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둔화에 IB 수익성 ‘뚝’…주가 하방압력도 확대 [새해에도 암울한 증권가①]
트레이딩 손익 개선에도 부동산 PF 악령에 ‘덜덜’
PF 익스포져 20조원…자산건전성 역량 증명 관건
올해 증시 부진으로 증권업계의 수익성이 크게 위축된 가운데 내년에도 큰 폭의 실적 개선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금리인상 속도 조절로 트레이딩 손익은 나아지겠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악령이 여전히 숨통을 틀어쥐고 있어서다. 증권사들의 주가 역시 저금리‧유동성 장세가 돌아오지 않는 한 전고점을 회복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동학개미운동’과 저금리에 힘입어 호황을 누렸던 증권업계는 올해 처참하게 무너졌다. 물가와 금리가 급격히 치솟으면서 위험자산 회피현상이 심화됐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투자심리를 꺼뜨렸다.
주요 증권사 5곳(미래에셋‧한국금융지주‧삼성‧NH‧키움)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1조611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5%나 쪼그라들었다. 거래대금 축소로 브로커리지 이익이 급감했고, 고금리 탓에 WM과 운용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IB 부문의 수수료도 크게 줄어든 가운데 유일하게 부동산 PF 부문만 선전했다.
증권사들의 수익성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주가 역시 바닥을 기었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KRX 증권지수는 지난 20일 591.52에 마감했다. 올해 초 고점(1월 13일)인 784.59와 비교하면 24.6%나 급락한 수치다.
증권업계에 대한 내년 전망도 녹록지 않다. 지난 2021년 1조원 안팎이었던 대형 증권사들의 순이익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500억원 내외에 머물 것으로 추정된다. 브로커리지, IB 등 트레이딩을 제외한 주요 사업부문의 이익 감소가 불가피해서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의 순이익은 올해 6580억원에서 6330억원으로 소폭 줄어들 전망이다. 같은 기간 삼성증권(5070억원→4830억원)과 키움증권(489억원→471억원)도 순이익 감소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IB 수수료 손익 감소는 증권사들의 실적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주요 배경이다. 지난 5년간 증권사들은 부동산 PF 영업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조달비용 상승과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투자 확대보다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내년 수익 개선이 예상되는 ECM, DCM 등 전통 IB 부문도 절대적인 규모가 투자형 IB 대비 크지 않다.
윤유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상반기 중 금리 인상 종료를 가정한다면 트레이딩 손익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도 “내년 증권사 5개사(미래에셋‧한국금융지주‧삼성‧키움‧대신)의 IB 수수료 손익은 전년 대비 29% 감소한 7431억원으로, 수익원 중 실적 감소 폭이 가장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단기자금시장 경색은 내년 증권업계의 최대 리스크로 꼽힌다.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가 레고랜드 ABCP 상환에 실패하며 시작된 자금시장 경색은 증권가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지자체 보증 채권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 상황에서 증권사들은 채무보증을 제공했던 PF-ABCP‧ABSTB의 차환 발행에 애를 먹고 있다.
현재 국내 증권사 부동산 PF 채무보증 익스포져는 약 20조원으로 추산된다. 매입확약 익스포져는 18조5000억원으로, 전체의 89.6%에 달한다.
이에 대해 임희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부동산 PF는 최근 수년간 증권사들의 이익체력을 견인해온 주요 영업 부문이지만 지금은 돈맥경화의 주범”이라며 “판관비율이 높은 증권사일수록 IB 부문을 비롯해 전사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주가 상승 모멘텀 실종…“PF 우려 과도” 지적도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증권주는 부동산 익스포저 자체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이어 흑자 도산에 대한 우려까지 반영되면서 급락했다”며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투자 손실로 인해 이익이 크게 감소하면 주가에 긍정적이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부동산 PF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증권사 채무보증(우발채무)이 실제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낮고, 채무보증이 이행된다고 해도 담보 매각을 통한 회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지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2014년 이후 증권사가 영위한 ‘미담확약’의 경우 엄격한 선행조건과 담보 확보가 있어 채권보전에 용이하다”며 “특히 증권사들은 지난 몇 년간 꾸준한 이익 실현과 자본확충 영향으로 순자본비율이 상승하면서 위기대응 능력이 과거 대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국내 증권사의 부동산 PF는 2010년 대규모 부실사태를 빚은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비 위험수준이 낮다”며 “과거 저축은행의 부동산 PF는 대부분 착공 전 ‘브릿지론’ 위주로 구성돼 손실률이 매우 높았던 반면, 증권사 부동산 PF는 인허가완료 및 착공 후에 대출이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부연했다. 증권사가 부동산 관련 우발채무를 인수하더라도 유동성비율 및 월별 취급잔액을 고려할 경우 관련 위험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김 연구원의 판단이다.
박경보 기자 pkb23@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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