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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B 없다”…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3분기 마무리 가닥

[산업은행의 과제들]③
EU·미국·일본 기업결합 승인 심사 결과 발표 연장
합병 불발 시 주관사 산업은행 자금회수 난항 예상
승인 조건으로 슬롯 반납 내걸어 경쟁력 약화 불가피

KDB산업은행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무산에 대비하는 ‘플랜B’를 준비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가운데 산업은행 측은 올 3분기 중 합병을 기대한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마켓in 송재민 기자]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동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합병이 장기화되면서 ‘무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KDB산업은행이 합병 무산에 대비하는 ‘플랜B’를 준비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가운데 산업은행 측은 올 3분기 중 합병을 기대한다고 자신감을 내비쳐 관심이 쏠린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당초 예측과 달리 미국과 EU의 부정적 견해로 인해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 총 14개국에 기업결합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양국이 독점 심화가 우려된다며 사실상 합병 반대 입장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중 한 곳에서라도 승인을 받지 못하면 합병은 불가하다. 

독과점 우려…슬롯 반환 요구까지 첩첩산중

지난 2020년 11월부터 약 3년간 진행 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승인만을 앞두며 끝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합병 심사가 길어지면서 주관사인 KDB산업은행에 책임의 화살이 향하고 있다. 

기업결합심사 승인은 양대 국적항공사 통합의 선결조건이다. 현재는 주요 14개국 합병 심사 중 11개국의 기업결합심사를 마쳤고 EU와 미국, 그리고 일본 세 곳이 남았다. 당초 8월로 예상됐던 EU의 심사 결과 발표도 한 차례 뒤로 미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면서 또 다른 암초에 부딪혔다. EU 지행위원회는 지난달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합병 심사 중단 및 기한 연장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항공업계에선 최소 2개월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한다. 

아직 심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세 국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으로 인한 항공업계 노선 독과점을 우려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몇몇 국가들은 노선 운수권이나 슬롯 이전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합병을 승인한 영국의 경우에도 양사가 보유하고 있는 히스로 공항 17개 슬롯 중 7개 슬롯을 영국 항공사인 버진애틀랜틱에 넘기는 조건으로 승인 결정을 내렸다. EU 역시 영국처럼 다른 국가들에 자국의 항공사 노선을 반납하라는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지연되면서 인수로 인한 기대 효과를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팬데믹을 계기로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강화된 점이 변수”라며 “여기에 물류대란을 겪은 이후로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화물 영업의 통합에도 민감해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해외 경쟁당국이 대한항공의 경쟁력 강화를 견제하는 한편 최대한 자국 항공사에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매각 불발 시 산업은행 책임 면하기 어려워

합병이 무산되면 빅딜을 주도한 산업은행은 큰 후폭풍에 휩싸이게 된다. 이미 천문학적인 금액을 유동성 위기를 겪은 양사에 투입했는데 자금회수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에 매각하고 국민 세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매각이 불발되면 책임론을 피할 수 없다. 앞서 산업은행은 HD현대그룹과 대우조선해양 합병 무산 전례로 질책을 받은 바 있어 그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을 살리기 위해 약 3조6000억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합병 절차가 장기화되면서 신규 투자나 재무구조 개선이 어려운 아시아나항공에 ‘버티기 용’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양 사의 합병이 불발되면 산업은행은 공적자금 회수가 어려워진다. 

만약 합병이 성사되지 않으면 산업은행은 이후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인수자를 찾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산은의 출혈은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아시아나항공이 산업은행에 낸 이자 비용만 1700억원에 이른다. 올 1분기 영업이익은 925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절반 수준으로 축소했다. 부채비율 역시 2013%로 전 분기(1780%)보다 악화됐다. 

합병에 성공하더라도 슬롯 반환 등을 요구하고 있어 항공업계에서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항공사의 핵심 자산인 슬롯을 반납하게 되면 주요 시간대 공항을 이용할 권리가 사라지게 된다. 다른 그룹 계열사 합병을 모색하는 등 플랜B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그러나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합병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플랜B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강경한 입장을 표했다. 

산업은행은 이전에도 빅딜을 주도했다가 EU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HD현대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으로 조선업계 양강 체계를 만들고자 했지만 경쟁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매각에 실패했다. 당시에도 산업은행은 플랜B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들었다. 이번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도 당시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무산 위기설’이 나오는 상황이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합병이 불발되면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 위한 또 다른 인수자를 찾아야 하는데 현재로선 대한항공 이외에 마땅한 곳을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까지의 시그널들을 보면 유럽 당국이 합병 승인할 가능성이 높다”며 “현미경을 대고 깐깐하게 확인하고 슬롯 반납 등의 제약 조건들을 내거는 식으로 올 하반기에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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