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장화’가 ‘패션템’으로…‘다이애나비’도 신은 167년 된 부츠는 [브랜도피아]
167년 전통 영국 브랜드 ‘헌터’(HUNTER)
군인 부츠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진화
구매자 80%가 MZ…‘장마 괴담’에 매출 껑충
[이코노미스트 김채영 기자] ‘다이애나비가 즐겨 신던’, ‘장마철 20억원 매출 내는’, ‘160년 전통’ 브랜드. 노동자를 위한 고무장화 제조사에서 레인부츠계의 대표 브랜드가 된 영국의 ‘헌터(HUNTER)’의 이야기다. 올여름 5일 빼고 비가 내린다는 이른바 ‘장마 괴담’에 레인부츠가 품절 대란을 일으키는 가운데 한 세기 넘는 시간 동안 사랑받은 헌터의 인기도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공식 부츠였던 헌터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헌터의 시작은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터의 창업자는 미국 출시의 ‘헨리 리 노리스’로, 그는 궂은 영국 날씨 속 고무 부츠의 상품성을 높게 보고 영국에 회사를 설립했다. 처음에 헌터는 군인과 농부, 노동자를 위한 고무장화 제조사였으나 세계대전을 거치며 브랜드를 알리게 됐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물이 찬 참호와 홍수로 인해 진흙이 많은 환경에서 전쟁을 해야 했던 영국군들을 위해 헌터는 200만 켤레의 부츠를 만들게 되면서 영국군의 공식 부츠가 됐다.
헌터의 대표 아이템인 ‘웰링턴 부츠’의 명칭은 1815년 워털루 전쟁의 승리를 이끈 웰링턴 공작의 이름으로부터 유래됐다. 웰링턴 공작은 전쟁에서도 편하게 신을 수 있는 부츠를 주문했고, 이때 만들어진 부츠가 영국군 군화로 사용되면서 웰링턴 부츠라 불리게 됐다. 이를 계기로 영국에선 레인부츠를 ‘웰링턴 부츠’, ‘웰리스’, ‘검부츠’ 등 다양한 애칭으로 부른다고 전해진다.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품질을 인정받은 헌터는 1977년 영국 여왕과 에든버러 경으로부터 ‘영국왕실보증서(Royal Warrant)’를 부여받았다. 그 이래로 40년 넘는 기간동안 헌터는 영국 왕실에 제품을 공급하는 브랜드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헌터의 웰링턴 부츠는 다이애나비가 착용하며 당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헌터의 레인부츠가 방수를 넘어 ‘패션’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대표 모델 ‘케이트 모스’의 영향이 컸다. 2005년 영국 최대의 록 페스티벌인 ‘글라스톤베리’에서 케이트 모스는 숏팬츠에 진흙이 묻은 헌터 부츠를 찍은 파파라치컷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헌터 부츠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가게 됐다. 이후 안젤리나 졸리, 린제이 로한, 힐러리 더프 등 셀럽들이 헌터 부츠를 착용한 모습이 노출되면서 인기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됐다.
헌터는 ‘비 오는 날에만 찾는 브랜드’가 아닌 일상에서도 소화 가능한 캐주얼 아이템들도 선보이고 있다. 부츠를 통해 보여주던 워터프루프 기술을 의류에도 구현하여 다양한 가방, 슈즈, 우산, 장갑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레인부츠도 길이와 소재, 색상이 매우 다양하고 가격은 14만~19만원대다.
‘장마 괴담’에 더 잘 나간다…월매출 1억원 돌파
국내에서도 여러 연예인들이 헌터 부츠를 착용하며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2013년까지 레인부츠는 여름 시즌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이후 인기가 식으며 한동안 업계는 여름 시즌 비인기 아이템으로 전락한 레인부츠 출시를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부터 장마 기간이 길어지고 셀린느·샤넬 등 명품 브랜드들이 레인부츠 라인을 강화하면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를 중심으로 구매력이 폭발하며 헌터와 ‘락피쉬’ 등 대표적인 레인부츠 브랜드들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헌터는 올해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새로 매장을 내 최근 월매출이 1억원을 넘어섰다. ‘락피쉬’ 레인부츠는 최근 매출 급증에 한남동·성수동에 잇따라 쇼룸을 새로 열고 있다.
현재 국내에 헌터 제품을 단독 수입하고 있는 곳은 라이프스타일 편집샵 ‘포랩(FOURLAB)’으로, 지난해 기준 7월 중순까지 매출이 1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 매출은 140억원으로 추정됐다. 올해 ‘헌터’ 플래그십 등의 오프라인 유통망도 확장한다. 현재 롯데 잠실과 신세계 대구, 더현대 등의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롯데월드몰에 ‘헌터’ 플래그십스토어가 새로 오픈했다.
레인부츠 수요는 보통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는 6월부터 몰리지만, 올해는 5월 말부터 많은 양의 비가 내린 데다 장마 괴담까지 퍼지며 이른 ‘품귀 현상’이 발생했다. 패션기업 LF에 따르면 5월 1~23일 LF몰 내 ‘레인부츠’ 키워드 검색량은 전년 대비 26배, 전달 대비 6배 급증했다. 인기 검색어 상위에도 꾸준히 ‘레인부츠’, ‘핏플랍’ 등의 여름 슈즈 연관 키워드가 랭크돼 있다.
패션 플랫폼 W컨셉에선 지난달 1일부터 30일까지 약 한 달간 레인부츠, 아쿠아슈즈 등 장마 용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레인부츠는 같은 기간 매출이 20배 이상 늘었다. 신세계백화점에선 앞서 지난 4월부터 5월 15일까지 헌터 등이 포함된 여름 신발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65.8% 증가했다.
업계에선 레인부츠가 MZ세대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고, 올해 긴 장마가 예상된단 추측이 이어지며 레인부츠의 인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레인부츠를 구매했다는 20대 직장인 홍모씨는 “장화라고 하면 어린 시절 신었던 노란 장화가 떠올라 사지 않았었는데 최근 부츠 형태로 많이 나온데다가 길이도 다양해져 선택의 폭이 넓어져 하나 마련했다”며 “올여름 많은 비가 쏟아진다는 이야기도 많아 일찌감치 마련하려고 했던 것인데 구매하는 도중에 품절이 돼 알림 신청까지 해서 구매했다”고 전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올해 장마가 유난히 길어진다는 소식에 고객들이 미리부터 장마 준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개인의 취향과 용도에 따라 다양한 색상과 길이의 레인부츠 제품들이 나오고 있어 기능과 패션 모두 만족스럽다는 고객 반응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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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공식 부츠였던 헌터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헌터의 시작은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터의 창업자는 미국 출시의 ‘헨리 리 노리스’로, 그는 궂은 영국 날씨 속 고무 부츠의 상품성을 높게 보고 영국에 회사를 설립했다. 처음에 헌터는 군인과 농부, 노동자를 위한 고무장화 제조사였으나 세계대전을 거치며 브랜드를 알리게 됐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물이 찬 참호와 홍수로 인해 진흙이 많은 환경에서 전쟁을 해야 했던 영국군들을 위해 헌터는 200만 켤레의 부츠를 만들게 되면서 영국군의 공식 부츠가 됐다.
헌터의 대표 아이템인 ‘웰링턴 부츠’의 명칭은 1815년 워털루 전쟁의 승리를 이끈 웰링턴 공작의 이름으로부터 유래됐다. 웰링턴 공작은 전쟁에서도 편하게 신을 수 있는 부츠를 주문했고, 이때 만들어진 부츠가 영국군 군화로 사용되면서 웰링턴 부츠라 불리게 됐다. 이를 계기로 영국에선 레인부츠를 ‘웰링턴 부츠’, ‘웰리스’, ‘검부츠’ 등 다양한 애칭으로 부른다고 전해진다.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품질을 인정받은 헌터는 1977년 영국 여왕과 에든버러 경으로부터 ‘영국왕실보증서(Royal Warrant)’를 부여받았다. 그 이래로 40년 넘는 기간동안 헌터는 영국 왕실에 제품을 공급하는 브랜드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헌터의 웰링턴 부츠는 다이애나비가 착용하며 당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헌터의 레인부츠가 방수를 넘어 ‘패션’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대표 모델 ‘케이트 모스’의 영향이 컸다. 2005년 영국 최대의 록 페스티벌인 ‘글라스톤베리’에서 케이트 모스는 숏팬츠에 진흙이 묻은 헌터 부츠를 찍은 파파라치컷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헌터 부츠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가게 됐다. 이후 안젤리나 졸리, 린제이 로한, 힐러리 더프 등 셀럽들이 헌터 부츠를 착용한 모습이 노출되면서 인기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됐다.
헌터는 ‘비 오는 날에만 찾는 브랜드’가 아닌 일상에서도 소화 가능한 캐주얼 아이템들도 선보이고 있다. 부츠를 통해 보여주던 워터프루프 기술을 의류에도 구현하여 다양한 가방, 슈즈, 우산, 장갑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레인부츠도 길이와 소재, 색상이 매우 다양하고 가격은 14만~19만원대다.
‘장마 괴담’에 더 잘 나간다…월매출 1억원 돌파
국내에서도 여러 연예인들이 헌터 부츠를 착용하며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2013년까지 레인부츠는 여름 시즌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이후 인기가 식으며 한동안 업계는 여름 시즌 비인기 아이템으로 전락한 레인부츠 출시를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부터 장마 기간이 길어지고 셀린느·샤넬 등 명품 브랜드들이 레인부츠 라인을 강화하면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를 중심으로 구매력이 폭발하며 헌터와 ‘락피쉬’ 등 대표적인 레인부츠 브랜드들의 매출이 크게 늘었다. 헌터는 올해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새로 매장을 내 최근 월매출이 1억원을 넘어섰다. ‘락피쉬’ 레인부츠는 최근 매출 급증에 한남동·성수동에 잇따라 쇼룸을 새로 열고 있다.
현재 국내에 헌터 제품을 단독 수입하고 있는 곳은 라이프스타일 편집샵 ‘포랩(FOURLAB)’으로, 지난해 기준 7월 중순까지 매출이 1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 매출은 140억원으로 추정됐다. 올해 ‘헌터’ 플래그십 등의 오프라인 유통망도 확장한다. 현재 롯데 잠실과 신세계 대구, 더현대 등의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롯데월드몰에 ‘헌터’ 플래그십스토어가 새로 오픈했다.
레인부츠 수요는 보통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는 6월부터 몰리지만, 올해는 5월 말부터 많은 양의 비가 내린 데다 장마 괴담까지 퍼지며 이른 ‘품귀 현상’이 발생했다. 패션기업 LF에 따르면 5월 1~23일 LF몰 내 ‘레인부츠’ 키워드 검색량은 전년 대비 26배, 전달 대비 6배 급증했다. 인기 검색어 상위에도 꾸준히 ‘레인부츠’, ‘핏플랍’ 등의 여름 슈즈 연관 키워드가 랭크돼 있다.
패션 플랫폼 W컨셉에선 지난달 1일부터 30일까지 약 한 달간 레인부츠, 아쿠아슈즈 등 장마 용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레인부츠는 같은 기간 매출이 20배 이상 늘었다. 신세계백화점에선 앞서 지난 4월부터 5월 15일까지 헌터 등이 포함된 여름 신발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65.8% 증가했다.
업계에선 레인부츠가 MZ세대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고, 올해 긴 장마가 예상된단 추측이 이어지며 레인부츠의 인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레인부츠를 구매했다는 20대 직장인 홍모씨는 “장화라고 하면 어린 시절 신었던 노란 장화가 떠올라 사지 않았었는데 최근 부츠 형태로 많이 나온데다가 길이도 다양해져 선택의 폭이 넓어져 하나 마련했다”며 “올여름 많은 비가 쏟아진다는 이야기도 많아 일찌감치 마련하려고 했던 것인데 구매하는 도중에 품절이 돼 알림 신청까지 해서 구매했다”고 전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올해 장마가 유난히 길어진다는 소식에 고객들이 미리부터 장마 준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개인의 취향과 용도에 따라 다양한 색상과 길이의 레인부츠 제품들이 나오고 있어 기능과 패션 모두 만족스럽다는 고객 반응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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