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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덕을 쌓아야”…조합장 위반행위, 왜 많을까

[정비사업 천태만상] ② 용역업체 선정 권한 가진 조합장, 유혹도 많아
서울 정비사업 위법 적발사건, 벌금형은 2% 불과

5월 14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박지윤 기자] 조합 결성부터 철거, 시공까지 재개발·재건축 즉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데 조합원들의 투표로 당선된 조합장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다. ‘정비사업 조합장이 되면 평생 먹고 살 돈을 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정비사업 조합장을 할 수있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유행할 정도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조합장을 비롯해 조합 임원 등은 총회진행, 정비업체 등 각종 용역 선정부터 시공사 선정, 아파트 건축 시 자재 선정까지 수많은 이권을 결정한다. 그만큼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관련 업체들의 로비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 특정 업체에 뒷돈을 받거나 특정 자재를 선정하기 위해 힘을 쓴 조합장들은 결국 구속에 이르기도 한다. 

섀시,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등이 이권 개입 수단 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재개발사업 조합장 A씨는 정비업체 선정 과정에서 담합을 통해 공정한 입찰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2020년 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아 구속됐다.

서울 송파구의 한 재건축조합에서는 2015년 당시 조합장이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대가로 1억5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징역 6년에 벌금 2억원 선고를 받았다. 또 해당 재건축 조합에서는 올해 4월 조합장·대의원·이사 선거에서 미리 기표한 투표용지로 바꾸는 부정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자문단장과 용역업체 대표가 불구속 기소됐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조합장을 비롯한 조합 임원진이 월급과 공무처리비용을 제외한 철거, 각종 사업 입찰, 하도급업체 선정,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뇌물을 받거나 공금 횡령으로 소송전으로 넘어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조합장, 조합 임원 등 조합 집행부를 결성할 때는 조합장과 가까운 사람들이 감사업무를 맡기 때문에 조합장과 함께 이권을 공유할 가능성도 크다.

또 아파트를 짓는 필수 자재인 섀시뿐 아니라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홈네트워크, 식탁 등 내부 마감재를 선정할 때 특정 업체를 지목하면서 설계 변경을 요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총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사안이 아닐 경우 조합장이 특정 업체를 지목해서 계약을 하자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정비 현장들이 종종 있다”며 “시공사 입장에서는 사업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경우에는 되도록 수용하려고 하지만, 기존 대비 과도하게 값이 올라갈 경우 조합원 전체가 부담해야 하는 공사비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현재 도시정비법에 따르면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했거나 제공받은 사람은 형사 처벌을 받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돼있다”면서도 “경찰 조사를 받아 혐의가 나오면 재판에 들어가더라도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해 10월 기준 정비사업에서 위반행위로 적발한 사건 가운데 기소를 통해 벌금을 부과하는 경우는 2%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로부터 받은 재개발·재건축 합동 실태점검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31개 사업장에서 603건의 위반행위가 적발됐다.

단지별로는 ▲중구 신당8구역 재개발사업이 수사의뢰 5건 등 31건으로 가장 많았고 ▲잠실 미성크로바아파트 29건 ▲개포주공1단지 27건 ▲수색6구역 재개발사업 27건 ▲둔촌 주공아파트 27건 ▲이문3구역 재개발사업 25건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 25건 ▲잠실 진주아파트 25건 순으로 조사됐다.

위반행위 처벌 결과를 보면 ▲시정명령(194건)과 행정지도(290건)가 484건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했고, ▲수사의뢰(76건)와 환수조치(39건)는 115건으로 19%에 불과했다. 특히 수사의뢰 76건 가운데 수사가 진행 중인 22건을 제외한 54건에 대해 서울시가 최종적으로 처분한 결과를 보면 기소 또는 약식기소로 벌금을 내는 경우는 12건으로 22%에 그쳤다. 서울에서 위반행위로 적발한 전체 603건 가운데 벌금 부과 사건은 2%에 불과한 수준이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재개발사업의 조합원이었던 J씨는 “조합장이 3명은 돼야 정비사업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는데 실제로 수년 전 조합장이 2번 바뀌고 나서 분양을 마쳤다”며 “정비사업 전문 관리 업체뿐 아니라 설계, 감리, 철거업체, 지장물 철거업체 등 관련 용역 업체들이 많기 때문에 조합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들이 이권이 개입할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비사업 지연되면 운영비 늘어나

건설업계에 따르면 과거에는 조합장과 조합 임원으로 선출되면 월급을 받는 방식으로 정비사업을 진행하는데 빨리 끝내면 그만큼 월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일부러 사업을 천천히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도시정비법상 총회 의결사항이 아닌 경우에 대의원회에서 의사 결정을 위해 여는 회의 역시 많이 개최하면 개최할수록 수당이 늘어나는 구조다.

건설사 관계자는 “특히 서울 주요지역 정비사업지에서는 일명 ‘스타 조합장’이 탄생하기도 한다”며 “서울 반포의 한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갈피를 못잡고 표류하던 사업을 한 조합장이 등단한 뒤 단기간에 분양으로 이끌면서 유능하다는 입소문이 돌았다”고 전했다.

그는 “정비사업이 지연되는 만큼 공사비 단가도 올라가는 상황에서 조합 운영비까지 소모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비용 절감에 유리하다”며 “차라리 능숙한 조합장을 데려와서 빨리 사업을 마무리 짓는 만큼 인센티브를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정비사업 조합들이 늘어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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