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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캐피탈(VC), 오너家 3·4세 ‘경영수업’ 학교 된 사연 [허지은의 주스통]

스타트업·비상장사 투자 담당하는
VC에서 산업 트렌드·경영 감각 익혀
50인 미만 소규모로 운영되는 VC
‘보수적’ 오너 일가에 안성맞춤

주식 시장에선 오가는 돈 만큼이나 수없이 많은 뉴스가 생겨납니다. 한국의 월스트리트, 대한민국 금융의 중심인 여의도 증권가와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2400여개 상장사들이 그 주인공입니다. ‘허지은의 주스통’(주식·스톡·통신)에서 국내 증시와 금융투자업계 안팎의 다양한 소식을 전달합니다. [편집자주]

[이코노미스트 마켓in 허지은 기자] “○○인베스트먼트 ◇◇ 심사역, △△그룹 회장 딸이래요”

벤처캐피탈(VC) 업계엔 유독 오너가(家) 자녀가 많습니다. 창업 초기 기업이나 비상장사에 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탈은 투자 사이드의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데다 그룹의 신사업 발굴을 위한 창구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은행이나 증권사 등 전통 금융기관 대비 젊은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산업의 트렌드를 앞서 나갈 수 있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투자 심사역으로 현장을 직접 뛰어다니며 미래의 경영 승계를 대비해, 일종의 경영 수업을 받는 셈입니다. 

일찌감치 그룹 내 투자사 대표를 맡고 있는 오너 2, 3, 4세도 있습니다. GS그룹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GS퓨처스는 오너 4세 허태홍 대표가 이끌고 있습니다. 1985년생인 허 대표는 허태수 GS그룹 회장의 형인 허명수 전 GS건설 부회장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는 2012년 GS홈쇼핑 재무회계부에 입사해 2014년 벤처투자팀 매니저 등을 거쳐 2020년 GS퓨처스 대표에 올랐습니다. 

박용만 전 두산 회장이 세운 벨스트리트파트너스는 차남인 박재원 대표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두산인프라코어 재직 당시 미국 실리콘밸리에 벤처투자사 D20 캐피털 설립과 운영을 책임진 인물입니다. 또 다우키움그룹 창업주인 김익래 전 다우키움 회장의 장남인 김동준 대표도 2018년부터 계열사인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그룹 내 투자사에서 심사역으로 활동 중인 이들도 흔한데요. 홍석준 보광 회장의 장남인 홍정환 씨는 보광인베스트먼트(구 보광창업투자)에서 투자심사총괄을 맡고 있습니다. 범 LG가로 분류되는 LB인베스트먼트에서 인턴 생활을 마친 뒤 마젤란기술투자에서 심사역으로 근무하다 최근 퇴사한 구연제 씨는 구본준 LX 회장의 큰 딸입니다.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의 장녀 이연수 씨는 에코프로의 CVC인 에코프로파트너스(구 아이스퀘어벤처스)에서 투자 심사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막내 아들 박준범 씨는 계열사인 미래에셋벤처투자에서 심사역으로 근무 중입니다. 그룹의 핵심 계열사는 아니지만, 우량 스타트업을 직접 발굴해보면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계열사가 아닌 곳에서 실무 경험을 쌓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용환 스틱인베스트먼트 회장의 차남인 도재원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수석팀장은 아버지가 있는 스틱인베 대신 독립계 벤처캐피탈 컴퍼니케이에서 심사역으로 출발해 수석팀장까지 승진했습니다. 도 팀장은 현재 컴퍼니케이의 투자2본부에서 투자 심사를 담당 중입니다. 박현주 회장의 장녀인 박하민 씨 역시 계열사 대신 미국계 VC인 GFT벤처스의 창립 멤버로 합류해 파트너로 활동 중입니다. 

과거 오너 2세들은 그룹 내 핵심 계열사에 관리자급으로 합류해 경영 수업을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1991년 부장으로 입사), 정의선 현대차 회장(1995년 이사로 입사), 최태원 SK그룹 회장(1991년 부장으로 입사) 등이 대표적이죠. 그러나 80~90년대생 ‘MZ세대’가 주로 포진해 있는 오너 3, 4세들과 젊은 오너 2세들은 벤처캐피탈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익숙합니다. 딱딱한 주력 계열사 대신 계열 투자사에서 업무 감각을 익힌 뒤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식입니다. 

벤처캐피탈업계가 타 업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대부분의 VC들은 직원 수가 50명이 채 되지 않는 소규모로 운영되고, 채용 역시 내부 추천 등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외 이미지를 중요시하고, 보수적으로 움직이는 오너 일가 특성상 이같은 분위기를 선호할 수 있습니다. 창업주 입장에서도 벤처캐피탈에서 앞선 트렌드를 익혀온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자 하는 의도도 있을 겁니다. 

VC업계 관계자는 “과거 오너 2세의 필수 조건이 MBA(경영대학원) 학위였다면 최근엔 경영 수업을 위해 일부러 벤처캐피탈에서 경험을 쌓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며 “고위험 투자 영역인 VC에서 역량을 쌓았다면 경영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는 경향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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