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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10%만을 위한 특권노조…노동위원회는 일반 노동자의 고충처리반 [이코노 인터뷰]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노동법치 확립 노동법 개정은 정부, 노동관행 개선은 노동위의 몫
노동위 판정에 법의 해석이나 적용 바뀌면 새로운 노동 관행 정착
분쟁해결 시스템 구죽…심판보다는 화해와 조정을 위한 시스템 마련
일반 노동자들도 상위 10%노동자들이 누리는 혜택 누릴 수 있어야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사진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송길호 논설위원 겸 에디터] “우리나라 노조는 대기업 공기업 등 상위 10%만을 위한 특권노조 아닌가요. 일반 근로자 대부분이 노동조합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만큼 노동위원회가 그 역할을 대체해야 합니다” 

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은 최근 서울 정부청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노동개혁을 위한 노동위원회의 역할과 관련,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반 직장인의 개별 분쟁을 노동위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상위 10%노동자들이 노조로부터 제공받는 서비스를 나머지 90% 일반 노동자들이 누리지 못하면 노동기본권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직장인의 고충처리반으로서 노동위원회의 미션을 규정했다. 

노동경제학자로서 노동조합과 노사관계 분야를 오래 연구해 온 김 위원장은 김영삼정부시절부터 각종 노동 관련 위원회에 공익위원 또는 분과별 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윤석열정부 초대 노동부 장관으로도 물망에 오른 그는 지난해 11월29일 중앙노동위원장에 취임, 노동위원회법 제정 70주년이 되는 오는 8일 취임 100일을 맞게 된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노동 개혁 과정에서 노동위원회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노동개혁은 국가 차원에선 노동력을 확장, 생산성을 높이고 불평등을 줄이는 일입니다. 크게 3가지 갈래에서 접근할 수 있어요. 노동법치의 확립, 노동법제 개혁, 노동 관행 개선입니다. 법치수호는 정부, 노동법 개정은 정부와 국회의 몫이지만 노동 관행을 개선하는 일은 노동위원회의 역할이에요. 노동위원회의 판정은 법원의 판례처럼 작동합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쳐 법원까지 가도 98%는 판정이 유지됩니다. 노동위 판정에 따라 법의 해석이나 적용이 바뀌면 새로운 노동 관행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는 거죠. 노동 관행이 개선되면 노동자들의 이동성(mobility)이 확대되고 생산성도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노동관행 개선을 위한 노동위원회의 제1과제는?
디지털시대에 맞게 분쟁해결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일입니다. 노동법 개정이 끝나면 분쟁해결 시스템의 구조를 어떻게 짤 것인지, 노동위원회법 개정 문제가 자연스럽게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겁니다. 노조의 노동조합법 위반 여부에 대해 근로감독관도 노동행정당국도 이를 판단하는데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자칫 고무줄 잣대가 될 수 있어요. 이 때문에 민감한 사건에 대해선 근로감독관이 노동위원회에 넘겨 사전에 논의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노조 활동에 따른 각종 분쟁을 노동위원회에서 조정하는 셈이지요. 

지금 논란이 되는 노조 회계장부 공개 문제도 마찬가지겠군요.
노조의 회계문제에 대한 법적 규정은 사실상 사문화돼 있었습니다. 노조의 회계투명성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지만 사전에 이를 어디까지 공개할지 다툼이 있을때 그 기준은 노동위원회에서 제시할 수 있지요. 노동부가 문제점을 적발할 수는 있지만 위법 여부까지 판단하는데는 한계가 있잖아요.  이런 사전 완충장치 없이 검찰이나 경찰이 직접 나서게 되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어요. 우리나라는 노동 기본권을 헌법에 보장한 몇 안되는 나라에요. 노조는 노동 기본권을 구현하기 위한 핵심 조직입니다.  노동조합이 다른 이익단체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바탕위에서 노조와의 분쟁해결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노동위원회가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군요.  
대한민국은 왜 노동 갈등이 심하고 분쟁이 제일 많은 나라일까요. 국민성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바로 노동 분쟁 해결에 관심과 투자가 별로 없었던 거에요. 학교에서 협상기법을 가르친 적 있나요. 우리나라는 화해나 조정이 익숙치 않은 나라에요. 노동위원회에서도 기존엔 화해나 조정을 통해 해결하는 일을 이례적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심판이 주된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심판이라는 건 정신적, 물리적 비용이 많이 들고 후유증도 심해요. 그 전에 화해나 조정을 통해 해결해야 윈윈 하는 겁니다. 

화해 조정을 위한 분쟁해결 기법을 구축할 필요가 있겠군요.
미국 등 선진국에서 보편화돼 있는 대안적 분쟁해결제도(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를 도입중이에요. 당사자간 대화와 협상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화해와 조정으로 이끄는 협상 기법입니다. 사실 심판 사건의 대부분은 비슷한 유형이 많은데 ADR을 활용하면 효율적입니다. 통상 50일 걸리는 사건이 2주일이면 끝나요. 미국과 일본은 부당노동행위와 관련된 집단 분쟁의 각각 75%, 70%를 화해로 해결하는데 ADR 기법을 활용하고 있어요. 이런 기법을 활용하지 않는 한국은 화해로 해결하는 건 분쟁의 3분의 1수준에 그칩니다. 그동안 기존 노동위 조사관들은 심판을 위한 조사보고서 작성능력에 주력했지만 앞으로는 ADR 분쟁기법에 대한 능력 함양이 더 중요해질 겁니다. 지금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마련중이니 내년부턴 본격적으로 시행할 수 있을 거에요.

요즘엔 집단분쟁보다는 개별분쟁이 더 늘어나는 추세지요. 
권위주의 시절엔 노동조합의 활동 범위나 쟁의 행위에 대한 규율이 중요했어요. 하지만 민주화 이후엔 노조 활동이나 쟁의행위가 자유로워지면서 집단 노사관계보다는 개별 간 분쟁이 늘어나게 됩니다.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지요. 지금 노동위원회가 다루는 사건은 대부분 개인 사건이에요. 취약계층 근로자들의 해고나 차별에 관련된 내용이 많습니다. 최근엔 직장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등 고도의 프라이버시를 요구하는 문제들이 많이 들어와요.  사실 이런 사건들은 직장내 고충처리반이 있어도 당사자 입장에선 별 실효성을 못 느껴요. 문제를 제기할 경우 자신이 부메랑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죠. 직장인들로선 문제를 조용히 처리하고 싶을때 노동위원회를 활용하면 됩니다.  

노동위원회가 일반 직장인들의 고충처리반 역할을 해주는 셈이군요. 
직장인, 특히 노조가 없는 직장인이라면 이런 문제를 조용히 해결해 주는 기관이 필요하겠죠. 노동위원회에는 해당 사안별로 처리절차와 기준이 있습니다. 그에 따라 사업주에게 어떤 조치를 취할지 명확히 알려주면 조용히 끝낼 수 있는 사건들이 많아요. 그런데 사건을 법원으로 가져가서 해결하려면 모두 힘들어집니다. 이런 면에서 노동위원회는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90%의 노동자들을 위한 기구입니다. 노동쟁의에 관련된 집단분쟁 해결을 위해 출발한 노동위원회가 앞으로는 이들의 서비스센터로 역할을 확대하는 거죠. 

기존 노동단체에도 영향을 미치겠군요.   
노동조합의 대전제는 사회적 책임이에요. 헌법에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준 만큼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어려운 근로자들을 위해 낮은 곳으로 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노조는 대기업 공기업 등 상위 10%만을 위한 특권노조 아닌가요. 일반 근로자 대부분이 노동조합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만큼 정부, 특히 노동위원회가 역할을 대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 근로자에게 상위 10% 근로자들이 누리는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기본권에 충실하지 못한 셈이에요.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사진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김 위원장은...
△1956년 부산 출생 △경동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아이오와대 경제학 석·박사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위원장 △경사노위 임금근로시간제 개선위원회 위원장 △ 22대 한국노동경제학회장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현)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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