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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필지 소유자만 수십 명…진화하는 기획부동산 수법

[부동산 투자 주의보] ① 개발호재 미끼로 ‘쪼개 팔기’ 성행, 피해복구 어려워
소비자 ‘스마트’해지면서 변형 기획 출몰

경기도는 경기도 용인시 수정구 상적동 임야에서 발생한 '지분쪼개기' 방식 기획부동산을 비롯해 비슷한 행위를 지속 적발하고 있다. [사진 경기도]

[이코노미스트 민보름 기자] “원수에게만 권하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피해자에게 작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피해를 발생시키는 부동산 투자 권유 행위가 국내에선 오랫동안 활개를 쳤다. 주로 토지 거래에 집중된 일명 ‘기획부동산’과 일부 성공사례가 있지만 피해사례 역시 다수인 ‘지역주택조합’, 최근 몇 년간 제주도 등 관광객이 집중된 지역에서 특정 수익률을 약속하며 수분양자를 찾는 ‘분양형 호텔’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기획부동산은 수십 년 간 업계에서 악명을 떨쳐왔다. 기획부동산의 주요 거래 대상은 토지다. 토지는 지역 개발계획 발표에 따라 수십배 수익을 얻을 수도 있는 일명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상품으로 택지개발 사업이 급성장했던 국내에서 오랫동안 투기 대상이 됐다. 가치가 낮은 땅을 향후 개발호재로 땅값이 오르거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부지라고 속여 피해자들에게 비싼 가격에 넘기는 방식이 기획부동산의 가장 일반적인 수법으로 알려져 있다. 

‘이코노미스트’ 취재에 따르면 정부는 10년 넘게 이 같은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시행했으나 기획부동산 업체들은 여전히 교묘하게 수법을 바꿔가며 여전히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헐값에 산 땅, 고가에 쪼개 팔아 

최근 법원 경매에서 경기도 토지의 일부 지분을 낙찰 받은 A씨(40대, 자영업)는 법원에 공유물분할청구소송을 진행했다. 토지의 작은 지분만을 가지고는 해당 토지를 매도하거나 개발행위를 할 수 없었기에 공유물분할 신청을 통해 다른 소유주들의 지분까지 한꺼번에 매각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에서도 공유물분할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한 필지의 지분 소유자만 100명에 육박했기에 법원에서도 이들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가 낙찰 받은 토지 지분의 원래 소유주는 바로 기획부동산 피해자였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지분이 여러명 소유로 쪼개져 있어도 법적 절차를 통해 해당 토지를 분할하거나 매각하는 방법이 있으나 기획부동산 피해자들은 자포자기 심리로 포기한 경우가 많아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씨가 경험한 사례처럼 상당수 기획부동산 업체들은 이처럼 토지를 ‘쪼개기’하는 방식으로 매각한다. 이들은 통상 호재가 있는 지역 내 보전산지 등 개발이 제한된 임야나 개발지역과 가깝지만 개발수요가 없어 땅값이 싼 동네 토지를 헐값에 사들이는 작업을 시작한다. 과거에는 이렇게 사들인 부지를 작게 분할해 광고나 텔레마케터를 통해 모집한 투자자 여러 명에게 매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주로 경기도 농지를 대상으로 속칭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재개발부터 직원모집까지, 수법 고도화

이 같은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는 2011년 ‘측량·수로조사 및 지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관계법령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토지분할이 가능하도록 했다. 정부 규제로 기존의 토지 분할 방식이 사실상 막히자 기획부동산 업체들은 지분 매입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수십에서 수백명에게 매도하는 수법을 쓰기 시작했다. 10여년 전부터 ‘동계올림픽’ 호재 전후로 강원도 평창 지역에 이 같은 ‘지분 팔기’가 성행한 바 있고 최근 몇년 전부터는 제주도 토지를 사들인 피해자가 급증했다. 

그러나 업체의 사기행위를 입증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해 2월 서울북부지법에선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임야를 공유지분 형태로 1만 명에게 팔아 1300억원 차익을 거둬 사기혐의로 기소된 기획부동산 대표와 지사장 등 4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이들이 방문판매원들에게 실적압박을 주며 경쟁을 유도했으나 판매원들로 하여금 피해자들을 속이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최근에는 방식이 더욱 교묘해지는 추세다. 비슷한 수법이 만연하면서 투자자들 역시 영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기획부동산들은 ‘맘카페’와 취업준비생 등을 대상으로 영업사원을 모집한 뒤 새 사원과 그들의 지인을 대상으로 토지를 매입하도록 부추기는 ‘다단계 판매’ 방식의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대상이 토지에서 도심 부동산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특정 지역에 재개발이 추진된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면서 저렴하게 사들인 연립이나 다세대 주택을 고가에 파는 사례도 나온다. 

업계에선 수도권 토지시세가 오르고 그린벨트 해제 사례가 나오면서 농지나 임야를 주로 거래하던 기획부동산이 다른 투자대상을 찾는 사례가 더욱 늘 것으로 전망한다.

한 경기도 광주시 부동산 관계자는 “얼마 전 광주에도 기획부동산 업체 하나가 들어왔으나 땅값이 너무 올라 작업할 토지가 없다고 봤는지 몇 달 만에 사라졌다”면서 “토지주들이 수도권 토지가격은 당연히 오를 것으로 봐서 예전처럼 매수인이 나타난다고 해서 헐값에 넘기는 경우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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