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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따라잡기② 강남을 ‘사는’ 이유, 강남에 ‘사는’ 이유[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업무·교통·교육 중심지로 도약, 대형병원까지 생활편의 다 갖춰

DB금융센터 27층에서 바라 본 강남 테헤란로와 선릉 일대 모습 [사진 신인섭 기자]

[김현아 가천대학교 초빙교수] ‘강남’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의 관심 대상으로 등극한 데에는 ‘강남 8학군’ 명성과 2000년대 초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높은 주택가격 상승이 계기가 됐다. 이전까진 정부가 공무원과 학교 이전, 각종 인프라 건설을 밀어붙이는 등 다양한 촉진책을 썼지만, 여전히 전통 부촌은 성북동, 청파동, 한남동 등 강북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대기업 본사도 광화문 근처에 밀집해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강남 내 아파트 단지들의 재건축이 본격화되면서 강남의 경쟁력이 하나둘씩 소개되고 강조되기 시작한다. 재건축을 재료로 (당시 눈높이에선)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기 때문이다. “아니, 다 낡아빠지고, 심지어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5층짜리 낡은 아파트가 무슨 5억이나 해”라는 질문에는 “이게 곧 재건축이 되는데 추가부담금 없이 30평 짜리 신축 아파트가 된대요. 그럼 이야기가 달라지죠”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일자리·교통·교육 다 갖춘 ‘완성형 신도시’

이런 분위기가 확산했지만 사람들은 이를 일부 ‘투기꾼들’의 이야기라고 했고, 정부 역시 투기세력을 잡아야 하는 1번지로 강남을 대했다. 이를 통해 강남 주택을  매수하는 목적은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가격이 올라도 강남을 떠나지 않고 머무르고 있는 주민들도 많다. 강남 집을 팔고 조금만 외곽으로 이동하면 더 넓은 집에 살 수 있고, 차액으로 현금자산도 확보할 수 있는데 왜 그들은 여전히 강남에 머물기를 원할까?

최근 연구논문(‘주택연구’ 제31권 1호, 김희정·김준형)에 의하면 일자리나 교육 문제에서 벗어난 강남 거주 고령가구들은 출가한 자신들의 자녀를 소환해 강남을 경유지가 아닌 종착지로 삼으려고 한다. 왜일까? 일자리나 교육의 문제를 벗어나서도 왜 그들은 강남에 계속 거주하고자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완성된 신도시의 힘’이었다. ▲양호한 교육환경과 일자리 ▲직장과 높은 접근성 ▲병원 및 문화시설의 질과 접근성 등을 두루 갖춘 자족도시의 힘 말이다. 이런 강점은 잘 갖춰진 친숙한 그곳에서 계속 머물고자 하는 인간의 거주관성(Aging in Place)에 투영되어 강남에 살고 싶은, 머무르고 싶은 힘이 되고 있었다. 

통계청 지역별고용조사(2021년1분기)에 의하면 강남구와 서초구 취업자는 117만명으로 서울 전체 취업자의 21.1%에 달한다. 근무여건이나 소득이 안정적인 상용근로자의 비율 역시 이 두 개구가 가장 높다.

정부의 이전정책으로 소위 8학군으로 분류되는 명문고가 강남에 몰린 것은 맞지만, 현재 강남학군은 단순 강북에서 이전한 전통명문고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른 학교들 역시 학력고사와 수능에 최적화한 치열한 교육으로 높은 진학률을 이끌며 강남의 신생명문고가 되었고 주변에는 사설 입시학원들이 번성하며 강남 학군과 시너지를 냈다.

즉 강남에 대한민국 교육 1번지가 탄생한 것이다. 강남 명문고, 명문학원이라는 타이틀은 곧 명문대, 사회 고위층이 된 선배와의 네트워크로 대변된다. 앞서 인용한 논문에 따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대 진학률이 가장 높은 자치구가 강남구와 서초구다. 특목고 중 과학고는 강남학군 학생 비중이 높고, 유명 예고의 30% 이상이 강남학군 출신이다. 
강남구 대치동 소재 '래미안 대치팰리스' 인근 학원가 모습. [사진 민보름 기자]

교통여건도 훌륭하다. 강남은 서울 및 수도권 순환교통은 물론 서울 이남으로 이동하는데 필요한 교통수단의 집결지다. 경북고속도로 이외에도 SRT수서역까지 가세하면서, 강남은 대한민국 교통네트워크의 허브가 되고 있다. 일례로 필자는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고 있는데 지방으로 이동할 때 기차는 서울역에서, 고속버스는 강남터미널까지 가서 이용한다. 이 두 곳으로 가야 배차시간도 짧고 다양한 노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다. 

서북권 대비 동남권 병원 2배 이상 많아

강남에 사는 또 다른 이유로 양질의 의료시설을 빼놓을 수 없다. 2021년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집계에 의하면 강남이 속한 서울 동남권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총 168개소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다. 서북권(71개소)과 비교해도 2배 이상이다. 의료기관 종사자 수 역시 다른 권역보다 1만명 이상 많으며 주요 의료장비의 31%가 동남권에 몰려있다.

서울 대형 종합병원에 가면 지방에서 진료를 받기위해 몰려든 환자를 많이 볼 수 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병원 원정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한다. 중증 질환의 경우 검사나 수술을 위해서는 수일, 수주가 소요된다. 그런데 이런 유명 대학병원들이 차로 30분 이내 거리에 여러 개가 있다면, 그 편익은 도대체 얼마로 값을 매길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강남에 대해 생각할 때 표면적인 주택가격만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강남 주택을 그저 물건이나 투자상품처럼 다루기 때문이다. 과연 과도한 교육열과 입시경쟁만이 이들을 강남으로 이끌었을까.

주거비용은 다소 높지만 각종 주거 인프라의 접근성이 높고 서비스 수준 역시 높다면, 사회고위층과 만날 기회가 늘어나고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상징자본이 될 수 있다면, 이 모든 걸 감안한 ‘가성비’라면 강남의 주택가격을 단순히 높다고만 할 수 있을까.

아, 부럽기도 하지만 화도 난다. 강남이 계획도 없이 저질러진 신도시로 출발해 이렇게 완성된 자족도시가 될 동안 다른 신도시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났던 것일까. 강남에 비해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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