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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신약 개발은 ‘초다학제’ 연구… ‘인재’가 문제다” [신약 단축키 AI]③

김선 목암생명과학연구소 소장 인터뷰
의학·공학 등 분야별 전문가만 육성해선 안돼
“전문가 모인다고 융합 아냐…소통·협력 돼야”

김선 목암생명과학연구소 소장(오른쪽)과 신현진 부소장은 10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목암생명과학연구소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인공지능 신약 개발 등 다학제 분야에 도전하는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인공지능 신약 개발은 ‘초다학제’ 분야다. 두어 개 분야의 전공자들이 합을 맞추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인공지능 신약 개발에는 의학과 화학, 컴퓨터공학 등 최소 여섯 개 분야 이상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이런 분야를 모두 아는 연구자는 없기 때문에 다양한 학문을 공부한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야 한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이런 융합의 기반이 되고 싶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 김선 소장·신현진 부소장)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국내 생명과학 부문의 민간 연구기관이다. 1984년 GC녹십자가 설립했고, 유행성 출혈열 백신과 독감 백신 등의 의약품을 개발했다. 현재는 독립법인이자 비영리 연구재단으로 운영 중이다. 설립된 지 40년 가까이 된 목암생명과학연구소에 지난해는 의미 있는 한해였다. 인공지능 신약 개발을 중심으로 연구개발을 주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도전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김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소장으로 영입했다. 김 소장은 인공지능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분야의 1세대로 꼽힌다. 한때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신약 개발 플랫폼을 개발해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한 김 소장은 ‘본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목암생명과학연구소 소장”이라며 웃었다.

“6개 학문 시너지 내도록”…목암, 교육 프로그램 운영

인공지능 신약 개발은 많은 기업이 관심을 쏟는 분야다. 그러나 인공지능으로 발굴한 치료제 후보물질 중 실제 신약이 된 약물은 아직 없다. 인공지능 신약 개발은 세계적으로 걸음마 단계다. 달리 말하면 국내 기업들이 기술력을 앞세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걸림돌은 많다. 김 소장은 그중 하나로 '인재'를 꼽았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신약을 개발할 때 필요한 여러 학문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연구개발을 주도할 인재가 없다는 지적이다.

김 소장은 “신약 개발이 전통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고 성공률이 낮은 점은 잘 알려져 있다”며 “그래서 컴퓨터 모델과 인공지능을 도입해 신약 개발 성공률을 높이고, 새로운 치료제도 개발해보려는 시도도 계속돼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인공지능 신약 개발에 뛰어든 전문가들의 연구 분야와 배경이 다르다 보니 연구자들이 문제 자체를 식별(problem identification)하기 어려워한다”며 “찾아낸 문제를 다른 분야의 연구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야 하는데, 이를 수행할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신현진 목암생명과학연구소 부소장도 ‘소통’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에서 융합 인재는 모든 분야를 다 아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며 “융합 인재의 핵심은 학문 사이의 벽을 허물고 연구자들이 소통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서울대 인공지능연구원과 박사 학위 소지자나 박사 과정 수료자를 대상으로 약학과 생물정보학, 인공지능 등 5개 분야를 무료로 교육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목표는 “연구자들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김선 목암생명과학연구소 소장은 10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목암생명과학연구소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공학도와 의학자를 따로 키워내면 다학제 연구를 진행할 수 없다”며 “산·학·연·병의 연구개발 체계를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김 소장은 이 프로그램을 ‘퍼즐’에 비유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학제 간 벽이 높다. 벽을 허물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민하다 떠오른 것이 ‘퍼즐 형태의 다학제 연구’다. 퍼즐 조각을 보면 다른 조각과 맞물리기 위해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여기에 다른 색을 칠하면 퍼즐 조각을 모두 맞췄을 때 여러 색으로 조합된 퍼즐이 완성된다. 다학제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퍼즐 조각의 끝에 다른 색을 칠하는 것처럼 전문가들이 맞물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의 교육 프로그램이 여러 분야를 모두 아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신 부소장은 “다른 분야와 소통할 수 있는 융합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외부 인력을 대상으로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내부 인력에 대해서도 인공지능 신약 개발과 관련한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연구 분야를 확장하기 위해 인공지능 전공자가 약학을, 생물정보학 전공자가 의학이나 컴퓨터공학을 학습하는 등 새로운 분야를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융합 분야에 도전하려는 인재에게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간 정부는 의학자와 공학도를 따로 육성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분야별 전문가를 키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의 커리어 트랜지션(career transition) 프로그램 같은 제도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생명공학 전공자가 인공지능을 배워 융합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면 생활과 연구를 지원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다양한 학문 분야가 섞이고 소통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필요하다”며 “정부가 주도해 병원과 대학, 기업이 참여하는 대규모의 장기 프로젝트가 답이 될 거라고 본다”고도 했다.

“인공지능으로 신약 개발 공백 메울 것”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인공지능을 차세대 치료제 개발에 접목해 국내 신약 개발의 저변을 넓힐 계획이다. 치료 분야 중에서는 메신저 리보핵산(mRNA)에 주목하고 있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가 mRNA에 주목한 이유는 이 기술이 유망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신 부소장은 “신약 개발 기업들이 관심을 두지 않은 분야를 찾다 보니 차세대 치료제가 눈에 들어왔다”며 “저분자 화합물보다는 mRNA와 항체, 단백질 등에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신약 개발의 막힌 부분을 풀어주는 게 목암생명과학연구소의 역할이라는 판단에서다.

신 부소장은 “신약 개발의 모든 과정에 인공지능이 도입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그는 “저분자 화합물 파이프라인에서는 ‘가상 스크리닝’(virtual screening)이나 ‘선도 물질 최적화’(lead optimization) 등에서 훌륭한 성과를 내는 벤처들이 많다”며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하지만, 기술 수준이 높거나 현실적인 제약으로 그동안 기업이나 기관이 뛰어들지 못했던 분야에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인원이 늘어나면 추가적인 연구개발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인공지능을 활용해 항체의약품과 단백질 등을 지금보다 효과적으로 디자인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는 올해 인공지능 신약 개발 분야에서 일할 전문 인력을 10여 명 채용할 계획이다. 영입한 인재는 융합 인재로 길러내기 위해 다양한 내부 교육을 실시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mRNA 플랫폼을 개발하는 등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신 부소장은 “지난해 3명의 연구개발 인력을 채용했고 올해는 10명을 더 영입할 계획”이라며 “2026년까지 연구개발 인력만 26명으로 확대해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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