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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에서 가상자산 업계가 배워야 할 점

[코인판 울리는 증권성] ③ STO, ICO와 다르게 법·당국 관리 아래 진행
코인업계, 안전 규제·투자자 보호 흐름에 적응해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김동환 원더프레임 대표] 최근 금융당국이 ‘토큰증권 발행’(STO)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시장이 들썩거리고 있다. 특히 증권업계는 이번에야 말로 뭐라도 해보자는 분위기다. 규제 때문에 손도 못 대던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을 증권사의 새로운 먹거리로 삼아보자는 것이다. KB증권,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 NH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이 대부분 뛰어들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 2월 국내 토큰증권 시장 규모가 2030년에 367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토큰증권은 부동산이나 금융자산 같은 실물이나 무형의 권리를 블록체인 기반 토큰에 연동해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전에는 증권화할 수 없었던 것들을 투자계약 증권의 형태로 만들어 판매할 수 있고, 기존 증권에 비해 자금 조달이 쉬워진다. 가령 아이돌 가수를 육성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신규 아이돌을 육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토큰증권을 만들어 판매하면 아이돌 그룹 런칭에 필요한 자금을 미리 시장에서 당겨올 수 있게 된다. 

토큰증권을 전통 금융의 새로운 먹거리로 보는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시각이 아니다. 글로벌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 “증권의 토큰화가 차세대 증권 시장을 이끌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세계적 흐름을 봤을 때, 형태와 시점의 문제일 뿐 토큰증권은 어떻게든 결국 우리 생활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사실 가상자산 투자를 오래 해온 사람들에게 토큰증권은 매우 익숙한 개념이다. 과거 가상자산 시장에서 성행했던 토큰시장공개(ICO)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둘 다 기본적으로 토큰 판매를 이용한 투자 방법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른 점은 ICO는 비교적 법적 제약에서 자유로웠던 반면, STO는 처음부터 끝까지 증권 관련 현행법과 금융당국의 관리 틀 안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과거 ICO는 자유롭게 진행됐다. 일부 거래소들은 자신들이 발행한 토큰을 유통시키며 시장 조성까지 하기도 했다. 이런 환경들은 ICO의 기록적인 흥행과 함께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를 낳았다. 대표적인 것이 사기다. 2018년 6월 말 기준 글로벌 ICO 누적액은 약 137억 달러(한화 17조8000억원)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 투자는 대부분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디지털 금융 투자사인 사티스 그룹(Satis Group)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ICO 1500개 중 78% 정도가 사기로 분류됐다. 

지난해 11월에는 글로벌 거래량 2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FTX가 부실 문제로 미국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다. 이들은 FTT라는 거래소 코인을 자체 발행하고, 자회사를 이용해 FTT 담보 대출을 반복해서 받는 식으로 과도한 레버리지를 사용하다가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며 한순간에 무너졌다. 유통 과정에서 FTX 거래소가 자회사와 함께 FTT 코인 가격을 조작한 정황도 드러났다. 업계에서 그동안 토큰을 만들어 팔고 유통해왔던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가 총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금융위에서 발표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토큰증권 시장은 이런 일들이 원천적으로 발생하기 어렵게 설계돼 있다. 우선 아무나 발행할 수가 없다. 기초자산을 직접 보유하고 있더라도 법에서 정하는 발행인계좌관리기관의 요건을 충족해야만 토큰증권 발행이 가능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기자본이 없다면 전문적으로 토큰증권 발행을 대행해주는 발행 사업자를 이용해야 한다. 

발행 사업자와 유통 사업자의 겸업도 금지다. 토큰을 발행한 자가 유통까지 맡으면 FTX 거래소처럼 이해 상충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통 사업자가 자신이 구매했거나 발행을 주선했던 토큰증권을 유통시키는 행위도 제한된다.

블록체인은 오직 프라이빗 블록체인만 사용 가능하다. 블록체인의 운영 역시 대부분 정부의 자격 요건을 통과한 기관들이 맡는다. 퍼블릭 블록체인을 사용할 경우 혹시 생길지 모르는 하드포크(블록체인이 두 갈래로 나눠지는 것)의 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한 마디로 ICO에서 투자자가 입을 수 있었던 피해들을 최대한 방지하고 토큰으로 권리를 거래하는 기능만 살려놓은 게 토큰증권인 셈이다. 

시장의 관심사는 토큰증권의 흥행 여부에 쏠려 있다. 과거 ICO 펀딩의 성공에는 규제가 없는 암호화폐 시장의 높은 유동성과 변동성이 주효하게 작용했었다. 하지만 토큰증권의 경우에는 시작부터 제약이 많다 보니 현실적으로 활발한 거래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 활성화를 위해서는 유동성과 거래 편의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가이드라인이 나온 후 금융업계에서 금융투자협회의 대체거래소(ATS)를 활용해 토큰증권 거래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장기적으로는 토큰증권 마켓메이커의 역할과 합법적인 범위도 규정돼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토큰증권이 국내 가상자산 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국내 가상자산 기업들은 당장의 토큰증권 흥행 여부를 떠나서 왜 이 물건이 지금 나오는지 본질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미 가상자산 시장은 세계가 하나의 층위로 연결돼 있고, 요즘의 트렌드는 가상자산을 안전하게 규제해 투자자를 보호하면서 사회에 생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흐름에 적응해야 할 시간이다.

필자는…
2017년부터 언론인의 시선으로 크립토 업계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코인데스크코리아와 블리츠랩스를 거쳐 현재는 블록체인 컨설팅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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