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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유전 원칙’의 불편한 진실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농지의 변신은 유죄 ①
헌법 상 예외조항·신도시 개발로 투기 대상된 농지…토지이용 왜곡 심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이 제기됐던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농촌 모습. 한 밭에 묘목이 심어져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헌법 제121조 1항에는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명시돼 있다. 뒤이은 2항에는 “농업생산성의 제고를 위해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인정된다”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여기서 경자유전의 원칙(耕者有田-原則, Land to the Tiller)은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즉 소작을 금지하는 원칙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토지 개혁의 일환으로 채택됐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국내 헌법에 명시된 것은 1987년이 처음이나, 1948년 제헌헌법부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며 사실상 이 원칙을 이미 표명한 바 있다. 

경자유전 원칙 속 무수한 꼼수 등장

하지만 헌법 121조 2항이 언급한 바와 같이 농지의 생산성 제고와 합리적 이용을 위해서라면 기술과 시대상황에 따라 무수한 예외가 나타날 수 있다. 이미 1996년에 제정된 농지법에서는 영농조합과 농업법인의 농지소유가 허용됐고 지금은 300평 미만의 주말농장과 체험농장, 경영목적의 농지소유, 지자체나 학교 등이 소유하는 경우 등 야금야금 예외조항이 추가되고 있다. 

소작농이라고 표현하기는 적절하지 않지만 통계청에서 발표한 임차농지 비율은 46.9%(2022년), 임차농가의 비율은 50%(2022년)로 경자유전 원칙 하에서도 절반이라는 이 ‘예외’의 수치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임차농지나 임차농가는 ‘부재지주’(토지주가 토지를 임대 주면서 토지 소재지에 거주하지 않는 경우)라는 개념을 탄생시켜 다양한 사회이슈를 야기하기도 한다. 헌법에서 명시한 경자유전의 법칙은 이렇게 그 경계가 조금씩 느슨해지고 허물어지고 있다. 

‘농사보다 수용’, 신도시 개발이 불러온 변화

고령화의 속도는 도시보다 농촌이 심각하다.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이촌향도(離村向都, Rural Exodus)’ 현상은 농촌 인구감소의 시작에 불과했다. 노동집약적인 농업의 생산방식이 기계화되면서 설사 동일한 농사면적이 유지돼도 그곳에 필요한 인구는 과거와 같지 않게 됐다.

한때는 벼농사를 지어 자식들 대학공부를 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점차 자식들 교육비의 재원은 쌀농사가 아니라 소·돼지 등의 축사를 통한 소득이나 과수 소득(과수원 운영)으로 대체됐다. 최근에는 아예 신도시 개발 등으로 보상 받은 자금이 자식들에게 이전되는 추세다.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했던 필자가 농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두 가지다. 첫째는 신도시정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도시계획심의위원으로 참여하면서부터다. 신도시 같은 대규모 개발행위는 대부분 농지를 대지로 전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신도시개발은 사업비를 줄이고 개발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제논리에서 추진되기 때문이다. 도시 외곽의 농지는 대지에 비해 토지가격이 저렴하고 이해관계도 덜 복잡하다.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할 시 토지수용권이 법적으로 부여되는 것도 큰 이점이 됐다. 

신도시 개발 초기, 지주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토지를 수용 당했다. 혹자는 갈취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신도시개발사 자료들을 살펴보면, 토지수용가격을 둘러싼 농민들과 개발주체 간 갈등은 꽤나 심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농산물에 대한 영업보상은 턱없이 낮았다. 우리 주변에 토지보상으로 돈 좀 벌었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규모 토지를 소유했거나 낮은 가격으로 토지를 수용 당했어도 인근에 대토를 구입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수용된 땅 주변 토지가격이 상승했기에 이익을 본 것이지 보상가격 자체가 적정했던 적은 거의 없다.

그래서 현재까지 보상이 시작도 되기 전에 주변지역 땅값이 먼저 오른다. 개발시대에 습득된 토지수용과 보상자금 사용처에 대한 경험은 보상자금을 노리는 각종 투기꾼들에게 좋은 정보가 됐고, 꼼수와 토지이용 왜곡이라는 부작용도 함께 가져온 셈이다. 

내가 농지에 관심을 갖게 된 두 번째 계기는 도시-농촌 병존 지역에서 정치를 하면서부터다. 농촌 민원을 보면 교과서에는 배우지 못한 농지이용 실태와 문제점, 그리고 현행법이 갖는 한계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도시와 인접한 농지의 계획 상, 이용 상의 문제점을 하나씩 소개하고자 한다. 

농지법이나 농지에서의 건축행위 관련 현행법은 누구나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경자유전의 법칙을 건드리는 것이기에 금기시됐던 측면도 있고, 농민단체들의 반대나 저항을 의식한 정치적 고려도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이나 부동산 유튜브를 통해 조금만 검색하면 현실과 법리와의 불일치 사례는 차고 넘친다. 더 이상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태도는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고수되고 있지만 수많은 예외적 사항이 하위 법령에서 인정되는 것처럼, 현행법 하에서도 선을 넘나드는 무수한 편법과 꼼수가 넘치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이런 꼼수가 누적되면서 더 많은 부작용을 낳고 도시환경을 저해시킬 뿐만 아니라, 농지 자체가 부동산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필자는 농지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좀 더 공론화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해법을 고민했으면 한다. 그럼 다음 편부터 본격적으로 ‘불편한 진실’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보겠다. (다음 편에 계속)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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