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범죄자들의 해외 도피, 이제는 ‘어리석은 선택’이어야 한다[김기동의 이슈&로] 

‘1도(逃), 2부(否), 3배(背)’ 근절하려면…엄중한 형 집행 필요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LawVax) 대표변호사] 요즘 언론보도를 보면, 중요 사건 피의자가 해외로 도피해 검찰과 경찰이 신병확보에 나섰다는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2018년 579명, 2019년 927명, 2020년 943명, 2021년 953명으로 해외 도피 사범은 증가하는 반면, 국내로 송환된 인원은 2018년 304명, 2019년 401명, 2020년 271명, 2021년 373명 등에 불과하다. 해외로 도피해 법의 심판을 모면하고 있는 범죄자가 늘어나고 있다.
마약 밀매 사범인 조봉행이 브라질에서 체포된 후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범죄인 인도 결정으로 국내 송환된 일화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의 한 장면.(사진 '수리남' 홈페이지 캡처)

도피 국가는 중국이 제일 많고, 그다음 필리핀, 베트남, 미국 등의 순서다. 출입국과 이동의 편의성, 도피자금으로 생활하는데 유리한 환경 등 도피 사범들 나름의 기준에 따라 도피 국가의 선호도가 결정된다고 한다. 최근 들어 중요한 사건의 피의자들이 해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이들을 검거하기 위해 사법당국이 고군분투하면서 힘든 전쟁을 치르고 있다. 

경찰청은 2012년부터 해외 도피 사범 검거·송환 등을 위해 필리핀 현지에 경찰 6명을 파견해 ‘코리안데스크’를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카지노’에서 손석구가 열연한 한국 경찰관의 모습이다.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태국 등에도 경찰협력관이 파견 나가 있는 등 현지 공조 수사를 하고 있다. 

대검찰청은 외국 사법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2010년부터‘국제협력단’을 설치·운영하고 있고, 2013년 24개국을 회원국으로 하는‘아시아-태평양 범죄수익환수 네트워크’(ARIN-AP) 설립을 주도하고, ‘국제검사협회’(IAP) 총회를 한국에서 2회 개최, 4년간 국제검사협회장 국가로서 활동하는 등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법무부도 올해 1월 ‘동남아시아 공조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등 국가 간 협력을 강화하고 있고, 형사소송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현행법상 ‘수사 중’이거나 ‘재판이 확정’된 범죄자가 해외로 도피하면 공소시효와 형집행시효가 정지되지만, 재판 중인 피고인은 시효 정지 규정이 없어 처벌에 공백이 존재했다. 이에 법무부는 이 경우에도 재판시효가 정지되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2019년 10월 16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국제형사경찰기구 인터폴의 '제88차 총회' 모습. 총회 현장에 개최국 국기가 입장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해외 도피 사범을 검거하는 기본적인 사법절차는 법무부에 의한 ‘범죄인 인도 청구’다. 우리나라는 79개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하고 있고, 인도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도 국제법상 일반원칙인 상호주의에 따른 상대 국가의 결정으로 인도받을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수리남’은 마약 밀매 사범인 조봉행이 브라질에서 체포된 후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범죄인 인도 결정으로 국내 송환된 일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인 인도 청구도 도피 사범의 소재 파악과 신병 확보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이를 실효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인터폴(Interpol·국제형사경찰기구)이다. 194개국이 가입돼 있고, 체포영장이 발부된 중범죄 피의자에게 적색수배를 내리면 인터폴에 가입된 전 세계 사법당국에 수배자의 사진과 지문 등 관련 정보가 공유된다. 외교부를 통한 여권 무효화 조치도 취해진다. 여권을 무효화 함으로써 도피 국가에서 체류 자격을 상실하게 해 불법 체류자가 되게 하고, 그 국가에서 추방하는 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이같이 여러 기관에서 해외 도피 사범 검거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고, 글로벌 시대 국가 간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어 해외도피자들의 설 자리가 차츰 없어져 가고 있다. 결국, 사법절차를 회피하기 위해 해외 도피를 시도한다면 어리석은 선택일 뿐이다. 도피 생활은 엄청난 비용과 불안, 고통이 수반되고, 사법당국이 추적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붙잡힌다. 또한 도피는 스스로 방어권 행사를 포기하는 것이고, 더 엄정한 수사를 자초해 재판단계에서 불리한 양형 요소만 추가하게 된다. 
도피 21년 만에 중미 국가인 파나마에서 붙잡힌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아들 정한근 씨가 2019년 6월 22일 오후 국적기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해 입국장을 나오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수백억원을 횡령하고 해외로 도피했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아들 정한근 씨가 2019년 파나마 토쿠멘 국제공항에서 도피 21년 만에 붙잡혔다. 미국 시민권자로 신분을 세탁, 도피 생활을 하다가 한국, 미국, 캐나다, 에콰도르, 파나마 5개국의 긴밀한 공조로 검거된 것이다. 끈질긴 추적 끝에 이루어낸 쾌거로서 업무를 담당한 대검 국제협력단 관계자의 노고는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해외 도피라는 일시적인 현실회피의 유혹이 범죄자들에게 어리석은 선택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검경 담당 인력의 확충, 전문성과 역량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다른 법체계에서 사법주권을 행사하는 국가 간에 신속하게 해외도피자를 검거해 신병을 인도받는 것은 상대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탓에 다른 나라 사법당국과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은 필수적이다.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는 반드시 붙잡아 보다 엄중한 형을 집행함으로써 ‘해외도피는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명제가 이제는 확립돼야 할 때다. 그러면 ‘1도(逃), 2부(否), 3배(背)’라는 범죄 세계의 은어(우선 달아나고, 잡히면 부인하고, 그래도 안 되면 ‘빽’을 쓰라는 의미)가 적어도 해외도피자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사라지지 않을까.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LawVax) 대표변호사.

김 대표변호사는… 
필자는 기업 및 금융 분야 자문 및 변론을 주로 취급하는 로펌 로백스(LawVax)를 설립해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25여 년간 검사로 재직하며 원전비리수사단장, 대검찰청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장,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특수3부장을 비롯한 반부패 수사부서의 책임자를 도맡았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미래에셋, ‘TIGER 미국필라델피아AI반도체나스닥 ETF’ 신규 상장

2KB자산운용, ‘RISE 미국AI테크액티브 ETF’ 출시

3한투운용 ACE 인도컨슈머파워액티브, 순자산액 500억원 돌파

4교보증권, STO사업 위한 교보DTS·람다256 MOU 체결

5"누나는 네가 보여달래서…" 연애한 줄 알았는데 잠적?

6‘이것’만 있으면 나도 백종원...팔도 왕라면스프, 누적 판매 300만개 돌파

7중견기업 76% "트럼프 2기, 한국경제 불확실성 높일 것"

8'비트코인 큰 손' 마이크로스트래티지, 5만5500개 추가 매수

9"오! 야망있네~" 김종민 연하女와 결혼? 역술인 말하길…

실시간 뉴스

1미래에셋, ‘TIGER 미국필라델피아AI반도체나스닥 ETF’ 신규 상장

2KB자산운용, ‘RISE 미국AI테크액티브 ETF’ 출시

3한투운용 ACE 인도컨슈머파워액티브, 순자산액 500억원 돌파

4교보증권, STO사업 위한 교보DTS·람다256 MOU 체결

5"누나는 네가 보여달래서…" 연애한 줄 알았는데 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