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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셀리버리 나올까…‘성장성 특례’의 함정

[흔들리는 특례상장]①
상장 주관사가 보증하는 성장성 특례
적자기업 상장문턱 낮추려 도입됐지만
73%는 바이오 편중…재무악화 우려
외부평가 없이 상장, 주관사 역량 시험대

성장성 특례 1호 상장사 셀리버리가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면서 특례상장 제도의 전반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마켓in 허지은 기자] 성장성 특례 1호 상장사 셀리버리(268600)가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면서 해당 제도 자체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성장성 특례란 당장의 실적이 없는 회사여도 상장 주관을 맡은 증권사가 성장성을 담보하는 제도로, 현존하는 5개의 코스닥 특례상장 제도 중 문턱이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 제도로 증시에 입성한 대부분의 회사가 제약·바이오에 집중돼 있어 제2, 제3의 셀리버리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하고 있다. 

12일 이코노미스트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성장성 특례 상장으로 국내 증시에 입성한 상장사는 총 19곳이다. 2018년 11월 셀리버리를 시작으로 2019년 5곳(라닉스, 올리패스, 라파스, 신테카바이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2020년 7곳(제놀루션, 셀레믹스, 압타머사이언스, 이오플로우, 고바이오랩, 클리노믹스, 알체라), 2021년 5곳(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 진시스템, 레인보우로보틱스, 삼영에스앤씨, 원티드랩), 2022년 1곳(선바이오) 등이 이 제도를 활용해 증시에 입성했다. 

코스닥 특례상장 제도는 ▲기술특례 ▲이익미실현(테슬라 요건) 특례 ▲성장성 특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특례 ▲유니콘(시장평가 우수기업) 특례 등 크게 5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2005년 기술특례 제도 도입 이후 2017년 이익미실현·성장성 특례가 등장했고 2019년 소부장 특례, 2021년 유니콘 특례 제도가 신설됐다. 

가장 먼저 생긴 기술특례 상장은 예비 상장사의 기술성에 초점을 맞췄다. 거래소가 인증한 22개 전문 평가기관 중 2곳을 임의로 지정받아 1개 기관에서 A, 나머지 기관에서 BBB등급 이상의 기술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익미실현 특례와 유니콘 특례는 시가총액, 자기자본, 매출, 주가순자산비율(PBR) 등이 일정 수준을 넘는 경우 이 요건으로 상장이 가능하다. 

성장성 특례는 앞선 제도보다 성장성에 집중했다. 전문 평가기관의 기술 평가가 없어도 증권사가 거래소에 해당 기업에 대한 성장성 보고서를 제출하면 이를 토대로 특례 상장을 시켜주는 제도다. 이익미실현 특례처럼 재무제표나 경영성과 요건을 검토받을 필요도 없고, 유니콘 특례처럼 시총이나 기업가치가 높을 필요도 없다. 자기자본 10억원 이상, 자본잠식률 10% 미만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대신 성장성 특례는 상장 주관사가 성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할 경우 상장 심사 청구를 할 수 있다. 주관사의 책임이 막중한 만큼 상장 후 6개월간 주가 흐름이 부진할 경우 주관사가 공모가의 90% 가격으로 다시 사줘야하는 ‘풋백 옵션(환매청구권)’ 책임이 있다. 주관사의 부담은 있겠지만, 예비 상장사 입장에선 적절한 파트너만 만나면 어렵지 않다. 때문에 성장성 특례는 특례상장 요건 중 상장 문턱이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성장성 특례 도입 6년, 부실 우려 확산

2018년 11월 셀리버리가 성장성 특례 1호로 증시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시장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2014년 설립된 셀리버리는 파킨슨병, 췌장암 치료제 등 신약개발 회사로, 상장 후 주가가 꾸준히 우상향했다. 특히 2021년 1월 주가가 10만원을 뚫으며 공모가(2만5000원)의 4배로 치솟으며 성장성 특례 상장 제도의 기대감을 높였다. 당시 셀리버리 상장 주관을 맡은 DB금융투자는 셀리버리 상장 성공을 통해 ‘바이오 IPO 전문 하우스’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셀리버리의 성공 이후 성장성 특례는 바이오 상장사들의 주된 상장 창구가 됐다. 성장성 특례로 상장한 19개사 중 14곳(73.68%)은 신약개발·진단·헬스케어 등 제약·바이오사였다. 제도 초기였던 2018~2020년에는 13곳 중 11곳(84.61%)으로 바이오 편중 현상이 더 심했다. 바이오 기업은 신약 개발에 장기간 대규모 비용을 투입하는 만큼 ‘성장성 특례=바이오’라는 IPO 공식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셀리버리가 감사의견 거절을 받자 연쇄 부실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셀리버리는 신약개발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2021년 자회사 셀리버리 리빙앤헬스를 세우며 화장품, 물티슈, 마스크 등 신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지난해 영업손실 668억원, 당기순손실 751억원을 기록하는 등 재무상태가 급격히 악화하자 감사의견 거절로 매매 거래가 정지됐다. 한때 10만원을 넘겼던 주가는 현재 6680원에서 멈춰있다. 

대다수의 성장성 특례 상장사들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는 미래에셋증권의 주관으로 2021년 3월 성장성 특례로 상장했다. 상장 당시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는 2022년 매출 1300억원, 2025년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지만 지난해 실제 매출은 1600만원에 그쳤다. 의료기기 업체 라파스, 시스템반도체 설계업체 라닉스 역시 2022년 685억원, 486억원의 매출을 자신했지만 실제 매출은 236억원, 110억원에 그쳤다. 

주가도 공모가를 크게 밑돌고 있다. 2019년 12월 성장한 신약개발사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수요예측에서 공모가 6만원을 확정하며 증시에 입성했다. 그러나 주당 200% 무상증자 등을 거친 현재 주가는 9170원에 그친다. 압타머사이언스(2만5000→3915원), 올리패스(2만→4335원), 셀레믹스(2만→5280원), 클리노믹스(1만3900→8790원) 등도 마찬가지다. 

거래정지로 소액주주만 피눈물

증권가에선 성장성 특례로 상장한 기업들의 관리종목 지정이 올해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성장성 특례 상장사는 상장 연도를 포함해 5년간 매출을 내지 못 해도 관리종목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5년 후 매출이 30억원 미만(별도기준)이거나, 4년 연속 영업손실을 내면 관리종목이 된다. 유예기간 내에도 감사의견 부적정·의견거절·한정 중 하나라도 나오면 형식적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셀리버리는 5년 유예 기간이 끝나자마자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소액주주 피해를 막기 위해 특례상장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례상장 시 미래의 실적 추정치를 구체화하고, 상장 이후 경영 실적을 중간 점검하는 등 투자자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적자 기업의 상장 문턱을 완화하자는 특례상장 제도의 본래 목적을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해외 시장과 달리 국내 코스닥 시장은 개인투자자 주도의 시장이다. 특히 제약·바이오 산업은 제품화되기까지 성공 불확실성이 높고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대표적인 고위험-고수익 산업”이라며 “문제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제약·바이오 산업과 개별 기업에 내재된 위험을 알기 어려워 대응에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연구원은 “상장요건이 완화된 만큼 성장 초기의 역량 있는 기업을 발굴하고 평가할 상장주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투자자들의 활발한 참여에 기반을 둔 국내 거래소시장의 역동성과 자금조달이 필요한 혁신기업이 조화를 이루며 상생해나갈 수 있기 위해서 투자자 및 증권사, 거래소, 감독기구의 유연한 대처와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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