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반도체 추락에 ‘K-칩스법’ 통과…여야 맞손
[논란의 반도체법]⓶
반도체 수출 꺾이고 손실 커지자 국회 합의
올해 반도체 투자하면 세액공제 더 해준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액공제율 상향 등의 내용을 포함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이른바 K-칩스법으로 불리는 이 법이 4월 11일 공포됐다. 법안에는 기업이 투자를 단행하면 투자액의 일정 비율만큼 소득세·법인세에서 공제받는 투자세액공제 내용도 담겨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기업이 투자한 금액은 추가로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K-칩스법은 3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차전지‧백신‧디스플레이‧수소‧전기차‧자율주행차 등에 대한 투자 세액 공제 비율을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반도체 분야 지원이 핵심이다. 올해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설비투자를 하면 세액 공제 비율을 늘려주겠다는 것이다.
세액공제율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경우 현행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각각 확대된다. 직전 3년간 연평균 투자 금액보다 많은 투자를 할 경우, 증가분에 대해서는 올해에만 10%의 추가 공제(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이에 따라 대기업은 최대 25%, 중소기업은 35%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올해 투자에 대해서는 역대 최고 수준의 지원이 이뤄질 전망”이라며 “올해 투자를 망설이는 기업에 상당한 유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당초 정부와 여당은 반도체 등 국가전략사업 투자에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K-칩스법을 추진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법안 통과가 불투명했다. 정부가 제안했던 대기업 투자세액공제율 8%를 15%로 상향 조정되는 과정에서 야당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심화하고 수요 위축과 가격 하락으로 우리 반도체 기업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태도를 바꾼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올해 1~2월 기준 반도체 무역수지는 18억9895만 달러로 7위를 기록했다. 반도체는 2017년 이후 6년 연속 무역수지 1위 자리를 지키며 우리나라 수출 효자 종목으로 자리매김했는데, 최근 이어진 반도체 불황에 이 자리를 자동차에 내줬다. 같은 기간 자동차 누적 수출액은 105억7795만 달러, 수입액은 26억5710만 달러로 약 80억 달러(10조4000억원)에 이른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반도체 사업을 바탕으로 국내 최고 수준의 실적을 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대규모 적자를 걱정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감산에 들어갔다. 지난 1분기 삼성전자의 연결기준 잠정 영업이익은 6000억원, 반도체 사업에서는 3조~4조원 수준의 손실을 냈을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 역시 3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을 것으로 증권가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美‧日‧대만‧EU,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 위해 지원 강화
정부와 국회가 한마음으로 K-칩스법을 추진한 것은 국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전 세계 각국 정부가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지원금을 풀고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유인책을 쓰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손 놓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우리나라 대표 반도체 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글로벌 기업과 비슷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취지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25% 세액공제를 해준다. 반도체 시설 투자와 R&D 등에는 520억 달러를 지원한다. 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기업이 여러 충족 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지만, 미국은 자국의 안보를 위한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EU(유럽연합)도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최근 유럽반도체법에 합의했다. 430억 유로 규모의 민관 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이 법은 유럽의회를 통과하면 시행된다. 그동안 반도체 산업은 설계(팹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과 생산을 담당하는 아시아 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 체계가 짜여 있었는데, 유럽도 자립 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EU는 2021년 3월, 10년 안에 세계 반도체 제품의 최소 20%를 EU 공장에서 생산한다는 목표를 담은 ‘2030 디지털 컴퍼스’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일본에서는 소니, 도요타, 키옥시아 등 일본 대표 기업 8개가 뭉친 첨단 반도체 회사 ‘라피더스’가 설립됐다. 일본 정부는 이 회사에 700억엔(약 7000억원)을 지원하고 반도체 기업 설비 투자의 40%가량을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1위 기업을 보유한 대만은 ‘산업혁신 조례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술 혁신과 세계 공급망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업체에 연구·개발(R&D) 투자비의 25%, 설비투자의 5%를 세액공제해주기로 했다. 사실상 TSMC를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만 경제부는 “미국·일본·한국·유럽연합(EU) 모두 자국 공급망 구축을 위해 막대한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며 “대만은 핵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도 K-칩스법 통과를 환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반도체 산업은 국가 경쟁력 핵심으로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며 “여야 합의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는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수출 경쟁력 세계 1위의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고 반도체 생산량을 늘려 경제 안보를 강화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논평을 내고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전략 산업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며 “산업계 전반의 투자 촉진과 기업 활력 제고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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