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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지켜온 LG家 ‘장자 승계’ 원칙 흔들리나

[막오른 LG家 상속 분쟁]②
LIG‧LS 등 경영권 승계 때마다 계열 분리
“분쟁보단 합의 가능성”…그룹 내 여성 경영인 나올까

서울 여의도 LG 트윈타워.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창훈 기자]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배우자와 두 딸이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법원에 상속 회복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LG그룹 경영권을 둔 이른바 ‘상속 분쟁’이 벌어지는 초유의 상황이 연출됐다. LG가(家) 세 모녀가 LG그룹 장자로서 경영권을 물려받은 구광모 회장의 LG 지분 상속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75년간 유지돼온 장자 승계 원칙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재계 안팎에선 “LG그룹이 상속 분쟁에 휘말리긴 했지만, 분쟁에 따른 LG 지분 구조 변동보단 본격적인 분쟁 전 합의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다. 하지만 “합의 과정에서 고 구본무 전 회장의 두 딸의 경영 참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소송을 제기한 세 모녀가 ‘법정 상속 비율을 따르자’고 요구하고 있는 만큼, 최악의 상황 땐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재계 등에 따르면 고 구본무 전 회장의 배우자인 김영식 여사와 자녀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씨는 2018년 구본무 전 회장 별세 이후 이뤄진 재산 분할을 다시 하자고 요구하며 서울서부지법에 구 회장을 상대로 상속 회복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김 여사 측은 고 구본무 전 회장의 LG 지분 상속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고, 법정 상속 비율에 따라 지분 상속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여사 측의 주장대로 법정 상속 비율을 따를 경우 LG 지분 구조는 크게 달라진다. 고 구본무 전 회장의 배우자인 김영식 여사가 1.5, 나머지 자녀가 각각 1의 비율로 고인 지분을 물려받으면, 세 모녀의 LG 지분 총합은 14.09%로 늘어난다. 반면 구광모 회장의 LG 지분율은 15.95%(지난해 3분기 말 기준)에서 10% 밑으로 줄어든다.  

‘人和’의 LG家, 장자 승계 75년史 

고 구인회 창업자가 1947년 현 LG화학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을 설립한 이후 75년간 LG그룹은 경영권 분쟁은커녕 재산 관련 분쟁도 겪지 않았다. 인화(人和)를 중시하는 LG가 특유의 문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장자 승계 원칙이 유지돼온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LG그룹 경영권을 장자가 승계한다는 원칙에 따라 나머지 LG가 사람들은 계열 분리를 꾀해 독립 경영의 길을 걸었다. 여기에 국내 주요 그룹 가운데 일찌감치 지주사 체제를 도입한 것도 경영권 분쟁 잡음이 없었던 이유로 거론된다. 그룹 지배구조 정점인 지주사가 계열사를 거느리는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다른 그룹보다 비교적 손쉽게 경영권 승계가 이뤄졌다는 진단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구광모 회장에 대한 상속 분쟁은 상속 재산 규모를 둘러싼 단순 분쟁이 아니라, 여성들이 그간 LG그룹을 지탱해온 장자 승계에 반기를 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LG그룹 경영권은 고 구인회 창업자에서 고 구자경 명예회장으로, 고 구본무 전 회장에서 구광모 회장으로 승계됐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LG가 기업인은 계열 분리를 꾀했다. 공교롭게도 LG그룹 내에서 첫 계열 분리에 나선 인물은 고 구본무 전 회장의 첫째 남동생이자 구광모 회장의 친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다. LG가 3세가 계열 분리에 나선 이후 항렬이 높은 1세대와 2세대에서도 독립에 나선 경영인들이 등장했다. 고 구인회 창업자의 첫째 남동생인 고 구철회 회장이 LG화재, LG정밀 등을 계열 분리해 LIG그룹을 출범시켰다. 고 구인회 창업자의 넷째 아들인 구자두 회장은 LG벤처투자(현 LB인베스트먼트)를 기반으로 LB그룹을 탄생시켰다. 구자두 회장의 형인 구자학 회장도 같은 해 LG유통(현 GS리테일) 식품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아워홈을 만들었다. 

고 구인회 회장의 동생인 고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회장은 LS그룹을 꾸렸다. 2003년 LG전선(현 LS전선) 등을 떼어 독자 행보를 걸었다. 고 구인회 회장의 손자인 구본걸 회장은 LG패션 등을 계열 분리해 LF그룹을 출범시켰다. 가장 최근인 2021년엔 구본준 LX그룹 회장이 상사와 하우시스, 판토스 등을 거느린 LX그룹을 만들었다. 독립 경영을 위해 구본준 회장은 4% 넘는 LG 지분을 매각했고, 구광모 회장 측이 보유한 LX홀딩스 지분 32.32%를 매수하는 등 지분 정리에 나섰다. 재계 관계자는 “그간 LG그룹 성장에 기여한 공로와 별개로, LG가 사람들 모두가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계열 분리를 택했다”며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가장 젊은 총수인 구광모 회장이 취임했을 때, 7% 이상의 LG 지분을 갖고 그룹 내 신망이 두터운 구본준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독립 경영을 준비한 것도 장자 승계를 유지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고 고본무 전 회장의 LG 지분 상속 과정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한 LG가 사람들은 모두 여성이다. 결과적으로 75년간 이어진 장자 승계 원칙에 반기를 든 인물이 여성이란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표면상으론 소송을 제기한 김 여사 측이 상속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법적 상속 비율의 지분 상속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구광모 회장을 대신해 LG그룹을 경영하려는 의도는 없겠지만, 사실상 LG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있는 김 여사의 두 딸이 경영 참여를 꾀하려는 목적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주요 그룹 중에서 상대적으로 남성 경영인 위주인 LG그룹 문화에 대한 반발일 수 있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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