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김기동의 이슈&로]
CEO 선임 투명성·이사회 전문성과 독립성 확보
핵심은 이사회 기능 강화, 관치 방지 장치 필요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 변호사] ‘소유분산 기업’은 소유 지분이 분산돼 있어 ‘지배주주’가 없는 회사를 말한다. ‘지배주주’란 주주총회의 의결권 확보를 통해 회사의 주요 결정 사항, 즉 경영권을 통제할 수 있는 대주주를 말한다. 지배주주는 흔히 재벌 그룹의 총수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소유의 분산’,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미국과 영국의 대기업이나 자본 집약적인 산업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지배주주에 의한 경영이 보편적인 형태다.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월마트, 독일의 BMW와 포르쉐, 프랑스의 명품기업인 LVMH와 디올, 스웨덴의 발렌베리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가족이나 가문 등과 같은 지배주주에 의한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의 소유분산 기업으로는 우리·신한·하나·KB 금융지주 등 금융지주회사와 KT, 포스코, KT&G 등이 있다. KT(옛 한국통신), 포스코(옛 포항제철), KT&G(옛 한국담배인삼공사) 등은 정부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가 민영화된 회사들이다. 소유분산 기업의 주요 주주는 국민연금공단인 경우가 많다.
외풍에 쓰러진 기업들…CEO 리스크에 ‘흔들’
어떤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가 바람직한 형태일까? 정답은 없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지배주주 즉 오너 경영이 전문경영인 체제보다 장기적 기업 발전에 유리하며, 이사회 기능이 강화된 오너 경영이 한국 실정에 맞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조선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 최첨단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오너 책임경영으로 장기 투자가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기 어렵다.
그동안 오너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가 늘 논란이었지만 근래 들어서는 금융지주회사나 KT 등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가 이슈화되고 있다. 징계나 사법적 처분을 받는 등 경영에 과오나 책임이 있는 CEO(최고 경영자)가 연임하는 것이 적절한지, 그리고 CEO의 선임이나 연임 절차가 현직의 영향력을 벗어나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다.
소유분산 기업의 CEO는 일반 주주가 경영에 참여할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기업 경영 전반에 대해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에 따라 경쟁자 추출, 사외이사 포섭, 우호 주주 확보 등의 방법으로 참호를 구축하는 병폐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 CEO가 연임에 골몰하게 되면 보신과 자리 나누기가 관행처럼 자리 잡게 되고, 사업 다각화나 해외시장 개척은커녕 기업 경쟁력만 갉아먹게 된다.
정부와 금융당국에서는 이러한 병폐는 해당 기업은 물론 국가기간산업의 경쟁력까지 훼손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제도 개혁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지난 4월 은행 이사회가 지배구조 및 내부통제 등에서 제 역할을 하도록 집중 점검하고, 감독도 대폭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회사는 공공적 성격과 시스템 리스크 발생 가능성 때문에 일반 기업과 달리 그 지배구조에 관해 정부에서 일정 부분 관여해 왔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나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KT도 자체적인 개혁 방안을 마련해 지난달 말 주주총회를 통해 이를 확정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사외이사들로만 구성된 위원회에서 대표이사 후보를 실질적으로 평가·검증하고, 이를 수행할 사외이사들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며, 대표이사 선임에 대한 주총 의결 정족수를 60% 이상으로 가중하는 등 주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면 대표이사로 선임되지 못하게 한 것 등이 골자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딜레마는 여전
앞으로 국민연금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통해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입장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요 기관투자자가 주식을 보유한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투명한 경영을 유도하려는 자율 지침으로서 우리나라는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객관화·투명화하는 제도 개혁이 선행돼야 정부개입 논란 등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주식회사 경영의 허브(heb)는 이사회다. 따라서 지배구조 개선은 이사회의 독립성 및 그 기능을 강화하는 데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 핵심은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며, 전문 경영인에 의한 대리인 경영이 발달한 미국식 해법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CEO의 선임과 해임뿐만 아니라 보수도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결정한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전설적인 경영자 제임스 로빈슨 3세도 실적 부진으로 해임되거나 사임하는 것이 미국식 경영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융당국이 제시한 해법이나 KT의 지배구조 개선안은 공감되는 점이 많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착수한 이참에 제대로 된 제도와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제도 개혁이 성공하면 다른 소유분산 기업이나 오너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국 제도 개혁에 대한 평가는 기업 내외부에서 수긍할만한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새로운 CEO가 선임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나 정치권이 인사에 개입한다는 논란이 일면 제도 개선 노력이 허사가 될 수 있다. 모처럼 어렵게 마련한 지배구조 개선안이 정권의 변동과 관계없이 제도로서 정착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모두가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기업의 주가가 고질적으로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사라지고,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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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분산’,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미국과 영국의 대기업이나 자본 집약적인 산업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지배주주에 의한 경영이 보편적인 형태다.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월마트, 독일의 BMW와 포르쉐, 프랑스의 명품기업인 LVMH와 디올, 스웨덴의 발렌베리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가족이나 가문 등과 같은 지배주주에 의한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의 소유분산 기업으로는 우리·신한·하나·KB 금융지주 등 금융지주회사와 KT, 포스코, KT&G 등이 있다. KT(옛 한국통신), 포스코(옛 포항제철), KT&G(옛 한국담배인삼공사) 등은 정부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가 민영화된 회사들이다. 소유분산 기업의 주요 주주는 국민연금공단인 경우가 많다.
외풍에 쓰러진 기업들…CEO 리스크에 ‘흔들’
어떤 기업 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가 바람직한 형태일까? 정답은 없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지배주주 즉 오너 경영이 전문경영인 체제보다 장기적 기업 발전에 유리하며, 이사회 기능이 강화된 오너 경영이 한국 실정에 맞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조선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 최첨단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오너 책임경영으로 장기 투자가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기 어렵다.
그동안 오너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가 늘 논란이었지만 근래 들어서는 금융지주회사나 KT 등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가 이슈화되고 있다. 징계나 사법적 처분을 받는 등 경영에 과오나 책임이 있는 CEO(최고 경영자)가 연임하는 것이 적절한지, 그리고 CEO의 선임이나 연임 절차가 현직의 영향력을 벗어나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다.
소유분산 기업의 CEO는 일반 주주가 경영에 참여할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기업 경영 전반에 대해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에 따라 경쟁자 추출, 사외이사 포섭, 우호 주주 확보 등의 방법으로 참호를 구축하는 병폐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 CEO가 연임에 골몰하게 되면 보신과 자리 나누기가 관행처럼 자리 잡게 되고, 사업 다각화나 해외시장 개척은커녕 기업 경쟁력만 갉아먹게 된다.
정부와 금융당국에서는 이러한 병폐는 해당 기업은 물론 국가기간산업의 경쟁력까지 훼손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제도 개혁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지난 4월 은행 이사회가 지배구조 및 내부통제 등에서 제 역할을 하도록 집중 점검하고, 감독도 대폭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회사는 공공적 성격과 시스템 리스크 발생 가능성 때문에 일반 기업과 달리 그 지배구조에 관해 정부에서 일정 부분 관여해 왔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나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KT도 자체적인 개혁 방안을 마련해 지난달 말 주주총회를 통해 이를 확정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사외이사들로만 구성된 위원회에서 대표이사 후보를 실질적으로 평가·검증하고, 이를 수행할 사외이사들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며, 대표이사 선임에 대한 주총 의결 정족수를 60% 이상으로 가중하는 등 주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하면 대표이사로 선임되지 못하게 한 것 등이 골자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딜레마는 여전
앞으로 국민연금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통해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을 제고하겠다는 입장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요 기관투자자가 주식을 보유한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투명한 경영을 유도하려는 자율 지침으로서 우리나라는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객관화·투명화하는 제도 개혁이 선행돼야 정부개입 논란 등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주식회사 경영의 허브(heb)는 이사회다. 따라서 지배구조 개선은 이사회의 독립성 및 그 기능을 강화하는 데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 핵심은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며, 전문 경영인에 의한 대리인 경영이 발달한 미국식 해법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CEO의 선임과 해임뿐만 아니라 보수도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결정한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전설적인 경영자 제임스 로빈슨 3세도 실적 부진으로 해임되거나 사임하는 것이 미국식 경영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융당국이 제시한 해법이나 KT의 지배구조 개선안은 공감되는 점이 많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착수한 이참에 제대로 된 제도와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제도 개혁이 성공하면 다른 소유분산 기업이나 오너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국 제도 개혁에 대한 평가는 기업 내외부에서 수긍할만한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새로운 CEO가 선임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나 정치권이 인사에 개입한다는 논란이 일면 제도 개선 노력이 허사가 될 수 있다. 모처럼 어렵게 마련한 지배구조 개선안이 정권의 변동과 관계없이 제도로서 정착되고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모두가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기업의 주가가 고질적으로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사라지고,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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