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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같은 볼모?”…中 마이크론 제재, 美 정계 “그 빈자리 한국이 채우지 말라”

삼성‧SK, 미 반도체 보조금 받으려면 중국 시설 확대 못해
정부, 미 규제 완화 건의에도 효과는 미지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미국과 중국 반도체 갈등의 유탄이 우리 기업으로 향했다. 최근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 이후 미국 정치권에서는 한국기업을 거론하며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대체하지 말라”는 언급이 나왔다. 이를 두고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는 반도체 생산시설이, 미국에는 보조금이 걸려있는 문제”라며 “겉으론 양쪽 모두 포기할 수 없는 동맹 같은 사이인데, 사실상 볼모 신세 아니냐”고 했다.

지난 23일(현지 시각) 로이터 통신은 마이크 갤러거 미 하원 미·중 전략경쟁 특별위원회 위원장(공화당)이 한국 기업을 겨냥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대체하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제재로 마이크론이 힘을 잃어 중국 내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데, 이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두고 보지만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 의회에서 강경한 발언이 나오는 건 중국에서 한국 기업의 영향력 확대가 중국을 압박하려는 미국 전략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혼자서 중국을 견제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과 대만, 한국을 이용해 반도체 동맹을 맺고 중국을 압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한국 반도체는 미국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사업을 금지하는 등 강수는 두지 않았다. 현재 사업 수준을 유지하는 정도로 느슨하게 규제하거나 규제를 유예했다.

그런데 미국의 압박에 중국이 마이크론 제품 판매 금지라는 대응으로 보복하자 한국의 역할론이 다시 쟁점이 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깊게 노출됐기 때문에 미국의 대중 압박이 심해질수록 한국 반도체 업체들 역시 고통스러울 것”이라면서도 “한국 반도체 산업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중국의 마이크론 금지 조치가 성공할지 아니면 미국과 동맹의 공급망과 격차가 벌어질지 결정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현재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중국에서 반도체 상당량을 생산하거나 큰 매출 비중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약 40%를,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에서 전체 D램 생산량의 50%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마이크론이 중국에서 올리는 연간 매출액은 약 30억 달러로 마이크론 전체 매출의 11%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갤러거 의원은 “미 상무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에 부여된 수출 허가가 마이크론 공백을 채우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한국을 최근 몇 년간 중국 공산당의 경제 강압을 직접 경험한 ‘우리의 동맹국’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동맹국이 중국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환경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면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유예를 주는 등 편의를 인정했는데, 이를 연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리 기업이 중국에 생산설비를 확대‧운영하면서 미국의 반도체 투자 지원금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던 정부 입장도 난처해졌다. 미국은 지난해 8월 자국에 반도체 시설을 짓는 기업에 총 527억달러(약 69조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내용이 남긴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을 발효했다. 다만 전제조건으로 중국과 북한, 러시아, 이란 4개 우려 대상국에 대한 설비 확장을 10년간 제한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을 덧붙였다.

우리 정부는 미국 행정부에 반도체 보조금 수령 규정을 완화해 달라는 의견서를 전달했다. 중국 등 우려대상국에서 증산할 수 있는 품목을 최대한 확대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미국 의회에서 우리 기업에 사실상 ‘중국 생산시설 확대 불가’ 방침 언급이 나온 셈이다. 미국 상무부는 이번 주까지 공개 의견 수렴을 마무리하고 이후 확정하는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부는 “반도체법 시행은 물론 반도체와 관련한 다른 문제도 미국 정부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하기를 강력히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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