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 '우영우'를 도울 방법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농지의 변신은 유죄]③
농지 용도 전환에 대한 고민…느린 학습자·발달장애인 위한 복지정책 필요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현행 농지법이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점은 이전 원고에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이 살아 있는 한, 또 농지를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삼는 투기꾼들을 막을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농지규제를 손보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얼마 전 농막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농림부의 시행령 개정이 강한 저항을 받아 대통령까지 나서 이를 수습했던 경험이 있다. 결국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농막의 애매한 기능 역시 경자유전의 원칙이 살아있는 한 편법과 불법사이의 애매한 경계선을 넘나들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는 막연한 농지의 규제완화가 아니라 농지를 어떤 용도로 전환시킬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농민들이 농사를 그만두고 농지에서 벗어날 방법을 고안하되 이것이 아파트개발이나 부동산 투기의 먹잇감이 되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어떤 방식이 좋을까.
사각지대 놓인 느린학습자 중심 복지정책 부족
우선 전환기적 농지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농지에서 농사짓는 일은 지속하되, 농사의 주체와 농사의 방식, 농사의 목적이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 다시 말해 지금의 농지처럼 도시인들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생산지로서의 역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것을 고민하지 않으면 농지는 그저 지금의 농지 또는 아파트로의 전환이라는 양극단에서 끊임없는 편법과 탈법이 난개발을 초래하는 과오를 반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농지에 적정한 개발을 허용하는 대신 농지가 본연의 기능은 잃지않게 하는 방법, 농지의 공익성을 살릴 수 있는 농지활용방안, 그것이 ‘복지와 농업의 연계’다.
약 1년 전 지역에 있는 농장에 들렀다가 느린 학습자(slow learner, 경계선 지능)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농장주를 만난적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느린 학습자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다.
느린 학습자는 지적장애는 아니지만 평균 지능보다는 낮은, 경계선의 지능을 가진 이들을 말한다. 대부분 주의력이 떨어지고, 적절한 상황 판단이나 대처능력이 부족하다. 또 감정 표현이나 의사소통에 서투른 편이라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학습이나 또래 관계에서 남다른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학교에서 학습 부진, 저성취로 인해 답답한 아이, 공부 못 하는 아이로 낙인 찍히거나, 또래 사이에서는 사회성이 부족해 눈치 없는 아이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따돌림을 당하다보니 낮은 자존감, 늘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만 이들은 지적장애와 비장애 사이의 애매모호한 경계선에 있기 때문에 정규교육과 장애인 교육 양쪽 모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니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들은 인구의 12~14% 정도로 추산되며 우리나라도 전국 8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학생들만 추산해보면 평균적으로 한 학급에 3명 정도는 느린 학습자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농장에서 농업 관련 수업을 받는 모습을 보게됐다. 수학, 국어 등의 일반학교 공부에서는 다소 뒤처지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어려웠던 이들이 농업을 배우면서는 감정조절이 이전보다 능숙해지고 대인관계가 원만해진다고 한다. 농장주는 이런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나에게 이야기 했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송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기억할 것이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 우영우는 기억력이 좋고, 어려운 재판 때마다 능력을 발휘하지만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로펌에서 그녀의 직장생활은 순탄치 않아보인다.
문제는 우리사회에 ‘우영우’ 같은 발달장애인 수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9년간(2014년 대비 2021년) 국내에 등록된 전체 장애인은 6.02% 증가했다. 반면 발달장애인은 20만3879명에서 25만5207명으로 25.18% 급증했다.
현재 전체 장애인에서 발달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9.65%에 달한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발달장애인은 만 4세 이전에 집중적으로 행동치료 등을 받으면 좋은 예후를 보여 성인이 된 이후 일반인들과 큰 차이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졌다.
지체장애인 중심의 국내 장애인 정책과 지원이, 발달장애인으로 확대돼야 하는 것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실제 속도는 느리기만 하다. 특히 현재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의 경우 일자리는 고사하고 낮시간에 머물 공간마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복지정책 실현하는 농지…힐링·학습의 공간 케어팜
네덜란드 소도시 헴스케르크호(Heemskerk)에 있는 치매환자 거주시설 드레이헤르스후버에는 중증치매 노인이 30명 가까이 살고 있다. 침상만 즐비한 국내 요양원과 달리 이곳은 드넓은 농장이다. 치매를 겪는 장애인이 요양시설에서 의자에 묶인 채 삶을 연명하는 것을 보고 만들었다는 농장형 요양공간이다.
복지와 농업을 결합해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곳인데 네덜란드에서는 이를 ‘케어팜(Care Farm)’이라고 부른다. 네덜란드 전역에는 이런 케어팜이 1250여곳이 있다. 동물을 통해 자폐, 행동장애 아이들의 치유를 돕는 굿랜드케어팜, 약물중독자들의 재활을 돕는 린덴호프오픈가든, 우리나라의 주간보호시설처럼 치매 노인들을 돌보는 에이크후버농장 등 케어팜마다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느린 학습자의 농장수업에서 본 것과 같이 네덜란드의 치매환자나 장애인 치유공간 같이 국내에서도 농지 규제완화를 이런 케어팜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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