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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에도 90년대생들이 온다 ②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2000년대 1기신도시, ‘중산층 선호도시’로 발돋움
‘베드타운’ 부작용 생겨

분당신도시 내 정자동 카페거리 모습 [사진 분당구청]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외환위기 이전까지 우리나라 가계의 주택마련 방식은 저축이었다. 당시엔 은행대출이 어렵기도 했고, 이자도 높았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1기 신도시 주택소유자의 인식조사’ 설문과 2013년 내놓은 ‘고도성장기에 계획된 한일 수도권 교외 신도시의 성장과정 비교연구’ 속 통계에 이 같은 내용이 잘 나타나있다.

1기 신도시 초기입주자는 30~40대 가구주와 그 자녀세대로 구성된 가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이들 가구 중 서울에서 이주한 비율이 3분의 2(분당 69%, 일산 65.9%) 가까이나 됐다고 한다. 이들의 주택구입목적은 69.7%가 ‘실거주’였으며 주택구입자금 조달방식을 묻는 질문에는 70%가 ‘본인이 모아둔 저축’이라고 응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축한 돈으로만 집을 산다는 게 상상이 안 갈 것이다. 

유추해 보면, 이들은 서울에서 전세 또는 자가 소유를 했을 가능성이 높고, 상대적으로 서울보다 집값이 저렴했을 신도시로 이주하는데 그 자본(전세보증금, 또는 기존 주택 매각자금)이 주요한 자금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집을 담보로 한 대출이 적거나 거의 없는 요즘말로 ‘풀(full) 소유’였다. 

IMF 외환위기, 중산층의 버팀목 된 아파트

그러나 이들은 신도시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뒤 채 10년이 되지 않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이 시기는 많은 게 무너지고 사라졌다. 기업과 일자리가 사라졌고, 고용시장에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일어났다. 집값, 전셋값이 하락했으며, 지금처럼 명예퇴직금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일자리와 소득이 단절된 가장이 그래도 버틸 만 했던 배경에는 온전히 풀 소유 했던 내 집 한 채가 있었다. 이 당시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 자영업에 뛰어든 40-50대가 많았는데 이들의 사업초기 자금은 자신들이 소유한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이나 융자였다.

다행히 1999년 하반기부터 빠르게 금리가 내려갔고, 은행의 대출대상이 기업에서 가계로 전환되면서 가계들의 자금동원 능력이 크게 높아졌다. 이때 가계대출에서 금리가 가장 저렴한 대출은 단연 주택담보대출이었는데 2000년대 초부터 자기 집을 담보로 대출을 얻어 사업자금이나 가계운영자금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게 됐다. 일부는 자가에서 전세로 하향이동하면서 그 차액을 사업자금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요즘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대출이 적었던 자가 주택 덕분에 이들은 외환위기 이후에도 중산층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계획도시가 가져다 준 삶의 질과 주거문화

1기 신도시지역에 가보면 간혹 동네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계획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다보니 모습이 다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단지마다 배치된 상가나 대로변 상업용지에 조성된 상가건물들도 서로 매우 유사하다.

그럼에도 준공 후 15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에는 주거만족도가 매우 높아 1기 신도시는 중산층이 선호하는 주거지로 자리 잡았다. ‘천당 밑에 분당’, ‘천하제일 일산’이라는 명칭은 모두 이때 만들어졌다. 일산 백석고, 분당 서현고 등 고교평준화 이전 신도시 내 명문고는 대학진학율이 높아 유명 학군지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지금은 신도시 내 상가 공실율이 높지만 그때만 해도 대로변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상업시설에 학원, 병원, 대형 사우나와 뷔페, 예식장, 운동시설, 쇼핑센터 등등 없는 게 없었다. 집 앞을 나서면 공원길이 있었고, 호수공원이나 중앙공원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대형 근린공원이 신도시 중앙에서 ‘도시의 허파’가 돼 주었다. 

이 같은 1기신도시들은 서울에서 반경 30㎞ 떨어져 있었지만 서울까지 출퇴근도 지금보다는 덜 힘들었다. 적어도 1기 신도시와 서울 사이의 그린벨트를 대거 해제해 추가신도시를 조성하고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1기 신도시 주택소유자 대상 설문조사에 의하면 2005년 이전까지 1기 신도시에 거주한 이유로 직장 및 통근(28%), 도시공원과 녹지환경(20%)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이는 그나마 서울로의 출퇴근이 견딜 만했으며, 주거지 주변의 풍부한 녹지공간에 대한 주민 만족도가 높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임승차한 난개발에 위기 맞은 1기신도시  

그러나 광역교통망 구축은 입주초기에 이뤄지지 못했다. 당초 1기 신도시를 워낙 급하게 추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기 신도시를 위해 건설된 광역교통시설이 이제 완공되려는 즈음, 이에 무임승차한 연접개발들이 급격히 이뤄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연접개발이 1기 신도시보다 계획적 측면에서 진일보하지 못하고 후퇴했다는 점이다. 한 예로 1기 신도시에선 상하수도는 물론 통신시설들을 공동구로 모두 지하화 시켰는데, 연접지역을 개발할 때는 비용절감을 위해 공동구를 설치하지 않고 전봇대를 설치하거나 공원이나 녹지공간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1기 신도시보다 주거환경이나 인프라 수준이 떨어진 난개발 형태가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당연히 광역교통시설에도 과부하가 걸렸다. 서울 집값이 오를 때마다 정부는 경기도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농지나 산지를 택지로 전환해 추가신도시를 건설해야 했다. 이 같은 신도시는 결국 비싼 집값에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수용하는 베드타운으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수도권정비법과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수도권에는 기업유치도, 대학설립도, 공장증설에도 많은 제한이 따른다. 그러나 아파트를 건설해야 할 때만 늘 1순위 후보지가 돼 버렸다. 당연히 직장이 있는 곳까지 출퇴근 거리는 길어지고, 늦어지고, 이로 인해 유발되는 환경오염 역시 더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살기 좋던 신도시의 매력과 경쟁력이 점차 힘을 잃어가던 중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다음 편에 계속)


필자는…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은 현재 경기도 고양정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이자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도시계획학 박사인 그는 정치권에서 손꼽히는 부동산 전문가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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