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어 유럽도 보호무역…‘탄소국경세’ 현실화 [EU 무역장벽①]
EU, 탄소배출권거래제 강화
배출권 가격 부담…韓, 유럽의 7배 수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이어 유럽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ETS)까지 전 세계가 보호무역을 강화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상당 부분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의 특성상 주요 수출국이 무역 장벽을 높이면 작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2022년 12월 18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은 ETS 개편을 위한 의회·이사회·집행위원회 간 삼자 합의가 타결됐다고 밝혔다. 이 개편안은 2023년 1~2월, EU 27개 회원국 동의와 유럽의회 표결을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ETS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업체들에 매년 일정 수준의 배출량 기준을 정해주고 이보다 적게 온실가스를 배출한 경우 잉여분만큼의 배출 ‘권리’를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기준치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한 기업은 그만큼 배출 ‘권리’를 구입해야 한다. 탄소배출권거래제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특정 국가나 지역에서 매년 배출하는 탄소량을 조절하기 위한 조처다.
EU는 이번 개편안에 따라 2030년 탄소 배출 감축 목표치를 2005년 배출량(43%)에서 62%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유럽의회 협상 대표인 독일의 피터 리제 유럽의회 의원은 ETS 적용 대상에 해상 및 폐기물 소각 산업 등을 추가하는 등 “거의 모든 경제 영역을 포함하게 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요한 점은 EU가 유럽 내 기업에 제공했던 일종의 보호 장치인 ‘무료 할당제’도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것이다. 무료 할당제란 철강, 화학, 시멘트 등 특히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군에서 일정 수준까지 탄소배출권을 거래하지 않아도 되도록 예외를 인정하는 제도다.
EU가 탄소배출에 관한 규제를 엄격하게 하고 ETS를 빡빡하게 적용할 경우 유럽 내 기업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 때문에 EU는 일종의 보호장치인 무료 할당제를 유지해왔는데 이런 혜택을 점차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역외(유럽 밖) 기업이 EU로 제품을 수출할 때도 같은 기준으로 규제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했다. 아시아 등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느슨한 나라에서 제품을 생산할 경우 EU 내 기업보다 ETS 비용 부담이 덜한데, 이런 제품을 유럽으로 들여올 경우 유럽기업과 같은 수준의 부담을 지우겠다는 것이다.
일찍부터 탄소배출 감축을 준비해 온 유럽과 유럽 내 기업들보다 상대적으로 준비가 부족한 기업들은 ETS 규제 강화에 대한 부담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에서 거래되는 탄소배출권 가격은 현행 기준 1톤(t)당 80~100유로, 최대 14만원 수준까지 인상될 전망인데 t당 2만 원대에 탄소배출권이 거래되는 한국과 비교하면 7배까지 차이 날 수 있다.
우리 기업이 유럽 기준을 맞추지 못하고 탄소배출량이 많은 제품을 생산해 EU에 수출한다면 그만큼 부담이 커진다는 뜻이다. EU 입장에선 수입 장벽을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어 유럽 내 기업들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미국이 시행하는 IRA와 비슷한 정책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탄소배출 감축 준비 부족, 아시아 기업 불리 우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당시 발디스돔브로브스키스 EU 수석부집행위원장, 마티아스코먼 OECD 사무총장과 만나 EU가 추진 중인 CBAM이 일방적인 무역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향후 법안 처리 등 제도 입법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줄 것을 촉구했다. 안 본부장은 “각국 기후정책이 무역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국제 공조와 정책 협력을 강화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한 바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한국은 EU와 마찬가지로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는 만큼 CBAM 적용 면제국으로 지정돼야 한다”며 “양국의 탄소중립 목표달성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다만 EU가 ETS 규제 강화를 밀어붙일 경우 우리 정부나 기업이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은 한계로 꼽힌다. 안덕근 본부장은 최근 EU 전문매체인 유락티브와의 인터뷰에서 CBAM과 관련해 “(EU의) 추진 방식을 두고 우리 산업계에서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전반적인 과정을 잘못 관리한다면 어느 순간 이 사안이 유럽판 IRA처럼 여겨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라고 말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병희 기자 leoyb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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