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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예산 삭감한 尹 정부…K-바이오, 이제 찬밥신세?

[K-바이오 운명은]①
2024년 R&D 분야 예산 25조9000억원…16.6% 삭감
예산 늘어난 분야도 백신·제조·생산 등 일부만 혜택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8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과 내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의 핵심인 연구개발(R&D) 지원 비용을 줄이면서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실상 민간 투자가 메마른 가운데 정부 지원이라는 ‘동아줄’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일부 부처는 R&D 분야 예산을 늘리기도 했지만, 초기 단계이거나 백신 등 특정 분야의 기업들만 혜택을 볼 수 있는 정책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부처별 지원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조직도 아직 발을 떼지 못한 만큼 이번 정부가 약속했던 산업 지원 방안을 제대로 시행해달라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R&D 분야의 예산은 25조9000억원이다. 올해 R&D 예산이 31조1000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16.6% 줄어들었다. 기초연구 분야 예산은 6.2%, 정부출연연구기관 예산이 10.8% 삭감됐다. 과학기술 연구 부문에 주로 투입되는 주요 R&D 예산 규모도 올해보다 13.9% 줄어든 21조5000억원에 불과하다. 정부가 R&D 예산을 줄인 것은 1991년 이후 처음이다. 과학기술 역량을 강조했던 정부가 33년 만에 R&D 예산을 큰 폭 줄인 셈이다.

삭감한 R&D예산, 첨단산업·복지 예산으로 

제약바이오산업과 관련 있는 부처의 내년도 예산도 상당 부분 줄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의 내년도 예산은 18조3000억원으로 올해 18조9000억원 대비 6000억원 감소했다. 이중 R&D 예산은 8조8000억원이며 올해 9조8000억원과 비교해 1조원 쪼그라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전체 예산 규모를 늘렸지만 기존에 R&D 분야에 투입했던 예산은 올해보다 적게 편성했다. 올해 R&D에 5조4000억원을 투입하지만 내년에는 4조7000억원을 쏟는다. 보건복지부(복지부)는 R&D 예산을 올해 6900억원에서 내년 7800억원으로 올렸다. 하지만 산업 육성 예산은 규모를 다소 줄이는 등 아쉬운 점이 많다.

R&D 예산이 줄어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갈라먹기식 R&D를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다. 내년도 R&D 예산이 크게 줄어든 것이 수개월 사이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며 “미래 사회에 대응하고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R&D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당시까지만 해도 내년도 R&D 예산은 올해보다 8000억원가량 늘어날 예정이었다. 올해 3월 예산안 편성 지침이 나오기까지 이런 기조는 이어졌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이후 분위기는 반전했다. 정부는 부처별 예산을 전반적으로 줄이는 가운데 주요 연구기관에 투입하는 예산을 중점적으로 손봤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해 나랏돈이 들어가는 과학기술 기관들이 대상이었다. 예산을 삭감하자 정부 총지출 대비 전체 R&D 예산의 비중도 3.9%로 떨어졌다. 정부는 앞서 R&D 분야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이를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삭감한 예산은 첨단산업이나 복지 예산으로 흘렀다. 정부가 R&D 지원 금액은 줄였으나 의과학자를 양성하는 ‘보스톤-코리아’ 프로젝트나 데이터 구축 프로젝트 ‘한국형 ARPA-H’에 각각 604억원, 495억원을 쏟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약 개발 장기전인데…“연구 중단하거나 규모 축소해야” 

하지만 산업계에선 정부의 예산 편성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인해 진행 중인 연구를 중단하거나 규모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특히 신약은 통상 개발하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개발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또 제약바이오산업은 과기정통부와 복지부, 산업부 등 여러 부처가 육성을 지원하고 있어 기관 간 연계가 부족하거나 정부 지원이 겹치는 분야이기도 하다. 예산 삭감의 칼날이 드려질 가능성이 컸다는 의미다. 보스톤-코리아 프로젝트와 한국형 ARPA-H 등 정부가 예산 삭감 대신 내놓은 지원정책은 신약 개발 단계가 초기인 기업들이 대상이거나 신약 개발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실제 정부 사업에 의존해온 백신 개발 기업들은 정부가 예산을 줄이자 R&D를 중단해야 하냐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는 동안 국산 백신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여러 사업단을 꾸려 이들 기업을 지원했으나 수백억원 규모의 자금이 투입된 사업 예산이 내년부터 절반 정도 줄어들자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마무리하지 못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산업계에서는 정부 과제에 참여하고 있는 백신 기업의 90%는 R&D를 지속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임상 지연 등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 과제를 통한 자금 지원에 의존했던 연구인력도 해당 기업들을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과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등 10여 개의 단체는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를 출범하고 “(정부의) 일방적인 예산 삭감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R&D 예산을 삭감하기 전 관련 업계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고 사실상 과학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조치라는 판단에서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도 앞서 성명서를 통해 “예산 삭감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비롯한 공공 부문 연구기관을 상시적 구조조정 상태로 몰아넣겠다는 선언”이라며 “R&D를 둘러싼 카르텔이 있다면 부처 이기주의와 권력 유지에 급급한 정부 관료, 전문성 없는 정치권과 일부 관변 과학기술자”라고 지적했다. 또한 “R&D 제도를 정말 혁신하려면 정부 관료 중심의 상명하달식 정책은 효용이 없다”며 “연구 현장에 종사자는 사람들의 의견과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과 제도를 수립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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