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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카드모집인을 부끄러운 직업으로 만들었다”[이코노 인터뷰]

[카드모집인은 어디로 갔나] ③ 이승수 전국신용카드설계사협회 회장
“경품비 제한 부당…온라인 발급, ‘체리피커’ 급증으로 카드사도 수익 악화”
당국에 여전법 시정 요청했지만 변화 없어…“벽 보고 얘기하는 듯해”

이승수 전국신용카드설계사협회 회장이 줄어드는 카드모집인에 대한 견해를 말하고 있다. [사진 최기원 PD]

[이코노미스트 윤형준 기자] 신용카드가 아직은 낯설던 1991년, 카드 발급 한 장에 수당 2500원을 받으며 열심히 뛰어다니던 서른한 살 청년은 어느덧 예순셋 주름 깊은 장년이 됐다. 바로 이승수 전국 신용카드설계사협회 회장의 역사다. 당시 ‘한 달만 해봐야겠다’, ‘1년만 더 해보자’ 했던 것이 벌써 32년이 흘렀다.

이 회장은 카드모집인(설계사)이라는 직업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보험모집인이나 자동차 영업사원들은 대개 가족이나 지인 등 연고로 영업을 하지만, 카드모집인은 연고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 시민들도 잘 어필하면 흔쾌히 카드를 사용해주는 것을 보고 많은 성취감과 긍지를 느껴왔다.

하지만 이 회장은 어느 순간부터 잘못된 잣대가 자신들을 옥죄어오기 시작했다고 토로한다. 경품비 제한이나 1사 전속주의 등 약 20년간 바뀌지 않은 규제는 물론이거니와 빅테크와 형평성에 맞지 않는 불공정 경쟁이 결국 모집인들을 떠나게 만든다는 것. 지난 19일 ‘이코노미스트는’ 이 회장과 만나 카드모집인이 급감하는 추세에서도 업계 선배로서 역할을 끝까지 다하겠다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서민 일자리 뺏는 게 핀테크의 취지인가”

이 회장은 ‘연회비 10%’ 경품비 규칙에 대해 입을 열었다. 여신전문금융업법 따르면 카드모집인은 신용카드 연회비의 10%를 초과하는 경품을 제공할 수 없다. 가령 2만원짜리 연회비인 신용카드를 발급한다면 2000원까지만 보상을 줄 수 있는 셈이다.

이 회장은 “카드 사태 이후 발급 남발을 막기 위해 시행령을 만든 건데, 문제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국민 1인당 카드 발급 매수가 4.5장 정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라며 “오히려 온라인 발급으로 ‘체리피커’(실속만 빼먹는 소비자)가 늘고 있어 발급 남발을 막자는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풀이했다.

현재 토스, 네이버페이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카드를 발급받고 일정 기간 일정 금액을 이용하면 10만원에서 많으면 20만원 가까운 캐시백이 진행된다. 이 회장은 “카드사 입장에서도 처음에는 빅테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모집인들을 관리하는 비용만큼 예산이 투입된다고 한다”며 “20~30대가 6개월도 안 돼 카드를 폐기하고 신규 발급받고를 반복하다 보니 카드사에서도 수익이 나질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온라인 플랫폼과 경쟁하다보니 모집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본인의 비용을 들여 신규 고객을 유치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 회장은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선 16만원 주는데 왜 모집인을 통하면 3만원밖에 안 주냐’는 식으로 요구하다 보면 고스란히 모집인들의 개인 비용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며 “이로 인해 실질 소득은 줄어드는데도 드러나는 연봉은 많이 받는 것처럼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빅테크 기업들이 월등한 기술을 갖고 세계에서 경쟁해 글로벌 기업이 돼야 하는데 결국 국내에서 서민들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며 “결국 이런 제도 아래에선 모집인들은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사 전속주의’도 모집인들의 발목을 잡는 두 번째 족쇄다. 1개 금융사와만 모집업무 위탁계약을 맺어야 하는 ‘1사 전속주의’는 온라인 플랫폼에 대해서는 2020년 규제 완화가 이뤄졌으나, 모집인들은 여전히 규제를 받고 있다. 이 또한 2003년 카드 사태 이후 무분별한 카드 발급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회장은 “카드 발급 남발이 걱정이라면 3개월에 타사 카드 두 장 이상 발급 금지 등의 제한을 두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킬 수 있어야 법…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일해”

카드설계사협회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카드 모집인에게도 빅테크와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달라는 요청을 금융당국에 하고 있다. 최소한 보험 모집인처럼 3만원으로 경품비 제한을 늘려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금융위원회로부터 돌아오는 답변은 ‘재고해보겠다’가 끝으로 시간이 흘러 다시 찾아가면 담당자는 바뀌어 있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그는 “마치 벽이랑 얘기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국신용카드설계사협회가 지난 2020년 8월 동아일보에 게재한 호소문. [사진 전국신용카드설계사협회]
이 회장은 “카드 모집인이 7500명이 있지만 연회비 10분의 1만 고객에게 제공하는 모집인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왜 불가능한 것을 정부에서 방관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모집인들은 대부분 고연령층이고 서민인데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남들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카드모집인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직업을 된 현실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통념과 다르게 모집인들은 법을 지키고 공정한 영업을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에서 다시 한번 모집인들의 이런 속 이야기를 귀 기울여주기를 당부했다.

그는 이 같은 숱한 어려움에 모집인이 10명, 5명만 남더라도 직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일을 10년 하면 준전문가, 20년 하면 달인이라고 하듯이 진짜 일 잘 하는 사람은 ‘오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달할 수 있는 ‘오래 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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