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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환경’ 빠진 환경마케팅은 기업을 위험에 빠트린다 [이윤정 에코앤로]

환경이 과거엔 비용 소모 분야였다면
현 ESG 시대엔 매력적인 마케팅 도구
친환경 노력으로 그린워싱 유혹 떨쳐야

 
 
극심한 폭염과 가뭄으로 말라버린 이라크 남부 습지와 버려진 보트. [AFP=연합뉴스]
20여 년 전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환경법 석사과정을 할 때 일이다. 지도 교수 전공이 ‘환경법, 지적재산권법, 통상법’이어서 처음에는 “교수님이 다양한 분야의 법에 관심이 많으신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이 분 논문도 읽고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도 해보니, 환경법, 지적재산권법, 통상법을 따로 따로 공부한 것이 아니었다.  
 
유엔생물다양성 협약의 지적재산권 이슈와 기후변화 관련 통상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친하게 지냈던 다른 환경법 전공 학생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 지도 교수는 환경법과 인권법 전공인데 기후변화 같은 환경문제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문제가 지적재산권, 통상, 인권 등 다양한 분야와 관련되어 있고, 그렇게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때 어슴프레 짐작을 했던 것 같다.
 
전통적으로 기업에서 환경 문제를 다루는 부서는 “환경·안전팀”이다. 얼마 전까지 기업의 환경 문제는 환경·안전팀의 울타리 밖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로펌 변호사는 기업의 법무팀과 주로 일하지만, 환경 변호사인 나는 초장기에는 환경·안전팀과 일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법무팀에도 환경 담당 변호사가 있는 기업이 많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법무팀에서 환경문제를 직접 챙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기업의 다른 부서, 즉, 홍보, ESG, 재무, 전략·기획팀까지도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문을 구한다. 바야흐로 “기업 경영의 거의 모든 분야가 환경과 관련되기 시작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린워싱도 환경의 영역 확장의 한 예이다. 그린워싱이란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청소년 기후변화 활동가인 그레타 툰베리가 11월 6일 이집트에서 열리는 제27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번 당사국 총회가) 권력 있는 자가 그린워싱을 이용해 거짓말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툰베리가 말하는 권력 있는 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선진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겉으로는 친환경 경영을 표방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많은 소비자들이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가능하면 친환경적인 제품을 사기를 희망하고 있는 요즘 그린워싱은 기업들이 반드시 엄격하게 체크하여야 하는 중요한 이슈이다. 그린워싱과 관련해서는 환경법과 공정거래법에서 규제되고 있고, 친환경 제품이라고 표시하고 광고하기 위해서는 광고 문구의 구체적인 내용이 반드시 실증적인 자료로 입증되어야 한다.  
 
즉, 객관적인 근거 없이 친환경 (eco-friendly), 지속가능 (sustainable), 넷-제로 (net-zero), 저탄소, 자연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광고할 수 없는 것이다. 제품뿐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광고에 대해서도 유사한 규제가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또한, 홈페이지나 언론 기사, 임직원의 인터뷰 등 대외 메시지에도 친환경 관련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 그린워싱으로 비판 받을 수 있으므로 사전 점검이 필요하다.    
 
2015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기후변화 회의에서 참가자들이 기후 이상 현상 세계지도를 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린워싱 기업 대상 소송 증가세
그린워싱을 이유로 소비자 개인 또는 시민단체에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 소비자는 최근 글로벌 패션 기업 H사를 상대로 회사가 “지속가능(sustainable)”하다고 마케팅한 의류 제품들의 상당수가 실제로 지속가능하지 않은데 자신은 이러한 마케팅에 속아서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해당 제품을 구매하였으니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하였다.  
 
또한 미국의 육가공 업체 T사는 홈페이지에 동물들이 ‘환경적으로 책임있는’(environmentally responsible) 상태에서 사육되고 있다고 마케팅하였으나 사실은 아주 동물들을 아주 좁은 케이지에서 사육하고 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로부터 소송을 당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해외 유명 기업들이 그린워싱 소송에 휘말렸는데, 화장품 회사 B사는 제품 원료가 “자연에서 왔으며 (come from nature)” “책임있는 조달 방법 (responsible sourcing methods)으로” 얻어졌다고 광고하였다는 이유로, 생수 회사 D사는 제품이 “100% 재활용 가능하다”고 마케팅했다는 이유로, 항공사 K사는 “탄소 제로 비행을 하세요”라는 슬로건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한 바 있다.  
 
해외의 소송 사례를 보면 기업 측에서 그린워싱 의심을 받은 광고가 실제 근거에 입각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실증적인 자료를 제시한 경우에는 승소한 반면, 광고나 마케팅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수사적 표현이므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경우에는 상당수가 패소하였다. 예를 들어 신발 제조기업인 A사는 전과정평가 (life- cycle assessment)를 통해서 제품 생산시의 탄소발자국을 측정하였다고 광고하였고 탄소발자국의 구체적인 수치도 공개하였는데, 그린워싱 소송에서 이 점을 주장, 입증하여 승소하였다.  
 
위 A사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이 환경을 유용한 마케팅 도구로 이용하면서도 그린워싱이라는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정확한 실증 자료에 입각한 마케팅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마도 기업의 홍보 담당팀과 제품 품질 관리팀, 그리고 환경/안전팀 등 여러 부서가 협업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마케팅, 광고 매뉴얼을 재점검하여 그동안 관용적으로 사용했던 과장된 수사나 표현이 있다면, 이를 적어도 환경의 영역에서는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홈페이지나 언론 기사, 임직원의 인터뷰 등도 같은 원칙으로 관리하여야 한다. 구체성과 정확성이 없는 상태에서 환경 마케팅을 한다면 그린워싱으로 소송을 당하거나 환경법/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전에 환경이 기업 경영에서 단순한 리스크 또는 비용이 드는 분야였다고 하면 ESG 시대 환경은 많은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인 마케팅 도구가 되었다. 다만, 기업이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마케팅의 콜라보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제품 생산이나 원료 조달 과정에서 탄소배출이나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실제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이를 입증할 자료가 없는, “진짜 환경”이 빠진 환경 마케팅은 기업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소송에 휘말리게 하며, 법령 위반과 손해배상의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으므로 기업은 그린워싱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 또 경계하여야 한다. 
 
※ 필자는 환경법 전문가로, 현재 김앤장법률사무소의 변호사이다. 환경부 고문 변호사이자 중앙환경분쟁조정회 위원이다.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 법제처 법령해석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2022년 환경의 날 대통령 표창 포상을 수상했다. 
 

이윤정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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