’보다, 조건에 맞추어 ‘정해지는’ 모습이다.  
 
살기 좋은 집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정에 맞게 살집이 정해지는 처지다. 부모님께 풍성한 명절 선물을 드리고 싶지만, 여유가 없어 알뜰한 상품을 골라야만 하는 불효자의 마음이다. 아이에게 유기농 달걀로 요리해 주고 싶지만, 저렴한 물건을 골라야 하는 부모의 감정도 보여주는 듯하다.  
 
2023년은 ‘내핍’의 시대다. 내핍(austerity·耐乏)은 물자가 없는 것을 참고 견딤을 뜻한다. 궁핍(needy·窮乏)과도 유사한 표현이지만 다소 차이가 있다. 궁핍은 몹시 가난한 상황을 말하고, 내핍은 가난한 상황을 인내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2023년 경제가 녹록지 않을 것이고, 경제주체는 그 어려운 경제를 인내해야 한다.  
 
높은 물가에 허덕이는데, 소득은 넉넉지 않다. 가진 자산은 쪼그라들고,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켜져 간다. 소비심리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할 여력 자체가 없어진다. 가계만 힘든 것이 아니다. 소비가 위축되니 기업도 생산활동을 줄일 수밖에. 가뜩이나 원자재 가격이며 전기요금, 가스요금 모두 올랐는데, 매출은 그 자리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없다. 필자는 [그레이트 리세션 2022년 경제전망]을 통해 2023년 경제를 ‘내핍점(Point of Austerity)’이라고 규명했다.
 
인플레이션 쇼크는 2022년 고점을 찍고 내려오겠지만, 2023년에도 해소되지 않은 채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과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2023년까지 연장됨에 따라, 종전에 생각했던 수준보다 기준금리의 고점과 속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높아져 버린 시중금리는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가계의 소비심리를 얼어붙게 만든다. 고물가와 저성장의 부담을 안고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경제주체들은 매우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거품의 생성과 소멸을 읽어내야

한국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학술적으로는 4% 수준의 높은 물가상승률이 유지되고, 경제성장률은 전년동기대비 1%를 밑도는 상태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고물가와 저성장이라는 안 좋은 선택지만 받아든 상태를 뜻한다. 보통 고물가 시대에는 고성장이, 저성장 시대에는 저물가가 찾아오는데 말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 세계 그리고 한국경제가 어떤 국면에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경제 여건은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온다. 누구에게만 금리가 올라가고, 누구에게는 금리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시경제는 한 방향으로 찾아오지만, 방향을 모르는 사람에게만 위협이 찾아온다.  
 
코끼리 뒷다리에 매달려 있지 말라. 코끼리 발의 발톱만 바라보지 말라. 높은 곳에 올라가 수십 마리의 코끼리 떼가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지켜보라. 종목만을 지켜보면, 이 종목이 왜 오르고 또 왜 떨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높은 곳에 올라가 거대한 세상의 움직임이 내려다보이게 해야 한다.  
 
2023년 경제를 먼저 들여다보라.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텐가. 2020년 자산버블 시기를 놓치면서 당하고, 2021년 뒤늦게 내 집 마련하자마자 집값 내려가서 또 당하고, 2022년 주가 하락하는데 ‘쌀 때 담아야 한다’면서 추격 매수하며 또 당하지 않았는가? 경제를 모르면 당한다. 거품의 생성과 소멸을 읽어내야 한다. 돈의 이동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경제를 모르고 투자하는 것은, 눈을 감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 재테크는 소득의 일부를 자산과 바꾸는 행위다. 아무 자산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치상승이 기대되는 자산을 찾아 바꾸어야 한다. 종목에만 연연하지 말고, 주식, 부동산, 금, 채권 등과 같은 자산가치의 움직임을 관찰하라. 투자대상의 가치는 경제와 연결되어 움직이고, 어떤 자산에 투자할 것인지는 경제전망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눈을 감고 운전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금리 인상으로 가계 부담이 압박을 받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한 은행에 붙은 대출 광고. [연합뉴스]

신흥국 외환위기 고조에 대응해야

기업은 패러다임 변화를 직시해야 한다. 기업은 경제환경에 둘러싸여 있고, 그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므로 그 자리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 세계적으로 경기가 둔화하고, 통상환경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긴축전략(tightening strategy)이 필요하다.  
 
즉,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확장적인 사업전략을 취하기보다, 수익성이 높은 캐시 카우(cash cow)에 집중하는 방향이 적절할 수 있겠다. 해가 비추기 전까지 비가 오는 기간에는 준비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금리뿐만 아니라 원자재나 인건비도 높은 국면에서는 수축해 있다가, 경기 바닥을 통과하는 지점에 신사업 진출과 신제품 출시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
 
신흥국 외환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에, 그 위험이 전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흥국 위험이 주변 신흥국으로까지 전이될 수 있고, 부분적으로 한국 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채무불이행에 처하는 기업들로부터 대금 회수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취약 신흥국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잠재적 위험이 감지될 때 해당국 공급업자나 현지 법인 및 파트너사를 중심으로 위험을 관리함으로써 조기 대응에 나서야 한다.
 
정부의 대응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한 시점이다. 세계는 군사·안보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금융·외환 시장은 극도로 불안정하다. 신흥국들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최악의 경제환경이다. 외환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무역적자 문제는 해소될 기미가 없다. 경제주체들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지 않도록 진두지휘해야 한다. 특히, 경제 상황에 맞는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 글로벌 리세션에 대한 공포가 현실화 하는 지금에 경제주체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책이나, 무분별한 확장적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금물이다.
 
정부는 위기 상황에서도 다음 경로를 감지해야 한다. ’죽음의 계곡‘을 지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후 어떤 먹거리를 위해 도전할지를 미리 모색해야 한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재생에너지, 디스플레이, 콘텐츠, NFT 등과 같은 유망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유망기술 인재를 육성하고, 해외 주요기업들을 국내 유치해 기술교류가 일어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과거의 규제가 미래의 신성장 산업을 제약하지 않도록 합리적 규제체제를 마련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오늘을 살지만, 내일을 고민해야 한다. 경제주체들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도록 ’성장 사다리‘를 놓는 경제·산업 정책이 필요하다.
 
* 필자는 ‘경제 읽어주는 남자’로 알려진 한국의 대표 이코노미스트다. 현재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이자 한양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과 삼정KPMG 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을 역임하며 경제 이슈를 분석해 왔다. 정부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인사혁신처·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2021년 경제 전망’, ‘위드 코로나 2022년 경제 전망’, ‘그레이트 리세션 2023년 경제 전망’ 등 5년째 베스트셀러 경제전망서를 발간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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