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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발판’ 지주사 꿈꾸는 철강업계 종가

[‘중꺾마’로 위기 극복…장신(長新) 기업을 찾아서]⑥-동국제강
韓 최초 민간 철강사…“생존 위해 꿈도 포기”
단단한 ‘형제 경영’…재도약 ‘시동’

이코노미스트 데이터랩(Data Lab)은 지난 2월 '111클럽' 기획을 발표한 바 있다. 데이터랩의 두 번째 기획은 국내 매출 상위 2000대 상장사 중 올해 기준으로 60년 전통을 가진 기업 177곳 중 (2021년 기준) 연 매출 5000억원, 영업이익 500억원 이상을 기록한 상위 10%의 기업을 선정하는 것이다. 총 46곳의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변화와 도전을 멈추지 않은 한국경제의 주역들이다. 이코노미스트 데이터랩은 이 기업을 '장수(長壽) 기업' 대신 '장신(長新)' 기업이라 이름 붙였다. [편집자]

동국제강 포항공장 전경. [사진 동국제강]

[이코노미스트 이창훈 기자] 국내 철강업계의 종가(宗家)로 평가받는 동국제강은 국내 최초 와이어로드(신선재) 생산을 비롯해 국내 최초 고로‧전기로 가동 등 ‘최초’란 수식어와 함께 한국 철강 산업 도약을 이끌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중국발(發) 철강 제품 공급 과잉 등 통제 불가능한 악재에 직면한 이후엔 생존을 위한 분투를 이어갔다. 재무 개선을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물론 고(故) 장경호 창업자 때부터 꿈꿔온 일관제철소(제선·제강·압연 등 세 공정을 모두 갖춘 제철소)를 포기하는 등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7000억원이 넘는 연간 영업이익, 두 자릿수 부채비율 등 안정기에 진입한 동국제강은 지주사 체제 전환을 통해 재도약한다는 포부다. 그룹 컨트롤타워와 철강 사업을 분리해 각 사업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1986년 3월 국내 최초 동국제강 전기 아연 도금 강판 라인 가동 모습. [사진 동국제강]

창립 70주년 앞둔 동국제강 생존기 

내년 창립 70주년을 맞는 동국제강의 역사는 ‘도약과 생존’이란 두 단어로 압축된다. 고 장경호 창업자가 1954년 설립한 동국제강은 우리 철강 산업과 함께 도약했다. 국내서 처음으로 와이어로드를 생산하고, 1963년 부산 용호동에 약 73만㎡ 대지에 철강 제품 생산 공장을 구축하는 등 외연을 확장했다. 국내 최초로 전기로 가동‧후판 및 컬러강판 생산 등 한국 철강 산업의 첫발이었다. 회사 노동조합이 1994년 ‘항구적 무파업’을 선언하는 등 일찌감치 ‘노사 화합’ 문화도 정착시켰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초기 동국제강을 이끌어온 고 장경호‧장상태 부자(父子)는 한국 철강 산업 발전의 산증인”이라고 평가했다. 

장세주 회장이 2001년 취임한 이후 동국제강은 철강 사업 고도화에 집중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과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만큼, 노후 설비를 개선과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제품 경쟁력을 통한 차별화 전략을 꾀한 것이다. 2009년 최첨단 시험 장비를 갖춘 중앙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개발 인재를 대거 영입했다. 철근 주력 생산기지인 인천제강소의 노후 설비는 고효율‧저탄소 설비로 교체했다. 2011년엔 컬러강판 브랜드 ‘럭스틸’을 출시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동국제강의 컬러강판의 시작이었다. 

1972년 국내 최초 동국제강 컬러강판 생산 모습. [사진 동국제강]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 더해 중국의 철강 제품 공급 과잉까지 겹치면서, 동국제강의 재무 상황이 악화한 것이다. 급기야 2014년엔 KDB산업은행과 재무 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했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15년 열연 사업을 영위하던 동국제강과 냉연 사업을 맡고 있던 유니온스틸을 통합했다. 동국제강의 상징이었던 본사 페럼타워 매각에 나서는 등 뼈아프지만 생존을 위한 결정을 이어갔다. 이른바 ‘내실 다지기’로 표현된 경영 전략을 흔들림 없이 추진했고, 약정 체결 2년 만인 2016년에 조기 졸업했다. 

동국제강은 약정 체결 졸업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재무 개선을 꾀했다. 지난해엔 고 장경호 창업자 때부터 3대째 꿈꿔온 일관제철소도 포기했다. 지난해 이사회를 열어 브라질 CSP 제철소 보유 지분 전량(30%)을 글로벌 철강사 아르셀로미탈에 매각하기로 전격 결정한 것이다. 올해 8686억원에 매각을 완료했다. 고 장경호 창업자와 장세주 회장에 이르기까지 3대가 염원해온 일관제철소의 꿈을 실현한 브라질 CSP 제철소를 과감하게 정리한 것이다.

중국 법인(DKSC) 지분 정리 등 사업 구조 재편을 이어갔고, 지난해 3분기 말 별도기준으로 부채비율을 90.3%까지 낮췄다. 2015년 부채비율(136.7%)보다 46.4%p 개선해 두 자릿수 부채비율을 달성한 것이다. 2016년 투기 등급 수준(BB)까지 하락한 신용 등급도 상승했다. 2022년 11월 국내 주요 신용평가사는 동국제강 신용 등급을 BBB+(안정적)로 상향 조정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사진 동국제강]

‘경영 정상화’ 동국제강, 지주사 체제로 ‘재도약’

동국제강은 그간 위험 요소로 거론돼온 재무 구조를 사실상 정상화하고,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지난 8년간의 사업 구조 재편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이사회를 열어 존속법인 동국홀딩스(가칭)와 열연과 냉연 사업을 영위하는 신설법인 동국제강(가칭), 동국씨엠(가칭)으로 분리하는 인적 분할(기존 주주 구성을 유지하는 분할 방식) 계획서 승인의 건을 의결했다. 오는 5월 12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인적 분할을 확정할 계획인데, 동국홀딩스는 분할 후 공개매수 방식의 현물 출자 유상증자를 단행, 지주사로 전환된다. 임시 주총에선 장세주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도 다뤄질 예정이라, 장 회장과 그의 동생인 장세욱 부회장의 이른바 ‘형제 경영’에도 관심이 쏠린다. 장 회장과 장 부회장의 우애가 두터워 지주사 체제에서 형제 경영이 빛을 발할지 주목된다. 

구체적으론 그룹의 전략적 컨트롤타워인 동국홀딩스가 열연 사업의 동국제강, 냉연 사업의 동국씨엠을 거느리는 구조다. 지주사인 동국홀딩스는 경영 효율화, 신사업 발굴 등 그룹의 미래 방향성에 관한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린다. 또한 지배 구조와 경영 투명성을 높여 주주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신설법인 동국제강은 철 스크랩 재활용 전기로 제강 사업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할 계획이다. 신설법인 동국씨엠은 컬러강판 사업의 전문화를 꾀한다. 2030년까지 컬러강판 사업 연간 매출액 2조원 등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컬러강판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철강업계 안팎에선 “컨트롤타워와 철강 사업 분리로 각 사업 전문성이 강화돼 그간 저평가돼온 철강 사업 가치가 상승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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