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원 현대차 실장 “초고속 충전 인프라 확충은 사회적 책무” [이코노 인터뷰]
정규원 현대자동차 EV인프라전략실장
韓 현대차그룹 홈 마켓…“선순환 구조 만들 것”
이 피트 얼라이언스 구축 통해 양과 질 모두 확보
[이코노미스트 이건엄 기자] “한국은 현대차그룹의 홈 마켓이다. 그만큼 느끼는 사회적 책임도 크다. ‘E-pit(이하 이 피트)’를 통해 국내 전기차 충전 시장에 프리미엄과 초고속이라는 가치를 더하고 싶다”
정규원 현대자동차 EV인프라전략실장이 강조한 초고속 전기차 충전플랫폼 ‘이 피트’의 지향점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국내 완성차 시장 1위 사업자로서 책무를 갖고 전기차 이용자들이 느끼는 충전질 향상을 위해 인프라 구축에 앞장선다는 설명이다.
지난 16일 현대차그룹 양재 사옥에서 만난 정 실장은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이 피트를 통해) 고객과의 충전을 매개로 고객과 접점을 늘릴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하나 더 창조하는 것”이라며 “이 피트 앱을 통해서는 디지털 영역까지 접점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피트의 시장 안착을 통해) 초고속충전 사업도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한다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며 “현대차가 대기업으로서 먼저 진입하고 다른 충전 사업자들이 따라 들어오는 선순환의 시작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또 “이 피트를 통해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의 전기차를 선택하면 이점이 많다는 것을 고객들이 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정식 운영을 시작한 이 피트은 현대차그룹이 국내 최초로 고속도로 휴게소 및 도심에 구축한 전기차 초고속 충전소다. 출력량 기준 국내 최고 수준인 350kW급 초고속 충전설비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이는 18분 만에 배터리 용량의 80%까지 충전할 수 있는 출력이다.
이용자에 초점…핵심은 캐노피
정 실장은 이 피트가 국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질적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모든 요소를 이용자 친화적으로 설계됐다고 강조했다. 열악한 충전 환경 탓에 ‘충전 난민’으로 전락하는 이용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 피트를 처음 기획할 때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의 전기차 고객들이 좀 더 편안하게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며 “당시에는 모든 충전 인프라와 자동차 배터리 시스템이 완속 및 급속에만 맞춰져 있어 초고속충전을 경험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락한 환경에서 충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요소들을 세팅하면서 현대차그룹 차원의 리소스를 모두 끌어모았다”며 “남양연구소에 있는 디자이너들이 충전기와 캐노피 등 이 피트의 모든 요소를 직접 디자인했고 UX 역시 고객과의 인터뷰에서 얻은 자료를 최대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 피트은 별도 조작 없이 인증, 충전, 결제까지 한 번에 가능한 ‘플러그 앤 차지’ 기능을 적용해 기존 여러 단계를 거쳐 충전해야 하는 불편함을 개선했다. 또 충전량을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이 설치된 지붕 덕분에 악천후에서도 무리 없이 충전할 수 있다. 덕분에 많은 소비자로부터 호평을 들으며 지난 1월 기준 회원수 7만명을 달성하는 등 순항 중이다.
정 실장은 “고객들이 충전에 대한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생각하다 떠오른 첫 번째 요소가 캐노피(지붕)였다”며 “비바람을 포함해 어떤 날씨에도 제한되지 않는 충전 공간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 고객들의 불만이 휴게소의 경우 밤이 되면 불이 다 꺼져 있어 불안감을 크다는 것이었다”며 “이에 착안해 이 피트 충전소 위, 아래에 라이팅을 모두 적용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이 피트가 고객과의 접점을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양질의 충전 서비스를 제공해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충전 플랫폼이 주는 가치를 전달하는 ‘홍보 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단순히 사업적으로 돈을 번다는 개념에서 접근하면 산수가 나오지 않는다”며 “이 피트는 프라핏(Profit·이익) 중심이 아닌 코스트(Cost·비용) 중심의 사업 모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피트는 현대차라는 브랜드를 더 잘 이해하고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들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지향점으로 두고 있다”며 “예를 들어 현대모터스튜디오만 보더라도 이를 수익사업으로 여기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이 이 피트의 모든 요소를 내재화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피트 상태를 항상 최상으로 유지하고 고객의 요구에 더 기민하게 반응하기 위해선 내재화가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4월 전기차 충전 서비스 품질 제고 및 고객 편의 확대와 충전 사업자 육성을 위해 ‘전기차 충전 서비스 플랫폼(E-CSP)’을 개발했다.
그는 “최근에는 이 피트 사업을 진행하면서 내재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이를 통해 내재화된 운영 서비스 플랫폼과 초고속충전과 관련한 지적 재산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25년까지 도심 초고속 보급 집중
현대차그룹은 이 피트를 비롯해 도심 초고속 충전기 공격적으로 보급한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이 피트 외에도 향후 아파트 등 다양한 충전 환경을 고려한 플랫폼 도입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 7일 전기차 초고속 충전 인프라 이 피트에 적용된 전기차 충전 서비스 플랫폼(E-CSP)을 아파트 충전소에 도입하기 위해 현대엔지니어링, 우리관리와 3자 업무협약(MOU)을 맺은 바 있다.
정 실장은 “노후화된 아파트의 경우 전기차 충전소를 짓고 싶어도 제한된 부분들이 많다”며 “아파트에 대한 충전인프라가 정부에서 세팅한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주거 형태상 1인 1홈 충전기 체제를 갖추는 게 어렵다”며 “이는 완속·급속이 주류인 공공 인프라에 의지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결국 도심을 타깃으로 초고속 충전소를 구축하는 것이 편의와 전기차의 양적, 질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현대차그룹은 ‘이 피트 얼라이언스(E-pit Alliance)’를 통해 국내 충전 생태계가 상생할 수 있는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정 실장은 “현대차그룹이 가진 좋은 강점을 함께 나누고자 제휴하는 파트너들이 이 피트 얼라이언스다”라며 “현대차그룹은 초고속 충전기 기술 플랫폼을 계열사인 한충전을 비롯한 얼라이언스 소속 업체에 제공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픈된 기술을 가지고 현대차그룹이 인정하는 품질 기준을 충족하면 별도의 인증을 제공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며 “현대차그룹의 초고속 충전 기술이 많은 사람에게 이용될수록 우리나라 전기차 고객들은 질적으로 개선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정 실장은 이 피트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고객의 목소리(VOC)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보급이 늘어날수록 다양한 형태의 불편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서비스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VOC를 분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앞으로의 어려움은 더욱 클 것으로 예상한다. 전기차 고객은 계속 늘어날 거고 고객들의 다양한 불편 사항과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존에 느낄 수 없었던 고객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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