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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은행들은 어쩌다 VC에 꽂혔나 [허지은의 주스통]

최근 5년간 8개 금융지주 VC 확보
비은행 강화 일환…신사업 활로 모색
지주사 자금력 동원, 기존 VC들 ‘긴장’

주식 시장에선 오가는 돈 만큼이나 수없이 많은 뉴스가 생겨납니다. 한국의 월스트리트,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인 여의도 증권가와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2400여개 상장사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허지은의 주스통’(주식·스톡·통신)에서 국내 증시와 금융투자업계 안팎의 다양한 소식을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우리금융지주가 다올인베스트먼트 인수를 마무리하면서 국내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가 모두 계열 벤처캐피털(VC)을 보유하게 됐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마켓in 허지은 기자] 국내 금융지주사들이 앞다퉈 벤처캐피털(VC)을 설립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매물로 나온 1세대 VC 다올인베스트먼트가 우리금융지주 품에 안긴 것을 비롯해, 최근 5년간 7개 금융지주사가 계열 VC를 인수·설립하고 나섰습니다. 2017년까지만 해도 금융지주 계열 VC는 KB인베스트먼트 하나 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VC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보수적인 은행들이 어쩌다 VC에 꽂히게 됐을까요?

지난달 우리금융지주가 다올인베스트먼트를 품에 안으면서 국내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는 모두 VC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우리금융은 다올인베 지분 52%를 2125억원에 사들였고, 다올인베는 지난달 23일 사명을 우리벤처파트너스로 변경해 새 출범했습니다. 이로써 국내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는 모두 VC를 보유하게 된 건데요. 

사실 2017년까지만 해도 국내 금융지주 계열 VC는 KB금융의 KB인베스트먼트가 유일했습니다. KB인베스트먼트는 1990년 납입자본금 100억원으로 설립된 장은창업투자가 모태로, KB금융지주 설립 이전부터 30년 넘는 기간동안 포트폴리오를 쌓아왔습니다. 2018년 하나금융지주가 자본금 300억원을 들여 하나벤처스를 설립했고 이듬해 NH농협금융 역시 자본금 300억원으로 NH벤처투자를 세웠습니다. 

나머지 금융지주들은 자체 설립 대신 인수합병(M&A)을 택했습니다. 2019년 BNK금융지주가 유큐아이파트너스를 인수해 BNK벤처투자를 세웠고, 2020년엔 신한금융지주의 네오플럭스(현 신한벤처투자) 인수, 2021년 DGB금융지주의 수림창업투자(현 하이투자파트너스) 인수, 지난해 JB금융지주의 메가인베스트먼트 인수 등이 잇따랐습니다. IBK기업은행 역시 지난해 8월 VC 설립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관련 논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VC는 문자 그대로 ‘모험 자본(Venture Capital)’을 뜻합니다. 신기술금융사, 창업투자회사, 엑셀러레이터(AC) 등 세분할 수 있지만 통칭 VC로 부르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기술력은 있으나 자금이 부족한 초기 창업 단계의 벤처기업에 자본금을 투자하고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으로 차익을 노리는 자본입니다. 위험부담은 크지만 성공 시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분야로 볼 수 있죠.

얼핏 보수적인 금융지주에게 VC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자본 덩치가 큰데다 각종 규제로 묶여있는 은행 특성상 초기 투자의 위험을 감수하기는 쉽지 않아서죠. 하지만 최근 핀테크·테크핀 등 디지털 발달과 더불어 은행들의 스타트업 투자 수요가 늘어나면서 VC 설립이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토스·카카오 등이 전통은행의 영역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신사업 발굴 기회가 많은 VC 수요가 커졌다는 겁니다. 

은행들의 비은행 강화 움직임도 한몫 했습니다. 아직까지 금융지주 실적의 대부분은 은행에 의존하고 있는데, 최근 몇 년간 증권·저축은행·보험·캐피털 등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지주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우리금융 역시 다올인베를 인수하면서 “비은행 부문 경쟁력 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종합금융그룹으로 나아가겠다”며 인수 배경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금융지주 계열 VC의 등장에 기존 VC들은 긴장하는 모양새입니다. VC는 출자자(LP)로부터 자금을 받아 투자하는데 은행은 연기금, 공제회와 함께 대표적인 LP 중 하나입니다. 계열 VC로 금융지주 자금이 흘러갈 경우 금융지주의 막대한 자금력에 힘입어 은행 계열 VC가 업계 판도를 뒤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금융지주 계열 VC들의 입장은 조금 다릅니다. 펀드를 집행할 때 은행·증권·캐피탈 등 금융지주 차원에서 자금을 모으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무조건 금융지주의 출자를 받아 투자를 집행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금융지주 계열 VC 중 신한벤처투자, NH벤처투자는 회사법인이 대주주인 CVC(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지만, 나머지는 자체 포트폴리오에 집중하는 등 회사마다 분위기도 다르다는 전언입니다. 

작년부터 VC업계의 자금줄은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금리 인상으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해지면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할 LP들의 보수적인 자금 집행으로 전체적인 VC업계도 휘청이고 있는데요. 금융지주가 설립·편입한 VC들이 어려운 시장 상황 속 업계 ‘메기’로 자리잡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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