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스위스에 1·2위 뺏겼다…흔들리는 ‘면세 강국’
[격변의 면세시장]①
2020년부터 중국이 글로벌 면세시장서 1위 자리
지난해엔 스위스에 2위도 뺏겨…롯데·신라 3·4위
[이코노미스트 김채영 기자] “한국은 ‘한 가지만 잘하는 조랑말’이 돼선 안 된다.”
마틴 무디 ‘무디 데이빗 리포트’ 회장이 지난 2021년 한국 면세산업을 두고 쓴소리를 했다. 세계적인 면세전문 매체인 무디 데이빗 리포트를 운영하고 있는 무디 회장은 당시 “한국 면세산업은 ‘다이공’(帶工·중국 보따리상) 의존도가 높다”며 “한국의 관광지와 소핑 명소를 찾는 방문객의 다변화를 위해 엄청난 투자와 상상력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면세 강국’이라 불렸던 한국의 면세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상품 조달 능력과 가격, 서비스 등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은 시내면세점 활성화를 통해 몸집을 불리며 오랜 기간 글로벌 면세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켜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긴 상황에서 중국과 스위스 면세산업이 성장하며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롯데·신라, 팬데믹 이후 순위 주르륵…다이공 부재 탓
영국 면세 전무지 무디 데이빗 리포트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2020년부터 한국은 중국 국영면세점그룹(CDFG)에 1위를 뺏기고, 지난해엔 스위스 면세점 기업인 듀프리(Dufry)에게도 2위 자리를 내줬다. 지난해 스위스 듀프리는 매출 9조3890억원을 기록하며 롯데와 신라를 제치고 글로벌 면세점 순위 2위에 올랐다.
롯데·신라면세점은 2019년까지 세계 면세점 순위 3위 안에 꾸준히 올랐지만, 25조원이었던 국내 면세점 매출이 지난해 18조원 아래로 떨어지며 이 둘은 순위가 한 계단 내린 3, 4위를 기록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세청에서 받은 ‘면세점별 매출액 현황’에 따르면 롯데, 신라, 신세계 등 국내 면세점 ‘빅3’ 매출은 2019년 24조8586억원에서 2022년 17조 8164억원으로 감소했다.
롯데면세점 매출은 2019년 9조3539억원, 2020년 6조2210억원, 2021년 5조6695억원, 2022년 5조3469억원으로 줄었다. 신라면세점도 2019년 6조5873억원, 2020년 3조3855억원, 2021년 4조3396억원, 2022년 4조3505억원으로 매출이 떨어졌다. 신세계면세점도 2019년 4조4783억원에서 2022년 3조6668억원으로 내림세를 보였다.
국내 면세점의 퇴보에는 다이공 등 중국 관광객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 면세사업자의 중국인 매출 비중은 꾸준히 증가해 코로나 직전 73%에 달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공항을 포함해 면세점 전체 매출을 차지하는 비중은 82.6%까지 커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 정부는 한국 단체 관광을 금지한 뒤 현재까지 해제하지 않고 있어 매출 회복이 더딘 상황이다.
감염병 대유행(팬데믹) 기간 다이공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천정부지로 치솟은 송객수수료를 줄이며 매출도 함께 감소했다. 송객수수료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면세품을 거래하는 다이공에게 지급하는 비용이다. 코로나19 이전엔 매출의 10% 수준이었지만 2022년엔 40% 후반까지 증가했다.
결국 면세점들은 올해 1월부터 다이공 송객수수료를 인하하기 시작해 40% 이상에 이르던 것이 현재 30% 선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송객수수료를 줄인 만큼 매출도 감소했다. 한국면세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조1804억원이었던 외국인 관광객 매출은 올해 1월 5964억원으로 한 달 만에 반토막이 났다. 업계에선 송객수수료를 줄인 만큼 다이공 매출이 줄어든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구매 한도 폐지, 면세 한도 늘렸지만…추가 지원 필요
정부 정책도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계속되는 면세업계 부진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업계에선 여전히 지원이 부족하단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해 5000달러(약 650만원)이었던 면세점 구매 한도를 폐지했다. 지난 5월엔 면세 한도를 기존 600달러(약 76만원)에서 800달러(약 102만원)까지 올렸지만, 업계 반응은 떨떠름하다. 주변국들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한도가 낮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면세 한도는 20만엔(약 181만원), 중국의 면세 한도는 5000위안(89만원)이다.
CDFG가 세계 면세점 1위로 올라선 데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며 업계에선 추가적인 지원을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은 2018년 하이난성을 면세 특구로 지정했다. 하이난성 면세점 이용 시 자국민에게도 면세 혜택을 주는 내국인 면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면세 한도도 10만위안(약 1821만원)으로 늘리고 면세품목도 45가지로 확대했다. 1회 구매 건수 한도의 경우 향수는 횟수 제한이 없고 화장품은 30개까지 가능하다. 하이난을 다녀가면 180일까지 온라인 면세점도 이용할 수 있다. 내국인 면세 제도를 통해 다이공을 하이난으로 끌어들여 내수를 육성하겠단 복안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업계가 힘들어지자 정부에서도 다방면으로 지원해 줬고 지난해 면세산업 활성화 대책들을 발표했지만 중국에서 공격적으로 면세산업을 육성하고 있고, 아직 완전히 국내 면세시장이 회복되지 않은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스크 해제에 중국이 리오프닝까지 된다고 해서 기대감이 컸는데 예상치 못한 외교 이슈까지 터져 업계에선 불안감이 커졌다”며 “아직 다이공이 많이 안 들어오고, 업황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중국 시장이 또다시 막히면 실적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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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무디 ‘무디 데이빗 리포트’ 회장이 지난 2021년 한국 면세산업을 두고 쓴소리를 했다. 세계적인 면세전문 매체인 무디 데이빗 리포트를 운영하고 있는 무디 회장은 당시 “한국 면세산업은 ‘다이공’(帶工·중국 보따리상) 의존도가 높다”며 “한국의 관광지와 소핑 명소를 찾는 방문객의 다변화를 위해 엄청난 투자와 상상력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면세 강국’이라 불렸던 한국의 면세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상품 조달 능력과 가격, 서비스 등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한국은 시내면세점 활성화를 통해 몸집을 불리며 오랜 기간 글로벌 면세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켜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긴 상황에서 중국과 스위스 면세산업이 성장하며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롯데·신라, 팬데믹 이후 순위 주르륵…다이공 부재 탓
영국 면세 전무지 무디 데이빗 리포트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2020년부터 한국은 중국 국영면세점그룹(CDFG)에 1위를 뺏기고, 지난해엔 스위스 면세점 기업인 듀프리(Dufry)에게도 2위 자리를 내줬다. 지난해 스위스 듀프리는 매출 9조3890억원을 기록하며 롯데와 신라를 제치고 글로벌 면세점 순위 2위에 올랐다.
롯데·신라면세점은 2019년까지 세계 면세점 순위 3위 안에 꾸준히 올랐지만, 25조원이었던 국내 면세점 매출이 지난해 18조원 아래로 떨어지며 이 둘은 순위가 한 계단 내린 3, 4위를 기록했다.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세청에서 받은 ‘면세점별 매출액 현황’에 따르면 롯데, 신라, 신세계 등 국내 면세점 ‘빅3’ 매출은 2019년 24조8586억원에서 2022년 17조 8164억원으로 감소했다.
롯데면세점 매출은 2019년 9조3539억원, 2020년 6조2210억원, 2021년 5조6695억원, 2022년 5조3469억원으로 줄었다. 신라면세점도 2019년 6조5873억원, 2020년 3조3855억원, 2021년 4조3396억원, 2022년 4조3505억원으로 매출이 떨어졌다. 신세계면세점도 2019년 4조4783억원에서 2022년 3조6668억원으로 내림세를 보였다.
국내 면세점의 퇴보에는 다이공 등 중국 관광객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 면세사업자의 중국인 매출 비중은 꾸준히 증가해 코로나 직전 73%에 달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공항을 포함해 면세점 전체 매출을 차지하는 비중은 82.6%까지 커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 정부는 한국 단체 관광을 금지한 뒤 현재까지 해제하지 않고 있어 매출 회복이 더딘 상황이다.
감염병 대유행(팬데믹) 기간 다이공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천정부지로 치솟은 송객수수료를 줄이며 매출도 함께 감소했다. 송객수수료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면세품을 거래하는 다이공에게 지급하는 비용이다. 코로나19 이전엔 매출의 10% 수준이었지만 2022년엔 40% 후반까지 증가했다.
결국 면세점들은 올해 1월부터 다이공 송객수수료를 인하하기 시작해 40% 이상에 이르던 것이 현재 30% 선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송객수수료를 줄인 만큼 매출도 감소했다. 한국면세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조1804억원이었던 외국인 관광객 매출은 올해 1월 5964억원으로 한 달 만에 반토막이 났다. 업계에선 송객수수료를 줄인 만큼 다이공 매출이 줄어든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구매 한도 폐지, 면세 한도 늘렸지만…추가 지원 필요
정부 정책도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계속되는 면세업계 부진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업계에선 여전히 지원이 부족하단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해 5000달러(약 650만원)이었던 면세점 구매 한도를 폐지했다. 지난 5월엔 면세 한도를 기존 600달러(약 76만원)에서 800달러(약 102만원)까지 올렸지만, 업계 반응은 떨떠름하다. 주변국들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한도가 낮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면세 한도는 20만엔(약 181만원), 중국의 면세 한도는 5000위안(89만원)이다.
CDFG가 세계 면세점 1위로 올라선 데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덕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며 업계에선 추가적인 지원을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국은 2018년 하이난성을 면세 특구로 지정했다. 하이난성 면세점 이용 시 자국민에게도 면세 혜택을 주는 내국인 면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면세 한도도 10만위안(약 1821만원)으로 늘리고 면세품목도 45가지로 확대했다. 1회 구매 건수 한도의 경우 향수는 횟수 제한이 없고 화장품은 30개까지 가능하다. 하이난을 다녀가면 180일까지 온라인 면세점도 이용할 수 있다. 내국인 면세 제도를 통해 다이공을 하이난으로 끌어들여 내수를 육성하겠단 복안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업계가 힘들어지자 정부에서도 다방면으로 지원해 줬고 지난해 면세산업 활성화 대책들을 발표했지만 중국에서 공격적으로 면세산업을 육성하고 있고, 아직 완전히 국내 면세시장이 회복되지 않은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마스크 해제에 중국이 리오프닝까지 된다고 해서 기대감이 컸는데 예상치 못한 외교 이슈까지 터져 업계에선 불안감이 커졌다”며 “아직 다이공이 많이 안 들어오고, 업황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중국 시장이 또다시 막히면 실적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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