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갑’ 강남 집주인도 안절부절…물량 폭탄 터지나
['째깍째깍' 강남 부동산] ①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의 40% 가량 강남·서초구에 집중
전셋값 하락에 역전세 심화…강남권 집값 더 하락할 수도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 1. 개포동 소재 아파트 집주인 A씨는 최근 전세 계약이 만료돼 전세금을 돌려줘야 했으나, 전셋값이 하락해 곤혹을 치렀다. 신규 세입자와 기존에 크게 못 미치는 금액으로 전세 계약을 하는 바람에 A씨는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기 위해 신규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에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 2. 잠실동 소재 아파트 세입자 B씨는 전세기간 만료일이 다가오자 더 저렴한 전세로 옮기고자 집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집주인에게 전세자금대출 이자분을 입금해 줄테니 “좀 더 살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콧대 높던 강남 집주인들이 ‘역전세난’에 좌불안석이다. 고금리 여파로 전세 수요가 급감한 가운데 입주 물량 증가 등의 영향으로 강남권의 전셋값이 크게 하락하고 있어서다. 떨어지는 전셋값이 전국 집값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강남권의 집값 하락도 자극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월 첫째 주 강남권 11개 구의 전셋값은 전주보다 1.11% 하락했다. 강북권 14개 구 하락폭(-0.77%)보다 30%가량 더 떨어진 것이다. 이 중 강남구는 입주 물량의 영향이 있는 개포·대치·일원·압구정동 위주로 평균보다 하락폭이 큰 1.39%나 내렸다.
전세가격지수도 하락세다. KB부동산 월간시계열 아파트 전세가격지수에 따르면 1월 강남 11개 구의 전세가격지수는 89.2로 2020년 12월(89.7) 이후 처음으로 80대로 떨어졌다.
신축 아파트 전셋값이 떨어지자 구축 아파트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블레스티지’ 전용면적 85㎡(34평형)는 2020년 11월 16억원에 전세계약을 맺었으나, 이달 7일 재계약 때는 10억5000만원에 체결됐다. 불과 2년 만에 전세 보증금이 5억5000만원이나 낮아졌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59㎡(25평형) 매물은 5억8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면적이 지난 2021년 9월 11억5000만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해 1년4개월 만에 전셋값이 반토막이 났다.
개포동뿐 아니라 서초구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반포자이 전용면적 84㎡도 최근 12억3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돼 지난해 최고가에 비해 10억여 원이 하락했다. 9000여 가구가 넘는 매머드 단지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 전세는 지난해 최고가 15억8000만원에서 최근 7억1400만원에 거래됐다.
고금리 여파 거래절벽에 입주 물량 폭탄으로 역전세 심화
강남권은 학군 수요 등의 영향으로 일반적으로 전셋값이 더 많이 오르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고금리 부담에 월세 선호 현상이 느는 등 전세수요가 크게 위축됐다. 수요가 부족한 상황에서 신축 아파트의 대규모 공급까지 더해지며 역전세난을 더 심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이달 28일 입주 예정인 개포동 ‘개포자이 프레지던스’는 전세물건이 1373건에 달하고 있다. 전체 3375가구의 3분의 1이상이 전세로 나온 것이다. 개포동 인근 공인 중개사 사무소 관계자는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등으로 인해 입주 물량은 늘어났는데 역전세난 때문에 전세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며 “본인 집이 안 빠져서 이사 오려던 사람들이 못 오게 되고, 전세대출 금리가 높아지는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영향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2020년 7월부터 시행된 임대차2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집주인이 계약기간 4년 동안 못 받을 전셋값을 더 올린 게 부메랑이 돼, 전세계약이 만료된 물건이 쏟아지면서 역전세난이 더 심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전세 매물은 더 쌓여가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강남구 전세 매물은 2월 14일 기준 8600여건으로 1년 전 5000여건에 비해 70% 이상 증가한 상태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임대차 3법이 통과된 이후에 단기간 전세가격 상승폭이 상당히 컸었다”며 “2020년 7월부터 한 2년여 사이에 서울 중심권역을 포함해서 30% 이상 급등했고 신축들은 더 많이 올랐다”고 전했다. 이어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임대인들이 최근 들어 늘어나는 상황이고, 특히 입주 물량이 몰리는 지역들이 좀 더 심하다”고 설명했다.
강남에서는 올해 줄줄이 신축 단지의 입주가 예정돼 있어 한동안 전세가가 낮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개포프레지던스자이를 시작으로 5월 강남구 ‘대치푸르지오써밋’ 489가구, 6월 서초구 ‘르엘 신반포 파크애비뉴’ 339가구, 8월 서초구 ‘래미안 반포 원베일리’ 2990가구, 11월 개포동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에서 6702가구가 각각 입주를 앞두고 있다.
문제는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의 40% 가량이 강남·서초구에 집중돼 강남권 집값 하락을 더 자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세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김인만 부동산 연구소장은 “작년과 올해의 경우 금리 상승 여파로 입주 물량이 없는 지역들도 전세 가격이 많이 떨어졌는데 강남 같이 입주 물량이 많은 곳은 더 떨어지는 이중고에 빠지게 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강남도 더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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