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위기 극복하고 K-반도체 중심에 서다
[‘중꺾마’로 위기 극복…장신(長新) 기업을 찾아서]③-SK하이닉스
위기를 기회로 바꿔 메모리 강자로 도약
이코노미스트 데이터랩(Data Lab)은 지난 2월 '111클럽' 기획을 발표한 바 있다. 데이터랩의 두 번째 기획은 국내 매출 상위 2000대 상장사 중 올해 기준으로 60년 전통을 가진 기업 177곳 중 (2021년 기준) 연 매출 5000억원, 영업이익 500억원 이상을 기록한 상위 10%의 기업을 선정하는 것이다. 총 46곳의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변화와 도전을 멈추지 않은 한국경제의 주역들이다. 이코노미스트 데이터랩은 이 기업을 '장수(長壽) 기업' 대신 '장신(長新)' 기업이라 이름 붙였다. [편집자]
[이코노미스트 이건엄 기자]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SK하이닉스가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장신(長新) 기업에 포함됐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함께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끌며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전신인 현대전자부터 SK 품에 안기기까지 위기와 극복을 반복하는 등 다사다난했지만 현재는 K-반도체 중심에서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D램 중심의 사업구조 덕분에 호황기에는 연간 12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2021년에 영업이익 12조1833억원을 기록해 전년(4조5458억원)과 비교하면 168%가 급증했다. 매출은 41조5573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36.1% 증가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19)이 절정을 맞으며 비대면 서비스 수요 역시 최고조에 달했고 아마존과 페이스북 등 빅테크 업체들이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를 대대적으로 사들인 게 호재로 작용했다.
반도체 가능성 알아본 현대전자
SK하이닉스의 실질적인 전신은 지난 1983년 출범한 현대전자다. 법적인 모태는 지난 1949년 설립된 국도건설이지만 현재의 전자업을 영위한 시점이 현대전자가 출범한 이후기 때문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1981년 12월 그룹 종합기획실에 별도의 신규사업팀을 만들고 전자사업 기초조사에 착수했다. 정 창업주는 2년 후 1983년 1월 전자사업팀을 공식 발족시키고 이천군 부발면에 있는 국도건설 소유 부지를 공장부지로 선정한 뒤 국도건설의 상호를 현대전자산업으로 변경했다.
현대전자는 사업 초기 여타 전자업체들과 마찬가지로 가전을 취급하는 종합 가전회사였다. 하지만 가전시장의 경우 삼성전자와 금성사(現 LG전자), 대우전자 등 쟁쟁한 업체들이 이미 선점한 상황이었고, 정 창업주 역시 반도체 등 차별화된 사업 모델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현대전자는 컴퓨터와 반도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1985년부터 메모리 양산 체제에 들어가는 등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 진출한 현대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현재 SK하이닉스의 기반이 됐다.
현대전자의 이같은 전략은 초기에는 제대로 먹혀들며 승승장구했지만,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었다. 1998년 정부의 ‘빅 딜’ 정책 일환으로 LG반도체를 합병했으나 사업 전반이 흔들리며 현대그룹에 부담을 가중시켰다.
이 여파로 현대전자는 지난 2001년 하이닉스 반도체로 사명을 바꿨고, 메모리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부를 모두 분사시켰다. 이때 현대그룹에서도 분리되며 최대주주가 한국외환은행으로 바뀌었다.
하이닉스는 독립한 이후 10년 이상 부침을 겪었다. 계속되는 유동성 위기와 신규 투자 부족으로 점차 경쟁력을 잃었고, 업계에서 금기로 통하는 반도체 생산 기계 재사용이라는 도박수까지 두며 암흑기를 보냈다. 다만 반도체 생산 기계 재사용은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과를 낼 수 있었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SK 등에 업고 비상
위기와 극복을 반복하던 SK하이닉스가 본격적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12년 하이닉스를 인수한 SK그룹의 역할이 컸다. 실제 SK하이닉스의 지난 10년은 과거의 10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사실상 D램만으로 회사를 지탱했던 과거와 달리 SK그룹에 편입된 이후 낸드플래시는 물론 반도체 설계와 위탁생산(파운드리) 등 종합반도체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는 SK하이닉스가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위용에서 잘 드러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용인일반산업단지가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고당·죽능리 일원 415만㎡에 차세대 메모리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SK하이닉스는 이곳에 약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SK하이닉스 외에도 50여 개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입주하게 된다.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외에도 인텔의 낸드사업부를 인수해 솔리다임을 설립했고, 국내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키파운드리를 인수하면서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이는 SK하이닉스가 D램 중심의 메모리 업체가 아닌 ‘종합반도체’ 기업으로서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공고히 하는데 훌륭한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20년 10월 인텔 낸드사업부를 90억 달러(약 10조3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뒤 8개국에서 승인 절차를 받아왔다. 우선적으로 인텔에 70억 달러를 지불하고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사업과 중국 다롄 공장 자산을 확보한 뒤 오는 2025년 3월 20억 달러를 지급해 낸드 웨이퍼 설계·생산 관련 IP, 다롄 공장 운영 인력 등을 넘겨받을 예정이다. 지난 2021년에는 LG반도체 계열 미국 파운드리 업체 '키파운드리'를 5800억 원에 인수했다. 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 사업 확대를 공언한 지 5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솔리다임은 기존 SK하이닉스의 낸드사업과 시너지를 통해 세계 점유율 2위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키파운드리 역시 SK하이닉스시스템IC와 연계를 통해 회사의 파운드리 생산능력(CAPA, 캐파)을 2배 가까이 끌어올렸다. 현재 SK하이닉스시스템IC와 키파운드리의 8인치 파운드리 캐파는 각각 월 10만장, 9만장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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