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다리, 계곡 청수, 꽃대궐 잔치 엮어~거추창 버리고 ‘거창’한 세상에로 [E-트래블]
하늘 닮은 계곡 수승대, 풍광에 ‘엄지척’
출렁다리에 마음은 철렁, 전경엔 술렁~
[글·사진 강석봉 스포츠경향 여행기자] 한여름 더위와 치열한 분투 벌인 경남 거창도 이제 한숨을 돌렸다. 참 고약한 날씨였기에 ‘거창’에 살아 좋은 이유는 더욱 분명해졌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당신은 지금쯤 어디에 서 있는가? 사랑의 열정만큼이나 삶의 냉정 역시 깨닫게 만든 이상 기온의 맹폭에서 버텨낸 ‘거창’한 여행지를 돌아봤다. 문화면 문화, 자연이면 자연…하지만 끝내 눈물 찍어낸 비운의 역사까지 거창과 나눈 ‘냉정과 열정 사이’.
눈물의 환송지 수송대…누대의 피서지 수승대
명승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가 신라로 사신을 보내면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해 ‘수송대’(愁送臺) 라 불렸다. 당시 백제나 신라의 사신된 자, 그 앞날을 예측할 수 없어 그랬을 거다. ‘눈물의 미아리 고개’가 그곳을 이고 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멍에가 될 수도 있다. 이때 세기의 작명가가 등장한다. 백운동서원을 임금께 건의해 소수서원으로 개명, 사액서원으로 거듭나게 한 퇴계 이황이다. 1543년 그는 유람차 안의현 삼동을 찾았다가 수송대에 얽힌 사연을 듣고 그 내용이 부정적이므로 수승대(搜勝臺)로 바꿀 것을 제안해, 현재까지 그리 불리게 됐다.
수승대 입구에 들어서면 계곡물이 우렁차게 포효하며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거창 사람들에겐 더없이 좋은 여름 피서지다. 규모며 시설이 테마파크 못지않다.
예전이라고 이 풍광이 다를 리 없었을 터다. 주변에는 구연서원·요수정(樂水亭)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 앉아 물소리를 듣고 있는 그 당시 향촌 선비들의 모습이 겹치기도 한다. 선비들처럼 주변엔 등록문화재인 황산마을 옛 담장과 정온 선생 고택이 있어 문화유산 답사를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수승대 거북바위 건너편에 자리 잡은 요수정은 요수 신권(樂水 愼權, 1501~1573) 선생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에 자연 암반을 초석으로 이용한 정자다. 특히 추운 산간 지역의 기후를 고려하여 정자 내부에 방을 들이는 등 지역적 특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요수정 앞 기념비에 얽힌 사연 역시 드라마틱하다. 2012년 9월 초강력 태풍 ‘산바’가 일대를 덮쳐 수령 200년 된 소나무를 부러뜨렸는데 요수의 후손이 세운 기념비가 소나무를 받쳐 자칫 요수정이 무너질 뻔한 참사를 막았다고 한다.
■출렁다리 오르면…심장은 ‘철렁’, 시야는 ‘술렁’
우두산 와이(Y)자형 출렁다리(이하 Y자형 출렁다리)는 2020년 10월에 개통됐다. Y자형 출렁다리는 해발 600m의 높이를 연결하는 계곡에 세워졌다. 이 출렁다리는 건너는 사람들에겐 하이브리드 체험을 전한다. 망사식 발판의 다리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광에 아찔한 긴장감과 더불어 산과 계곡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도 절로 나온다.
다리에서 본 풍경만큼이나 놓인 다리의 모습에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런 덕인지 ‘2020 대한민국 국토대전’에서 Y자형 출렁다리는 ‘대한토목학회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22년 11월 개통된 수승대 출렁다리는 수승대 절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있어 수승대를 새롭게 즐기는 방법으로 통한다.
거북바위에서 수승대 둘레길 덱을 따라 상부로 향하다 보면 해발 700m 지점에 우아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출렁다리를 만나게 된다. 전체 길이 240m의 수승대 출렁다리는 내진 1등급에 초속 30㎧의 바람을 견디는 무주탑 공법으로 만들어졌다.
등산이나 운동보다 출렁다리만을 즐기고 싶다면 차를 이용해 수승대 출렁다리 주차장에 도착한 후 계곡을 따라 걸어 내려오는 방법도 있다.
거창 창포원…꽃도 보고 자전거도 타고
거창 남상면에 자리한 ‘거창 창포원’은 경상남도 제1호 지방 정원으로 4계절 내내 다양한 꽃과 나무를 감상할 수 있다. 거창 창포원은 축구장 66배 크기의 대규모 수변공원으로 합천댐 조성 과정에서 생겨난 수몰 지역을 국가하천인 황강에 덧대 수변생태공원으로 조성했다. 앞서 이곳은 1988년 합천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수몰 농지였다.
창포원은 편의시설이나 관람 동선이 잘 되어 있다. 거창에서 열리는 박람회·축제 등의 단골 거점 행사지다. 커플 자전거 등을 타고 둘레길을 돌아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봄에는 100만 본 이상의 꽃창포가 공원을 환하게 밝히고, 여름철에는 연꽃·수련·수국·장미, 가을엔 국화 등이 꽃 대궐을 이룬다. 분수가 시원하게 솟구치는 연꽃원 덱을 따라 산책을 즐겨도 좋다.
창포원 등에서 촬영된 SBS 예능프로그램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이 최근 전파를 타기도 했다.
명당, 따지고 보면 요충지…한국전, 피맺힌 기억도
거창을 얘기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건도 있다. 1400년 전 거창은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였다. 거창의 아홉산(九山) 중 건흥산과 취우령을 잇는 ‘거열산성’엔 그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수많은 죽음이 승리자의 기록으로 남았을 뿐, 그 속을 채운 피와 눈물은 사서의 행간 속에 가려졌다. 독특한 축성 구조를 인정받아 2020년 국가지정문화재에 등재된 거열산성은 백제 멸망 후 신라 장군에 의해 백제 부흥 운동군 700여 명이 전사한 곳이다.
역사의 기록은 반복으로 불콰함을 남기기도 한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1년 거창군 신원면 일원에서 있은 국군에 의한 거창 양민학살은 남녀노소를 포함 700여 명이 희생됐다.
두 역사의 한 맺힌 각각 700 원혼이 그 간극 1400년을 채워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와서 한만 품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기억마저 잊을 수는 없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거창사건 추모공원이 조성돼, 그나마 사건의 실체라도 전해질 수 있게 됐다. 거창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유다. 그날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념을 주장하며 벌인 그날의 변명에 아이들의 주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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