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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최고 브랜드는 불황을 어떻게 극복했나

[2023 상반기 소비자 만족 브랜드 대상]
이코노미스트 선정 ‘2023년 상반기 최고 브랜드’ 비결은
“불황도 기회로…소비자 심리 변화를 브랜딩에 적용“

이코노미스트 선정 2023 상반기 소비자 만족 브랜드 대상. [사진 각 사] 
[허태윤 한신대 IT영상콘텐츠학과 교수] 소비자가 불황기에 주머니를 닫는다는 생각은 순진한 발상이다. 리서치인터내셔널(RI)에 따르면 이들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품질은 같고 가격이 낮은 제품을 찾는다. 불황기일수록 지출한 금액에 맞는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소비자의 심리 변화를 브랜딩에 적용하면, 불황기는 기회가 된다. 어떤 브랜드는 매출 부진의 이유를 불황에서 찾고, 어떤 브랜드는 불황에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한다. 이 차이는 불황기를 맞은 소비자의 심리를 이해하고, 여기에 맞는 가치를 만드는 데 달렸다.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2023년 상반기 최고의 브랜드들은 가치에 민감해지는 불황기 소비자의 심리에 주목했다. 새로운 포지셔닝과 고객 경험, 혁신, 트렌드를 꿰뚫는 콘셉트의 힘을 통해 가치를 새롭게 제안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올해 1월은 사회 전반에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시기였다. 삼성전자는 이 시점에 신제품 ‘갤럭시 S23’을 출시해야 하는 위기를 맞았다. 삼성전자가 선택한 전략은 마케팅 기법의 ‘고전’으로 꼽히는 USP(Unique selling point)였다.

삼성전자는 어둠 속에서도 밝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나이토그래피’ 기능을 강조했다. 브랜드 ‘갤럭시S’의 인지도는 충분했고 경쟁제품인 ‘아이폰’과 기능적 차별화를 추구하는 건 소비자에게 의미 없는 제안일뿐이었다.

광고에선 3개의 렌즈를 통해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여준다. ‘피어난다’는 뜻의 영어단어 ‘BLOOM’을 ‘BLOOOM’으로 변주해 나이토그래피의 기능을 브랜드의 감성적 가치로 치환하는 재치를 보여줬다.

갤럭시 S23 광고는 이전 갤럭시S 시리즈의 이성적 광고와 달리 과감한 브랜드 전략이 돋보였다. 삼성전자는 실제 USP에 집중한 브랜딩으로 올해 1분기에만 1100만대의 갤럭시 S23을 팔아치웠다. 전작인 갤럭시 S22의 기록(3000만대)을 넘긴, 주목할 만한 성과다.

LG전자 ‘LG 트롬 워시타워’(왼쪽)와 쿠팡 애플리케이션(앱) 실행 이미지. [사진 각 사]
‘핸드폰=기능’, ‘백화점=명품’…공식을 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한 2020년. LG전자도 ‘LG 트롬 워시타워’를 출시해 시장의 ‘게임체인저’ 자리를 굳혔다. 워시타워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일체형으로 구성된 세탁·건조기다. 드럼세탁기와 건조기를 옆으로 나란히 설치할 때보다 제품이 차지하는 공간을 크게 줄여 효율성을 높였고, 위아래로 배치할 때보단 높이를 낮춰 소비자가 통상 위에 설치되는 건조기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핵심은 워시타워 중앙의 조작부다. 위아래로 설치하는 세탁·건조기는 북미나 유럽에서 일반화된 제품이다. 한국인은 세탁기를 사용할 때 허리를 숙이고, 건조기를 이용할 땐 손을 뻗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워시타워의 조작부는 분리형 제품보다 100㎜ 높게 설계돼 소비자가 쉽게 기기를 조작하도록 했다. 이른바 ‘언멧 니즈’(Unmet needs·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채워 매해 30%에 달하는 매출 성장도 기록했다.

현대백화점이 서울 여의도에 세운 ‘더 현대 서울’의 성공담은 더 경이롭다. 이 부지는 여의도 백화점이 두 차례 철수한 후 ‘백화점의 무덤’으로 불렸다. 고급 백화점의 필수 입점 브랜드인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도 없었다. 코로나19가 한참이던 시기 문을 열기도 했다.

더 현대 서울은 타기팅(Targeting) 차별화로 서울의 랜드마크가 됐다. 백화점은 구매력이 있는 중장년층이 대상이거나 주변 상권이 조성된 지역에 들어선다. 더 현대 서울은 MZ세대를 고객층으로 선정했다. 이 세대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활동해 영향력과 파급력이 크다는 점에 주목했다.

더 현대 서울은 백화점에 통상 입점하는 브랜드를 과감히 떠났다. 소셜미디어에서 유명한 브랜드가 매장 곳곳을 채웠다. 스웨덴의 지속가능한 브랜드로 알려진 패션 브랜드 ‘아르켓’와 유기농 성분의 뷰티 스파 브랜드 ‘뱀포드’, 번개장터의 스니커즈 중심 중고 거래 브랜드 ‘브그즈트랩’(BGZT Lab) 등을 발굴해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MZ세대를 모았다.

포지셔닝(Positioning)도 더 현대 서울의 성공 비결이다. 더 현대 서울은 상권의 개념을 넓히기 위해 매장명에서 ‘여의도’를 뺐다. 인천공항과 가까운 서울 서부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 ‘글로벌 서울의 중심’을 주제로 편의 시설을 구성했다. 더 현대 서울이 들어선 지역은 주말이면 유령 상권이 되는데, 상권을 확장해 지리적 한계를 돌파했다.

파격적인 공간 구성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더 현대 서울은 전체 면적의 절반에만 매장을 배치하고 남은 공간은 모두 고객의 휴식 공간으로 설계했다. 고객이 다른 고객과 적게 부딪힐수록 매장에 오래 머문다는 ‘엉덩이 부딪침 효과’(Butt brush effect) 이론에 충실했다. 오프라인 매장이 온라인 매장을 이기려면, 공간 자체를 체험 공간으로 구성해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도 주목했다.

토스뱅크는 발상의 전환으로 혁신을 일궜다. ‘선이자 정기예금’의 성공이 대표적이다. 토스뱅크는 금융시장의 후발주자인 인터넷 은행이다. 수신예금의 86%는 불안정한 요구불 예금이었다. 토스뱅크는 예금상품의 구조를 안정적인 정기예금으로 바꿔야 했다. 아이디어는 ‘일수놀이’로 불린, 사금융에서나 가능했던 선이자에서 나왔다.

토스뱅크의 선이자 정기예금은 이 회사가 금융사 최초로 선보인 서비스다. 수시입출금 통장을 보유한 고객은 하루 한 번, 원할 때 이자를 받을 수 있다. 통장 자금을 기준으로 이자가 쌓이는 일 복리 구조가 적용돼 돈을 많이 보관할수록, 이자를 자주 받을수록 유리한 상품이다. 가입과 동시에 연 3.5% 금리의 이자를 미리 지급하는, 국내 은행에선 볼 수 없었던 혁신적 서비스이기도 하다.

토스뱅크는 이 상품으로 수시입출금 상품 비중을 줄이고 정기예금 비중을 높였다. 기존 사업자들이 구축한 ‘정기예금’의 이미지를 깨 브랜드 혁신도 실현했다. 고정관념을 비틀고 새로운 서비스 가치를 부여하는 브랜딩은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자기다움’을 각인하는 강력한 무기다.

무릎을 치게 한 마케팅…새로운 콘셉트 전달  
 
사학의 경쟁자인 연세대와 고려대가 편의점 빵을 놓고 ‘연고전’을 벌였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브랜드 씨유(CU)의 협업 마케팅 때문이다. 이 회사의 마케팅은 무릎을 치게 한다. 사업 초기, CU는 우유로 유명한 ‘연세우유’와 함께 ‘연세우유 크림빵’을 출시했다. 생크림 함량을 80%까지 높여 입소문을 탄 제품이다. 이 제품은 빵을 반으로 갈라 사진을 찍는, 이른바 ‘반갈샷’으로 소셜미디어에서 유명해졌다. 연세우유 크림빵은 1000만개 이상 팔리며 대박 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CU는 이때 놀라운 생각을 한다. 연세대와 경쟁 대학인 고려대에 빵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재학생과 졸업생은 물론 고려대에 애정이 있는 외부인, 교수진, 학부모를 고려해, 고려대에 브랜드 협업을 제안했다. CU는 곧 고려대의 상징색인 ‘크림슨’이 칠해진 사과잼 페스츄리 ‘고대 듬뿍앙버터’를 출시했다. 고려대의 영문명인 ‘KOREA UNIVERSITY’는 물론 고려대 교표까지 새겼다.

이후 편의점에선 때아닌 ‘연고전’이 벌어졌다. 연대빵과 고대빵의 대결은 색다른 경쟁 구도라며 언론에 소개됐다. 대학의 이름을 건 이 빵들은 경쟁적으로 팔려나갔고 CU는 빠르게 실적을 키웠다. CU에 따르면 이 회사가 먼저 출시한 연세우유 크림빵은 올해 5월 기준 누적 판매량 3000만개를 돌파했다. 고대빵도 고려대가 있는 안암동은 물론 주변 지역 등에서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이번 사학전의 최종 승자는 CU로 보인다. 대학빵 시리즈가 불티나게 팔리자, 이 회사의 디저트 부문 매출은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81% 늘었다.

(왼쪽부터) 농심 비빔면 브랜드 ‘배홍동비빔면’, SPC삼립 ‘포켓몬빵’, HK이노엔 ‘컨디션 스틱’. [사진 각 사]

롯데칠성음료는 ‘처음처럼’ 이후 16년 만에 내놓은 새로운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새로)’로 국내 소주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기존 소주 제품과 달리 과당을 사용하지 않은 ‘제로 슈거’ 콘셉트로 소주 시장의 강자인 하이트진로의 ‘진로’와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놀랍다. ‘제로 슈거라 목 넘김이 부드럽다’, ‘알코올 특유의 향이 적다’, ‘무가당이라 숙취와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을 타고 새로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국내 소주 시장은 오랜 시간 하이트진로의 독무대였다. ‘참이슬’과 ‘진로이즈백’ 등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키며 이 회사 점유율은 60% 중후반으로 확대됐다. 하이트진로가 2019년 진로이즈백을 출시할 당시 발매 한 달 만에 누적 판매량은 6백만병을 돌파했다. 4개월째 4000만병을 넘겼고, 7개월째 1억병을 기록했다. 하이트진로는 올해 1월 진로이즈백을 제로 슈거로 리뉴얼하기도 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콘셉트에 초점을 맞춰 새로를 출시해 하이트진로가 지배해 온 제로 슈거 소주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소비자들이 과당이 들어간 제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해 이를 소주 제품에 바로 반영했다. 주력 사업인 음료 사업에서 ‘과당을 없애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제로 슈거 소주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물리적·심리적으로 새로운 콘셉트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끄는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은 투자자에게 메일을 보내 “수영장에 물이 가득 찼을 때는 알 수 없지만, 수영장의 물이 다 빠진 후엔 누가 발가벗고 수영장에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고 전했다. 경기가 좋지 않은 시기에 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을 비로소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마케팅에서도 이 말은 그대로 적용된다. 좋은 브랜드는 불황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심사평> “브랜드의 ‘자기다움’으로 관계 구축”

오늘날의 브랜드는 살아있는 인격체와 같다. 제품의 물리적 속성만으로 차별화가 어려운 시대이기에, 브랜드는 인격을 갖춘 사람처럼 이념과 철학이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제품의 차별적 우수성으로만 브랜드에 열광하는 시대는 지났다. 브랜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다움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신념을 말할 수 있어야 소비자와의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감동적인 시(詩)가 더 큰 울림을 주듯, 좀 더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말한다면 관계의 질은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엄선한 ‘소비자 만족 브랜드 대상’은 소비자 중심 서비스와 소비자 신뢰도, 소비자 공감도, 서비스의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삼고, 부문별 브랜드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했다. 수상한 브랜드는 오랜 기간 혹은 단기간이라도 매력적인 자기다움을 표현한 기업이다. 더 많은 공감을 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소비자의 가치에 부합할 수 있도록 노력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이들 브랜드는 소비자가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자기다움,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일관된 메시지, 소비자 중심의 제품과 서비스 철학,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고객의 신뢰를 보유한 곳들이다.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로 감동적인 메시지를 만들고, 소비자와 밀접한 관계를 구축한 브랜드에 경의(敬意)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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